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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배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이 '어른 김장하'로 알려진 독지가 김장하(81) 선생의 장학생 혜택을 받고 그의 귀한 뜻을 새기면서 법조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선생이 재주목받고 있다. 이유는 선생이 세상을 향해 펼친 '선한 영향력'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선생의 도움으로 가난한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었고,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쉼터가 세워졌고, 민족문제연구소에 거금을 쾌척해 ‘친일인명사전’ 제작이 신속하게 이뤄졌다. 하지만 선생은 늘 뒤에서 낮은 자리를 자처했고, 이는 2022년 ‘어른 김장하’라는 제목의 '경남 MBC'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수많은 이에게 커다란 울림을 줬다.
지난 2019년 4월9일 문형배 당시 헌법재판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장에서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1965년 경남 하동군에서 가난한 농부의 3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낡은 교복과 교과서일망정 물려받을 친척이 있어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고,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독지가인 김장하 선생을 만나 대학교 4학년까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학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사법시험에도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중략)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내게 고마워할 필요는 없다. 나는 이 사회의 것을 너에게 주었으니 갚으려거든 내가 아니라 이 사회에 갚아라'고 하신 선생의 말씀을 저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김장하 선생은 경남 진주에서 ‘남성당 한약방’을 운영하며 번 돈으로 1983년 진주에 명신고등학교를 세워 1991년 경상남도에 기증했다. 이외에도 진주 오광대복원사업, 경상대학교 남명관 건립에 도움을 줬으며 10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었는데 그중 한 명이 문형배 대행이었다.
문 대행은 낮은 자리를 자처한 김장하 선생의 뜻을 실제 자신의 삶에서 실천해 온 것으로 보인다. 청문회 당시 그의 재산은 6억 7545만원으로 신고됐고, “너무 적은 거 아니냐”라는 질문이 나올 정도였다. 이에 문 대행은 “제가 결혼할 때 다짐한 게 있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되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최근 통계에서 가구당 평균 재산이 한 3억 원 남짓 되는 거로 아는데 제 재산은 (부친 재산을 제외하면) 4억 원이 조금 못 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평균 재산을 좀 넘긴 거 같아 반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문 대행은 "기부는 부자가 아니라 인간이 해야 할 도리"라고 말하던 김장하 선생의 기억을 새기며, 이를 우리 사회가 본받아야 할 철학으로 제시했다. 대통령 파면 과정에서 극우들의 가짜뉴스로 온갖 음해에 시달렸던 문 대행은 헌법재판관 퇴임 뒤 계획에 대해 청문회 당시 “영리 목적의 변호사 개업 신고는 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문 대행은 오는 18일 퇴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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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훤주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는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 대행이 금권선거와 뇌물 사건은 '강강' 일반 형사 사범은 '약약' 판결로 강자에게는 강하게 약자에게는 부드럽게 한다는 지방법원 판사 시절의 실사례를 짚었다. 김 기자는 "문형배는 그때 창원지방법원 제3형사부 부장판사였고 나는 그 법원을 드나드는 출입 기자였다"라며 "선거 부정과 뇌물에 엄격한 민주주의자"라고 문 대행을 평가하면서 이렇게 서술했다.
의장 당선을 위해 아내를 통해 같은 시의원들에게 1000만 원을 뇌물로 건넨 배영우 창원시의회 의장에 대해 징역 1년을 선고하면서 법정구속했고 뇌물 1500만 원을 준 업체에게 낙동강 모래 채취권을 넘겨주려고 했던 김종규 창녕군수에 대해서도 징역 2년 6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그(문 대행)의 문제의식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부패 사범에 대한 엄정 처벌은 대법원의 일관된 방침이고 그 약속을 지켜야만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생계형 범죄는 곤궁함이 해결되지 않는 한 아무리 엄벌해도 다시 생기지만 고위층 부패는 싱가포르처럼 엄정 처벌하면 재발 방지가 된다”였다.
문 대행의 판사 시절 일화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30대 방화미수범에게 2007년 2월 선고 공판에서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를 인생 지침서로 선물하면서 “자살”을 열 번 외치게 했던 일이다.
피고인은 영문도 모른 채 열 번을 외쳤고 이를 다 듣고 난 문형배는 이렇게 말하며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피고인은 ‘자살’이라고 했지만 우리 귀에는 ‘자, 살자’로 들린다. 죽어야 할 이유를 살아야 할 이유로 새롭게 고쳐 생각하며 살아보시라.”
이를 두고 문형배가 한 번 튀어보려고 꾸며낸 일 정도로 여기는 이들이 간혹 있다. 하지만 그런 목적이 아니다. 그날 우연히 그 법정에 기자들이 들어가지 않았다면 기사로 나오지도 않았을 그런 이야기다. 사람을 중심에 놓고 궁리한 끝에 찾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방편이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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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경남이 2023년 방영한 2부작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 MBC 경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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