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연합뉴스 © 서울의소리 |
역시 ‘되는 집안은 되는 모양’이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5일이 지난 9일, 미국에서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공연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에서 6관왕을 휩쓸었다. 이는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 4관왕을 뛰어넘은 것이라 의미가 깊다. 대중음악에서 시작해 영화·드라마 등으로 퍼져나간 K-컬쳐에 대한 열풍이 이제 뮤지컬로까지 확장되어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문화강국’의 꿈이 이루어질 것 같다.
마침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연설 때마다 백범 김구의 문화강국을 외치며 문화가 경제가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는데, 이에 대답하듯 기쁜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혹자는 뮤지컬이 뭐 그리 대단하느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는 뮤지컬이 영화 못지않게 인기가 높고, 그로 인한 부가가치도 높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뮤지컬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해외에서 한국을 찾을 것이고, 그에 따라 관광이 활성화되고 한국 제품도 불티나게 팔려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가 경제가 되는 것이다.
독특한 내용, 아름다운 음악, 환상적 분위기에 전 세계 매혹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은 공연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토니상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연출상, 극본상, 음악상, 무대 디자인상까지 10가지 선정 부문 중 6종류를 수상했다. 한국인 최초, 한국 창작 뮤지컬 최초의 성취다. 이번 수상으로 박천휴 작가는 한국 창작자로는 최초로 토니상을 받은 새 역사를 썼다.
"공상과학의 기발함을 겉으로 내세우면서 완전히 독창적인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는 감동을 슬그머니 숨겨놓았다." 한국 창작 뮤지컬로는 처음으로 미국 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쓴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에 대해 제시 그린 미 평론가는 뉴욕타임스(NYT)를 통해 이같이 격찬했다. 공상과학(SF) 장르에 사랑이라는 보편적 정서를 섬세하게 얹은 한국형 로맨틱 코미디가 미국 현지 평단과 관객을 모두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근미래 서울에서 인간을 돕기 위해 제작된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가 만나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다. 올리버의 주인을 찾아 두 로봇이 제주로 향하는 여정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한다. SF 장르의 형식을 취하면서 로맨틱 코미디, 로드 트립, 코미디 요소까지 절묘하게 엮어냈다. 크리스천 루이스 평론가(미국 바사칼리지 교수)는 미 연예 매체 버라이어티에서 "어떤 면에서는 신선하고 현대적이며, 어떤 면에서는 정형화된 이 뮤지컬은 로맨틱 코미디의 은유와 장르적 관습을 자의식적으로 재해석해 재치있게 풀어낸다"고 극찬했다.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아
‘어쩌면 해피엔딩’은 인공지능(AI) 로봇이라는 참신한 소재에 사랑이라는 보편의 감정을 전달하면서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잡았다. LA타임스는 "'어쩌면 해피엔딩'은 실제 사건이나 기존 음악, 자료에 기반하지 않은 작품"이라며 "그 무모한 독창성이 가장 큰 장점이 됐다"고 짚었다. 이어 "아파트에 사는 유일한 생명체가 화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생명의 아름다움을 탐구하는 독특한 작품"이라고 했다.
섬세하게 짜인 두 로봇의 감정선에 관객들은 깊이 이입됐다. 스스로를 '반딧불이들(fireflies)'로 칭하는 열성적인 현지 팬덤이 형성된 배경이다. 현재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는 '반딧불이들'을 자청하는 이용자 1,900여 명이 공연 후기를 나누고 영상을 제작하는 2차 창작 활동에 나서고 있다. 좋아하는 캐릭터로 분장하고 N차 관람을 하기도 한다. 공연이 끝나면 무대 출입구에는 배우들을 기다리는 팬들로 장사진을 쳤을 정도다.
대자본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차별화
무대 위 배우가 단 4명에 불과한 소극장형 뮤지컬이라는 점 역시 대자본 브로드웨이 뮤지컬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그럼에도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복잡하고 정교하게 설계된 최첨단의 무대 세트가 있기 때문에 작품이 크게 느껴진다"고 NYT는 전했다.
작품에 녹아든 한국적 요소도 독특한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작진은 극 중 올리버가 기르는 식물인 '화분'을 미국 공연에서도 한국어 발음 그대로 부르는 등 한국적 설정을 유지했다. 그동안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로봇을 연기해왔지만, 무대 배경 역시 대부분 서울이었다.
올리버를 연기해 이번에 남우주연상을 받은 대런 크리스는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작품의 무대로 설정한 곳은 분명 한국이고, 쇼의 일부는 문화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면서도 "우리 모두는 살고, 죽고, 언젠가는 사랑하거나 사랑받기를 희망한다는 보편적 주제를 담고 있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문화 강국 꿈 이루어지길
한국은 이미 문화강국이지만 윤석열 정권 들어 한류가 조금 시들해진 것은 분명하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K컬쳐가 다시 세계를 매혹해 그것이 문화 발전은 물론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길 소망해 본다. 이 모든 것이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김대중 정부의 문화 정책의 기조에서 탄생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