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조선일보 ©서울의소리 |
방씨조선일보 김광일 기자가 이순신 장군 탄신일인 4월 28일에 ‘왜 우리는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하는가?’라고 물었다. 우연히도 4월 27일에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전 대표를 21대 대통령 후보로 확정했다. 김 씨는 이 후보를 ‘비위 혐의로 다섯 재판을 받는 후보’라고 불렀다. 평소 이재명 후보 죽이기에 날뛰던 방씨조선일보에 비하면 차라리 점잖게 들렀다. 김 씨가 어떻게 해서라도 잔치 분위기에 고춧가루를 뿌리려는 고약한 심보는 아니리라. 내란 수괴 윤석열을 감싸며 그를 맹종하는 내란 대행이라 불리는 한덕수를 덮으며 ‘잘못된’ 지도자를 말하는 ‘잘못된’ 김 씨가 안쓰럽다.
우선 김 씨의 질문 속 우리라는 말이 궁금하다. 방씨조선일보가 그동안 대통령 선거가 있을 때마다 보여온 행태를 돌이켜보면 더욱 그렇다. 이른바 불편부당한 심판이라기보다 노골적으로 부정부패 선수로 뛰며 온갖 반칙을 저질러 온 집단이 방씨조선일보다. 특히 그들이 살인마 전두환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한 공로로 오늘날 최고 부수라는 추악한 영광을 누리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파면이 되고 내란 우두머리로 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을 지도자로 선택하도록 앞장 선 자들도 방씨조선일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방씨조선일보는 아직도 내란의 끝을 잡고 자신들이 선택한 지도자에게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 지도자였던 자의 허황한 내란의 꿈을 아직도 옹위하고 나서고 있다. 내란 대행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한덕수를 감싸며 그를 추켜세우는 못된 짓을 벌일 것이 뻔하다. 그럴수록 고마운 일이긴 하다. 방씨조선일보가 저지른 반민족 범죄 행위에 대해 단죄하지 못한 과거를 일거에 청산할 호기이기 때문이다. 내란 세력을 청산하면서 방씨조선일보가 윤석열 일당과 야합하여 12.3 내란 과정에서 저지른 범죄를 낱낱이 가려내야 한다.
정치 세력은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4~5년에 한 번은 국민의 심판을 받는다. 하지만 방씨조선일보는 1920년 친일 실업인들이 창간한 이래 좀 더 정확하게는 1933년 반민족행위자 방응모가 인수한 이래 단 한 번도 처벌받지 않았다. 방씨들이 인수한 이래 92년 동안, 언론을 가장한 족벌기업으로 저질러 온 반민족 반민주 반민생 범죄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하고 처벌해야 한다. 방씨조선일보에 대한 신상필벌을 통해 사필귀정이 실현되어야 한다. 위기라는 말에는 위험과 기회가 함께 들어있다. 윤석열의 내란이라는 위험을 물리치고 방씨조선일보 처벌을 통해 평화와 번영이라는 기회를 살려야 한다.
김 씨가 언급한 ‘권력의 심리학’이란 책을 읽고 있다. 그는 그 책을 읽고 ‘왜 우리는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하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린 것으로 보인다. 그에 대한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여전히 숨통을 끊어야 할 내란의 끝을 잡고 선동질에 광분하는 있는 이른바 K 엘리트 등을 ‘처단’하면 된다. 그들을 생산해 낸 사회구조를 척결하면 된다. ‘잘못된’을 넘어 ‘나쁜’도 모자라 ‘사악한’ 지도자를 뽑아내는 구조 한가운데 은거하는 범죄집단 방씨조선일보를 끝장내면 된다.
김 씨가 잘못된 지도자라는 부드러운 어휘를 선택한 깊은 뜻은 무얼까? 혹시 사악한 범죄집단인 자신들을 ‘잘못된’이라는 말로 물타기를 하며 갱생의 기회를 노리는 것은 아닐까? ‘잘된’ 언론이라면 이런 질문을 함부로 하지는 않을 것이다. ‘잘된’ 민주주의에서는 입법, 행정, 사법과 함께 언론을 제4부라고 부르며 지대한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사회적인 역할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잘못을 넘어 사악한 짓을 거침없이 저질러 온 방씨조선일보에 대해 청산하는 것이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하지 않는 첫 걸음이다.
‘잘못된’이라는 말이 성에 차지는 않지만 잘못된 지도자를 떠올리지만 단연 히틀러다. 견문이 적어 그가 얼마나 많은 자국민을 학살했는지를 알지 못한다. 부끄럽게도 우리에겐 자국민 학살에 앞장선 이승만이라는 초대 대통령이 있었다. 피의 살육전을 통해 독재자의 지위를 차지한 전두환도 잘못된 지도자라면 빠뜨릴 수 없다. 우연하게도 방씨조선일보가 우러러 마지않는 ‘잘못된’ 지도자들이다.
잘못된 지도자를 찾는 일에 행복해할 사람은 없으리라. 내란 수괴 윤석열은 잘못된 지도자의 변경을 넓혔다. 한 여성을 사랑하기에 국민을 저버렸다는 의심을 지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지도자를 우러르며 그를 흉내 내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잘못된 지도자를 넘어 사악한 지도자일 뿐이다. 또다시 한 여자만을 바라보며 그 여자의 무속을 믿으며 국민을 함부로 하려는 자가 있다면 국민이 막아서야 마땅하다. 대한민국은 또다시 잘못된 지도자를 맞을 만큼 한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방씨조선일보가 선동질해 세웠던 잘못된 지도자로 인하여 백척간두에 서 있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가하게 잘못된 지도자 타령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부패한 정치검찰과 한 몸이 된 언론을 가장한 범죄집단이 만들어낸 이를 괴물이라며 겁낼 때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증명된 잘못된 지도자를 뽑기에 혈안에 되어있던 자들을 서둘러 벌해야 한다. 교활한 그들은 지금도 신분 세탁에 여념이 없다. 일제 강점기와 군사독재기에 저지른 노골적인 반언론적 작태에도 뻔뻔하게 거짓을 늘어놓고 있다. 그 중심에 방씨조선일보가 우뚝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김 씨는 서점에서 나오며 “나는 선지자입니다. 내가 한 말 중에 틀린 말이 있었습니까”라고 외치는 말에 놀랐다고 한다. 능청스럽게 ‘왜 우리는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하는가?’를 외치는 김 씨와 방씨조선일보에 깜짝 놀란다. 저들의 천연덕스러움에 숨겨져 있는 ‘악의 평범성’에 경악을 금할 수가 없다. 일찍이 윤석열 내란 수괴에게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를 외쳤던 성직자들을 떠올린다. 그들이 선지자였던 것은 아닐까? 나는 방씨조선일보에게 묻는다. ‘어째서 신문이 이 모양인가?’
그리하여 다시 조선일보는 폐간만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