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교육청이 지난해 9 ~ 11월 사이 청소년 유해매체 심의기준이 담긴 공문을 전달했다. 그 결과 2490개 학교에서 총 2528권을 유해도서로 지정하여 폐기했다. 물론 이렇게 폐기된 도서 중에는 최근 노벨 문학상으로 선정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같은 작품도 눈에 띈다. 지난 10월 22일 임태희 교육감은 경기도교육청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에 대한 질문에 “학생들에게 민망할 내용이 있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주관적인 판단이겠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의 도서를 민망할 수준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결국 교육감의 수준이 노벨상을 이해할 수 없는 저급한 수준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유해도서라고 지정된 도서 목록에는 도저히 유해한 내용이라고는 들어있지 않은 도서가 눈에 띄기도 한다. 바로 ‘줄리의 그림자’라는 도서이다. 이 책의 주인공 여자 어린이인 줄리가 남자 같은 성격으로 남자아이처럼 놀이를 즐긴다. 그러나 결국 여자다움 또는 남자다움 대신 자신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결말을 갖는 내용이다. 유해도서라고 볼 수 없을 정도로 평이하고 자연스러운 책이다. 1975년에 출간된 이책은 우리나라에는 2019년 7월에 번역 판매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티앙 브뤼엘은 프랑스의 유명 동화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동아일보가 추천도서로 극찬을 보내기도 했다. 심지어 이 책은 조선일보의 자회사인 (주)조선교육문화미디어에서 출간한 도서였다. ‘이마주’라는 이름이 바로 해당 출판사의 창작동화 브랜드이다. 즉, 조선일보가 펴내고 동아일보가 극찬한 이 ‘줄리의 그림자’라는 어린이 동화책이 유해도서로 지정되어 철퇴를 맞게 된 것이다. 보통 청소년 유해도서 지정 사유는 노골적인 성 묘사 또는 음란한 내용이 포함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 책은 음란 또는 성 묘사와는 전혀 거리가 멀다. 그리고 나답게 살자는 주제가 왜 유해도서로 지정될 만한 사유인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오히려 이 정도의 주제와 내용은 매우 단순하고 뚜렷할 뿐만 아니라 권장도서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렇다면 혹시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과거 줄리라고 불린 한 여인 때문에 경기도의 자체 검열에서 벌어진 일이 아닐까라는 자연스러운 유추를 하게 만든다. 이미 줄리라는 이름은 대한민국의 세계적 조롱거리가 된지 오래다. 프랑스 언론에서 콜걸이라고 부른 것도, 미국언론에서 빨래 건조대라고 명명한 것도 줄리라는 이름에서 파생된 결과물이다. 결국 대한민국의 영부인이 과거 줄리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이력을 숨기기 위해, 청소년에게 줄리라는 이름이 알려질 것을 두려워해서 유해매체라고 지정된 것은 아닌가라는 해석이 가능해 진다.
박정희 전두환 시대 지정된 금지곡은 오히려 대중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몰래 듣는 음악으로 남모르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또한 이명박 정부 당시 국방부 지정 불온서적 리스트는 각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박근혜 당시의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문화예술인들은 해외의 각종 시상식에서 큰 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경기도 교육청의 자체 검열로 시작된 청소년 유해도서는 줄리에 대해 어떤 결말이 내려질 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