![]() |
이재명 대통령이 30일 대통령실 청사 앞 야외 정원 건물에서 문화 예술인을 만나 약 90분 동안 간담회를 했다.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되었는데, 대통령이 문화 예술인들을 만나 이토록 장시간 동안 간담회를 한 것도 이례적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때 백범 김구가 말한 문화강국을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신춘문예 3관왕 강유정 대변인이 진행 맡아
간담회에는 세계적인 소프라노 조수미, 요즘 인기 폭발 중인 ‘폭싹 속았수다’의 김원석 감독, 얼마 전 공연계의 노벨 문학상이 불리는 토니상 6개 부분을 석권한 박천효 작가, 스위스에서 열린 로잔 발레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해 세계를 놀라게 한 박윤재 발레리노도 참석했다.
행사 진행은 뉴스공장의 ‘더 살롱’에서 자주 본 신춘문예 3관왕에 빛나는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맡았다. 강유정 대변인은 문화 예술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는데, 이재명 정부의 대통령실 초대 대변인을 맡게 되었다. 그만큼 이재명 대통령이 강유정을 신뢰한다는 뜻이다.
강유정 대변인의 섬세하고도 깊은 인문학적 해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래서인지 대변인실 논평도 정확한 문장과 절제된 언어로 구성된다. 모르긴 모르되, 역대 대변인 중 가장 수준이 높아 보인다. 강유정 대변인은 전공 분야라 그런지 행사 내내 흥이 나 있었고 진행도 매끄럽게 잘 했다.
행사에는 피아노 전공인 김혜경 여사도 참석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김혜경 여사가 조수미 성악가와 선화예고 동문이란 것도 처음 알았다. 두 분이 손을 잡고 웃을 땐 온 국민이 행복했을 것이다. 알고 보면 문화나 예술은 좀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한 양념이다. 세상에 행복한 삶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을까. 정치도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일일이 메모한 이재명 대통령
간담회에 참석한 문화 예술인들은 각자 자신들이 오늘날의 성과를 낼 때까지의 과정과 어려움을 토로했는데, 이재명 대통령은 그런 것들을 일일이 메모했다. 현장 행정가로서의 면모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그렇다, 무엇이든 현장이 중요하다. 탁상이 아니라, 현장으로 달려가면 해결되지 않을 것도 해결될 수 있다. 직접 마음을 열고 토론하다 보면 해결책이 생기는 것이다.
그 분야에선 이재명 대통령이 장기를 가지고 있다. 경기도 계곡 문제, 15년 이상 끌고 있는 광주 공항 무안 이전 문제를 단 몇 분 만에 해결책을 제시한 것에서 그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이재명 대통령의 특징은 대두된 갈등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현장으로 들어가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다. 이번 문화 예술인 간담회도 그 일환으로 보인다. 아니 이재명 대통령은 토론을 즐긴다. 그 속에서 해결책이 나오기 때문이다.
피상적이고 시혜 베푸는 듯한 문화 정책 지양해야
그동안 문화 예술 정책은 관련 부서 공무원들이 책상에서 마치 문화 예술인들에게 시혜를 베푼 듯 정책이 입안되고 실행된 것이 사실이다. 즉 현장의 의견 청취가 부족해 하나마나한 정책만 추진되고 현장에서 일하는 문화 예술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문화 예술에 관한 정책은 당장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인프라 구축이 더 중요하다. 즉 초중고에 문화 예술 콘텐츠의 중요성을 알리는 교육을 실시하고, 우리 청소년들이 취직이 잘 되는 공대, 의대만 가는 풍조를 개선해야 한다. 즉 문화 예술로도 얼마든지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어야 그쪽 지원자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문화가 일자리가 되고 밥상이 되는 정책 필요
문화가 일자리가 되고 경제가 되고 밥상이 되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야 우리 청소년들이 창의력의 나래를 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교육의 변화 없이 당장의 지원책으로는 문화가 경제가 되고 일자리가 되지는 않는다. ‘선비는 가난하다’라는 의식도 버려야 한다.
아니 왜 작가 같은 머리 좋고 창의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밥을 굶고 살아야 하는가? 필자 역시 신춘문예 4관왕이지만 어디서 글 써달라는 데가 별로 없다. 신춘문예는 당선된 그해만 반짝 빛나고 사라지는 유성에 불과하다. 적어도 신춘문예 당선된 사람은 문체부에서 지속적인 지원을 해줘야 좀 더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고, 그것이 문화강국이 될 수 있는 원천이 될 수 있다.
문화, 예술 현장도 변해야
문화 예술 현장도 변해야 한다. 순수 학문으로서의 문화 예술과 직업으로서의 문화 예술은 다르다. 따라서 각 대학에 있는 국문과나 문창과도 수업 내용이 변해야 한다. 고리타분한 이론만 늘어놓는 게 아니라 우리의 신화, 전설, 민담이 스토리텔링되고 그것이 문화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지를 연구해야 한다.
각 대학에 문화콘텐츠학과 혹은 스토리텔링 학과를 신설해 문화 예술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인재를 지속적으로 양성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써도 그것을 홍보해주고 번역해주고 실제로 제작해주는 시스템이 부재하면 명작도 묻히게 된다. 따라서 한국콘텐츠진흥원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17개 시도에 분원을 두고 수강생들을 모집하여 교육한 후 거기서 세계적이 문화 예술인이 나올 수 있도록 지원을 아까지 않아야 한다. 즉 콘텐츠진흥원이 문화 예술 사관학교가 되도록 예산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공모전도 열 수 있다.
지원하되, 당장 대가를 바라지 말아야
문화 예술은 지원을 하되 당장 그 대가를 바라지도 말아야 한다. 문화 예술은 반도체 기술이나 AI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투자 대비 효과만 따지면 중간에 고사하고 만다. 열 명을 지원했는데, 그중 한 명만 세계적 작가나 가수, 감독이 된다면 성공한 것이다. 문화 예술 사업은 당장의 전시회나 공연 수입도 많지만 그것보다 그것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더 중요하다. 즉 BTS의 일 년 공연 수입은 수천억에 불과하지만, BTS의 나라 한국을 가보고 싶고 한국 제품을 쓰고 싶은 소망이 더 큰 산업 발전으로 커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은 스토리텔링의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나라
‘오징어 게임’ 같은 독특한 상상력도 중요하고, ‘폭싹 속았수다’를 보듯 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세계인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공감하게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역사적으로 한국처럼 외국 침략을 많이 받고 끝내 견뎌 나라를 지킨 경우도 드물다. 그 모든 역사가 스토리텔링의 대상이다.
따라서 문체부와 콘텐츠진흥원은 작품의 원천이 될 수 있는 스토리텔링 발굴에 주력하고 지속적으로 공모전을 개최해 신인을 발굴해야 한다. 역량 있는 작가는 곧 바로 감독을 소개해주고 제작비도 지원해 실질적인 도움이 되게 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가 그걸 해주길 기대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한없는 문화의 힘이다” - 백범 김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