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에서 선임행정관을 지낸 김대남 SGI서울보증 상근감사위원이 ‘서울의소리’ 기자와 나눈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내용을 들어보면 본지가 이번 정권 출범 초부터 해왔던 얘기들이 하나도 빼놓지 않고 사실이었다는 점이 입증되는 것 같아 참담하기 그지없다. 보도를 하면서도 ‘설마, 설마’했던 내용들이었기에 대한민국의 앞날이 걱정될 뿐이다. 대통령제에서 권력은 인사권에서 나온다. 대통령은 인사를 통해 국정철학을 펼치고, 정권의 기강을 바로 세운다. 본지가 이 정권에서 인사는 김건희 여사가 하고 있고, 따라서 이 정권은 김건희 정권이라고 했는데, 김대남 감사의 녹취는 이것이 하나도 틀리지 않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충격적인 것은 대통령실 비서관 직무대리까지 했던 인사가 대통령은 ‘지가’라고 표현하면서, 김건희 여사는 ‘여사’라고 존칭을 그대로 사용하는 모습이다. 지금 본국 정가에서는 머지않아 정권 인사를 떡 주무르듯 하는 대형 게이트가 불거져 나올 것이란 설이 돌고 있고, 12월 하야설도 나온다. 김대남 녹취록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된 이 야만의 정권의 본모습을 <선데이저널>이 추적해봤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는 기본적으로 생각없이 말을 아무렇게나 하는 사람들이다. 말에 필터가 없다. 머리에서 생각나는 대로 쏟아내는 사람이다. 이런 그들의 음성이 처음 공개된 게 바로 <선데이저널>을 통해서다. 선데이저널은 지난 대선 한 주 전,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 지인들과 나눴던 음성파일을 입수해 단독으로 보도했다. 사실 그 영상이 보다 널리 알려졌으면 지금의 윤석열은 없었을지 모른다. 어찌됐든 이 파일에서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이 국가 공무원인 검사였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을 욕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그런데 그런 그의 입과 비슷하게, 윤석열 정부는 계속 터져 나오는 녹취록으로 만신창이가 됐다. 입에 거의 걸레를 문 참모들만 골라 뽑아서, 그들의 음성도 공개되고 있다. 김건희 여사는 말할 것도 없다. <서울의소리>는 30일 밤, 김대남 대통령실 전 선임행정관(현 서울보증보험 상근감사위원)이 자사 이명수 기자와 통화한 녹취록을 추가 공개했다.
대통령을 바보 천치로 만들어
공개된 녹취록에 따르면, 김대남은 당대표 선출을 위한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둔 지난 7월 10일 통화에서 이 기자에게 한동훈 후보를 경선에서 떨어뜨리기 위해 한 후보가 4월 총선 당시 비대위원장 직권으로 총선 여론조사 당비를 이용해 자신의 대선인지도 여론조사를 시행했다는 정보를 주면서 한 후보를 공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김대남은 이 과정에 당시 파장이 일었던 이른바 ‘한동훈의 김건희 문자 읽씹’ 사건을 거론하며 “김 여사가 인간적으로 좀 배신감이 들었지. 그 XX 키워준 사람 아니야. 막말로 외국 갔다 오면 넥타이도 선물해주고 그랬다는 거 아니야. 근데 이렇게 밟고… 완전히 맛탱이가 가는 거지. 근데 또 이제 당 대표까지 해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야 니네가 이번에 그거 잘 기획해서, <서울의소리>에서 (한동훈을) 치면 아주 여사가 니네 이명수…야 들어다 놨다 했다고 좋아하겠는데”라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7월 12일 <서울의소리>는 <[단독] 한동훈 당비 횡령 유용 의혹>이란 제목의 기사를 통해 김대남이 말한 내용을 그대로 보도했다. 그 후 이 기사는 국민의힘 경선 과정에 친윤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던 원희룡 후보 측이 한 후보를 공격하는 데 사용됐다. <서울의소리>는 “김대남의 일련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전직 대통령실 비서관이 김건희 씨를 위해 국민의힘 당 대표 경선에 개입을 원하는 누군가로부터 전달받은 당 내부 비리 내용을 외부로 흘렸고 당 내부에서 호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충격적인 것은 김 감사가 사용한 단어들이다. 그는 윤 대통령이 총선 참패 후 박영선 전 민주당 의원과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을 새 국무총리와 비서실장으로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던 지난 4월 18일 통화에서는 “그 생각 자체가 골 때리는 거지. 그리고 지금은 저게 지금 꼴통이 맞아. 본인이 뭘 잘못했냐고 계속 그러고 있대”라며 윤 대통령을 ‘꼴통’이라고 비난했다.
