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배반 민주훼손 방씨조선일보의 칼럼 생산 구조를 잘 알지 못한다. 외부 필진이 쓰는 글이 방씨조선일보의 터무니없는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한술 더 뜨는 것을 눈여겨본 정도다. 방씨조선일보에서 일하는 이들을 언론인이라기보다 종업원이라고 생각한다. 외부 기고자들이 외주를 맡은 준 종업원은 아닌지 생각해 본 적도 있다.
본 내용은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이며 본사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님을 밝힙니다’라는 핑계도 찾아보기 어렵다. 서로 짬짜미를 했으리라 생각하며 읽는다.
![]() ▲ 출처=조선일보 © 서울의소리 |
방씨일보 4월 26일 기사 ‘노동운동가는 왜 조선일보에 칼럼을 쓰게 됐나’라는 다소 색다른 제목의 글을 읽었다. 한국노동재단 사무총장 한석호라는 사람이 쓴 글이다. 노동자와 노동 운동가가 얼마나 다를까 궁금하다. 노동하면서 자신들의 일상과 주장을 글로 써서 알리는 사람을 굳이 노동 운동가라고 한다면 그러리라 하겠지만 그런 분들이 스스로를 노동 운동가라고 자칭하지는 않을 듯하다. 한 씨는 글에서 고위 공무원을 상상하며 대학교에 입학했으나 국민을 짓밟는 전두환을 용서할 수 없어서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그다음에 노동운동으로 무대를 옮겼다고 했다. 노동운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직업 운동가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노동 운동가인 자신이 방씨조선일보에 글을 쓰는 것이 대단하다는 자세도 호기롭다.
평소 방씨조선일보를 독극물이라 생각하고 해독하기 위해 꾸준히 비평해 오는 내게도 일단 자극적인 제목이었다. 한 씨 스스로 밝힌 대로 자신이 노동 운동가였다면 방씨조선일보가 얼마나 악랄하게 노동 문제를 다뤄왔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한 씨는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로 들어왔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먹던 물에 침을 뱉을지언정 그렇게도 민주노총이나 노동자들을 악마 취급하는 방씨조선일보와 손을 잡은 절실한 이유는 찾을 수 없다. 자신의 안일을 위해 투항한 것은 아닌지.
![]() ▲ 출처=조선일보 © 서울의소리 |
정확히 1년 전인 2024년 4월 26일 방씨조선일보의 김윤덕 씨가 ‘"전태일을 진영에 가두지 말라"는 한석호의 절규’라는 제목의 칼럼을 내보냈다. 당시 김 씨는 ‘낮은 곳의 노동 품은 전태일, 진영·매체 가리지 않아… 백의종군하며 이어갈 것’이라며 한 씨의 ‘절규’를 전했다. 한 씨가 하필 반노동의 선봉인 방씨조선일보와 함께 하게 된 이유를 친절하게 풀어썼다. ‘노동의 이중구조 문제에 보수도 따뜻한 관심을 가져달라’는 내용까지 절규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가 고위 공무원을 상상하며 대학교에 입학했다는 말은 솔직한 고백으로 읽힌다. 김윤덕 씨에 따르면 ‘한석호는 민주노총 위원장도 될 수 있었던 인물이다. 거대 노조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하청 근로자와 영세 상공인들의 고통을 눈감고 외면했다면 그는 투사의 훈장을 달고 지금쯤 국회의원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한다. 김 씨의 추측인지 한 씨가 말한 내용인지는 확인하고 싶지 않다. 다만 ‘하청 근로자와 영세 상공인들의 고통을 눈감고 외면했다면’이라는 대목에서 저들의 저의가 읽힌다. 그렇게만 됐다면 한 씨는 꿈을 이루고 제 발로 방씨조선일보를 찾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은 든다.
한국의 노동운동 목표가 대한민국을 전복해 공산주의 국가로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 씨의 주장은 거침이 없다. 차라리 자포자기하는 마음으로 투항한 자가 적들이 요구하는 대로 함부로 지껄이거나 받아썼다면 위안이 될 듯한 내용이다. 그는 ‘노동운동 목표는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공산주의 평등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마르크스, 레닌, 김일성 등의 영향이었다.’고 썼다. 노동운동에 앞장서지는 못했지만 노동자의 삶이 개선되기를 바라면서 그들을 응원했던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다. 한 씨가 솔직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조차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방씨조선일보가 노동자나 노동운동을 악마화한 것이 정당하기 때문이다.
재벌과 기업가, 자사 이기주의, 자본에 충직하게 복무해온 조선일보가 과연 칼럼 몇 편에 바뀔 수 있다고?
한 씨는 지난 3월 18일 경향신문 기고문 ‘2차 노동의 삶과 꿈을 찾는 한국노동재단’ 글에서 이렇게 썼다.
“한국의 노동 시장은 전통적 노사 갈등을 넘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노·노 갈등, 원청과 하청기업의 사·사 갈등, 최저임금과 영세 상인의 노·상 갈등, 청년과 중년 노동의 세대 갈등 등이 다층적으로 얽히고설켜 이해가 충돌하는 영역이다. 문제를 풀려면 진보와 보수가 함께 나서야 하고, 노총과 경총 중심의 기존 노사정뿐 아니라 각계각층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이중구조 개선의 사회적 과업에 벽돌 한 장 보태려고 지난 1월22일 한국노동재단을 창립했다.”
한씨가 진단한 대한민국 노동계의 문제점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란다.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기업의 생산성과 노동자의 일자리와 사회 통합 등 대한민국 성장에 심각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어 이 얘기를 하고 싶어 조선일보 칼럼을 시작한단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노동자들이 만들었던가? 재벌과 기업가들, 이들과 결탁한 정치, 행정가들이 만든 게 아닌가?
과연 그럴까?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노동자들이 만들었던가? 재벌과 기업가들, 이들과 결탁한 정치, 행정가들이 만든 게 아닌가? 그래서 이를 타파하려면 저들의 심장부에 들어가 그곳을 갈아엎어야 하지 않나? 재벌과 기업가, 자사 이기주의에 충직하게 복무해온 조선일보가 과연 한 씨 같은 사람의 칼럼 몇 편에 바뀔 수 있다고 믿는가? 조선일보 독자들의 많은 격려와 애정 어린 비판을 바란다는 말도 덧붙이는데 조선일보 독자들 성향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한 씨 생각이 미숙한 것인지 허망한 것인지 결론은 예전에 다 드러났다고 본다. 잘못된 진단과 치료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기 십상이다.
지난날 이른바 귀순 병사들이 대남 방송에 나와 심리전을 수행했다. 자신과 함께했던 이들의 아픈 곳을 가장 잘 알기에 그들을 흔들어 놓기에는 최적임자라고 생각했으리라. 한솥밥을 먹던 동지들에게도 매몰찬 비판을 가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어지는 가혹한 자리다. 게다가 반대편의 눈에 들기 위해선 얼토당토않은 거짓말까지 늘어놓아야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될 수 있으니 문제다.
김윤덕 씨가 쓴 칼럼 내용이다. ‘전화기 너머 한석호는 씩씩했다. “백의종군하려고요. 이제 겨우 한 걸음 뗀 거 끝장을 봐야죠. 말했잖아요. 나란 놈은 도무지 꺾이지 않는 유형이라고, 하하하!”’ 문득 망상으로 가득한 내란 수괴 윤석열의 모습이 겹치는 까닭은 단순한 내란 트라우마 때문일까? 더구나 언론계 내란 수괴로 지목되는 방씨조선일보와 한 씨가 한편이 되었다니 걱정이다.
그리하여 다시 방씨조선일보는 폐간만이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