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문학상 연설에 한국 현실 언급 세계에 전파
작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으로 한 연설을 유튜브로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그녀가 말한 ‘세계는 왜 이렇게 폭력적인가’가 가슴에 화살처럼 꽂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벨마스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조국 한국에서는 그 순간 계엄군이 민의의 전당인 국회를 짓밟았다.
예술 작품은 보통 과거를 담지만 그것은 동시에 미래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작가 한강은 지난 시간의 아픔들, 즉 제주 4.3 항쟁과 광주 5.18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폭력에 의해 죽어간 사람들을 위로한 동시에 앞으로 일어날 또 다른 폭력에 경고를 했던 셈이다. 공교롭게도 윤석열이 계엄령을 선포했다.
아홉 살 때 쓴 시 소개하며 연설 시작해
한강은 자신이 아홉 살 때, 그러니까 1980년 노트에 쓴 시를 소개하며 자신이 글을 써야 했는지를 차분하게 설명했다. 그때 쓴 시에 이런 대목이 있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어떻게 이런 시를 쓸 수 있는지 놀랍다. 부친인 한승원 선생이 유명한 작가이니 그 피를 이어받아 유달리 감수성이 뛰어났겠지만, 사랑을 나름대로 정의한 것은 천재적이다. 그때 이미 한강은 노벨문학상을 예고한지도 모른다. 예술가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타고난 유전자가 90% 작용한다는 말이 있다. 예술적 능력은 흔히 말하는 지능지수(IQ)완 다른 것이다.
연설 원고가 마치 한 편의 소설
7일 스웨던 한림원엔 수백 명의 문학관계자들이 앉아서 한강의 연설을 듣고 있었는데, 미리 배포된 인쇄물을 보거나 동시통역을 들으며 한강의 말에 공감하는 표정을 지었다. 필자가 듣기에 한강의 역설문은 그동안 나온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연설문 중 가장 깊이가 있고 시적이었다. 연설문 자체가 한편의 소설이었다.
노벨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 주간(Nobel Week·5∼12일)을 선정하는데, 한강이 초대되어 연설을 했다. 한강은 지 자리에서 1993년(23세) 작가 생활을 시작한 뒤 31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집필한 장편소설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며 만난 질문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소설을 쓰는 일은 질문들을 견디며 사는 것
작가 한강은 장편소설을 쓰는 일을 “질문들을 견디며 사는 것”이라고 했다. 그녀는 “질문과 함께 사는 소설가는 글쓰기를 시작한 시점과 끝마친 시점에 있어 같은 사람일 수 없다. 변형된 상태에서 다시 출발한다.”라고 말했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끊고자 한 주인공 영혜와 언니 인혜, 그 주변 인물들을 다룬 책 ‘채식주의자(2007년 출간)’ 앞에서 한강 작가는 “한 인간이 완전하게 결백한 존재가 되는 것은 가능한가? 우리는 얼마나 깊게 폭력을 거부할 수 있는가? 그걸 위해 더 이상 인간이라는 종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고 물었다. 한강 작가는 이 작품으로 2016년 한국인 최초로 영국 맨부커상 국제 부문 상을 받아 노벨 문학상의 기틀을 마련했다.
광주 5.18과 제주 4.3이 한강의 문학 세계 바꿔
작가 한강은 ‘소년이 온다’로 광주 5.18 때 실제로 희생된 소년을 다루었고, ‘작별은 없다’를 통해 1948년에 일어난 제주 4.3항쟁을 다루었다. 그러니까 광주 5.18과 제주 4.3이 작가 한강의 작품과 인생 전체를 바꾸어버린 것이다.
작가 한강은 아버지(한승원 선생) 서재에 꽂혀 있는 광주학살 사진첩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사진첩에는 전두환 계엄군에 죽어간 광주시민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목이 잘린 사람, 두개골이 깨진 사람, 유방이 잘린 여자, 창자가 밖으로 나온 남자, 임신한 여자... 작가 한강이 그 사진첩을 본 순간 그녀는 이미 작가였으며 노벨문학상을 예고한지도 모른다.
인간의 상반된 모습이 담긴 이 사진들을 본 한강 작가가 품은 의문은 이랬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 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조국 한국의 위정자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2021년 출간한 ‘작별하지 않는다’를 쓸 때도 비슷한 질문을 했다. 1948년 제주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서 살아남은 ‘정심’은 오빠의 유골을 찾기 위해 분투하고, 수십년이 지나도록 애도를 종결하지 않으며 끝끝내 망각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한강 작가는 이 책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을 글쓰기의 동력으로 삼았다.
이렇게 절실한 질문의 끝에서 한강 작가가 되돌아온 곳은 45년 전의 어렸던 그가 “사랑이란 어디에 있는지, 사랑은 무엇인지” 묻고 답한 시였다. 어린 한강은 사랑이 “나의 심장”이란 개인적 장소에 위치하고, 사랑은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라고 답했다.
고통은 연결되어 있다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출간한 뒤, 소설을 읽고 고통을 느낀 독자들을 보며 이들의 고통이 자신이 소설을 쓰며 느낀 고통과 “연결”돼 있었다고 했다. 이 고통의 이유를 두고 그는 “우리는 인간을 사랑하고자 하기에, 그 사랑이 부서질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일까? 사랑에서 고통이 생겨나고, 어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인 것일까?”라며 처음으로 사랑을 생각했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정심’을 들여다보면서는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한편 작가 한강은 한국에서 벌어진 계엄령 사태에 매우 우려했는데, 자신이 소설 속에서 쓴 폭력이 재현되지 않을까 하고 노심초사한 것 같다. 그러나 그녀의 소설에 공감한 수백만 독자들이 제2의 전두환인 윤석열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청산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 윤석열과 김건희는 결국 민심의 단두대에 설 것이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 예고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