대통령실 현직 비서관이 대통령을 향해서는 ‘저게’ ‘꼴통’이란 막말을 서슴치 않으면서, 정작 김건희를 향해서는 ‘여사’라며 존칭을 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김대남 감사가 김건희 여사의 사람이란 말이며, 윤 대통령과는 일면식도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본지는 현 정권 실세로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을 꼽으며, 그의 만행을 수차례 보도했는데 이번 녹취 파일에 이철규와 관련된 것도 나왔다. 서울의소리가 지난달 23일 공개한 녹취록에서 김 감사는 이명수 기자와 한 통화에서 “이철규가 용산 여사를 대변해서 공관위에서 일을 하고 있다”며 “아주 그냥 여사한테 이원모(전 대통령실 인사비서관) 하나 어떻게 국회의원 배지 달게 해주려고 저 ××을 떨고 있다”고 말했다.
이철규 공천만행 드디어 터져
이어 “이원모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근데 그렇게 신줏단지 모시듯이 저 야단 난리치고 있잖아”라며 “왜냐면 이원모 (공천)잘못되면 이철규가 날아가”라고 했다. 이어 이 기자가 “김건희 여사가 공천 개입을 많이 하고 있긴 하네요”라고 하자 김 전 행정관은 “하고 있지. 그 루트가 이철규야”라고 답했다. 김 여사가 자신과 가까운 이 전 비서관을 전략공천하기 위해 이철규 당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인재영입위원장)을 통해 공천 작업을 했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다. 본지는 이번 정권의 인사를 김건희 여사가 주물럭 거리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월간조선 편집장 출신인 김성동 ebs 부사장의 사례를 들었다. 그런데 비슷하게 여사의 사람으로 꼽히는 김대남이 자기가 원하는 자리를 정확하게 찍어서 갔다는 것은 역시 인사권을 김건희 여사가 휘두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는 이 기자와의 통화에서 “내가 선택했지 찍어가지고”라며 “거기가 좋다는 소식을 내가 딱 괜찮다는 얘기를 듣고 왜냐하면 다른 데는 2년인데 일단 (임기가) 3년이니까. 3년이면 우리 정부 있을 때까지 다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보증보험은 개인과 중소기업 등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사로, 준정부기관인 예금보험공사가 서울보증보험의 최대주주다. 예금보험공사가 어떤 과정을 거쳐 김 전 비서관을 추천했는지는 베일에 싸여있다.
공개 채용이 아닌 추천 방식으로 진행된 점, 면접도 없이 서류만으로 심사가 이뤄진 점 등은 낙하산 채용을 의심케 한다. 이번 파문으로 여당의 내분은 더욱 심해지게 됐다. 여당 지도부가 2일 이른바 ‘한동훈 공격 사주’ 의혹이 불거진 김대남 감사에 대한 징계 조치를 예고하고, 친한(친한동훈)계는 그 배후로 대통령실을 겨냥하면서 윤·한(윤석열·한동훈) 갈등이 확전을 거듭하는 모양새다. 이번 의혹을 해당 행위로 규정한 친한계는 당내 정식 절차를 밟아 김 전 선임행정관의 배후를 밝혀야 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尹 스폰서 황하영과 강릉 동향
본지 취재 결과 김 감사는 1966년 강원도 강릉시 출신이다. 강릉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스폰서인 황하영 사장이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 부부와 모종의 연관성이 있다는 의심을 품을 만하다. 쌍용그룹을 거쳐 중견건설사에서 재개발·재건축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건설업에 종사했던 김 감사가 정치권에 입문한 것은 20대 대선 국면이 본격화 된 2021년이었다. 2021년 3월 검찰총장을 그만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출마 채비를 갖추자 지지 단체들이 결성됐는데, 김 감사는 ‘윤공정포럼’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포럼은 이명박 정부 정책실장을 지낸 윤진식 전 의원이 상임 공동대표를 맡았다. 윤 전 의원은 올해 초 한국무역협회장에 취임했다.
김 감사는 당시 윤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활동하던 국민의힘 신지호 전략기획부총장을 윤공정포럼 인사를 통해 소개받았다. 신 부총장은 “팬클럽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며 추천받은 사람이 김대남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신 부총장은 대선 캠프 조직부본장이었던 국민의힘 강승규 의원에게 김 감사를 소개했고, 김 감사는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조직국장으로 활동했다. 김 감사는 2022년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도 출마를 시도했다. 서울 강남구청장 선거 예비후보로 뛰었으나 당내 경선 기회도 얻지 못했다. 이후 강 의원이 수석비서관으로 근무하고 있던 시민사회수석실 행정관이 됐다. 강릉 출신인 김 감사가 대통령실에 들어가는데 강원 지역 중진 의원의 추천이 있었다는 의혹도 제기됐으나, 해당 중진 의원은 “추천한 바 없다”고 일축했다. 김 감사는 지난해 10월까지 대통령실 시민소통비서관실 선임행정관으로 있었고 시민소통비서관 직무대리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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