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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비난+조소'의 대상이 되는 대통령실 '엉터리' 공문

"공문서의 목적은 '질의'이지 '훈계'가 아니다..사태의 본질은 공문서의 외양을 빌려서 언론사를 협박"

서울의소리 l 기사입력 2022/09/2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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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공문서 사태의 본질(?)은 공문서를 엉망으로 썼다는 게 아니라, 공문서의 외양을 빌려서 언론사를 협박했다는 데 있다.

 

그네들이 그렇게나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라면 응당 있어서는 안될 일, 즉 권력층에 의한 언론사 협박을 공문서라는 형태를 빌어서 공공연하게 자행해놓았으니 문제가 되는 것.

 

그 와중에 공문서의 기본적인 형식도 제대로 안 지키고 있으니 비난 + 조소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협박하는 것 자체로도 문제인데 협박조차 고상하게 못해, 이러니 욕을 먹어도 더블로 먹는 것이지.

 

더 웃긴 건 저런 공문서를 공문서랍시고 보내놓고서 그걸 '자랑스러이' 내보인 게 MBC측이 아니라 대통령실 본인들이었다는 거다. 자기들이 이러저러한 내용으로 MBC한테 공문 보냈는데 답변 거부를 받았다면서 뭔가 자기들은 되게 억울한 입장이라는 식으로 공개한 문서 꼬라지가 그 모양이다. 국민들을 개돼지로 여기지 않으면 과연 저럴 수 있을까 싶다.

 

예전에 문재인 정부를 두고 아마추어 정권 운운했던 이야기들이 꽤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에 비교하자면, 윤석열 정부는 아마추어도 아니고 알바 정권이다. 아니, 어지간히 성실한 아르바이트생만 되어도 이거보다는 낫게 하지 싶다.

 

이 문서는 공문서로서의 기본적인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내가 사관학교 교관 시절 생도들 대상으로 보고서 작성 요령 강의를 할 때에도 이 정도까지 엉망으로 보고서를 만들어오는 생도들은 없었다. 

 

2번 항목은 통째로 삭제해야 한다. 이 공문서의 목적은 '질의'이지 '훈계'가 아니다. 하물며 언론사는 대통령실의 산하기관도 아니며, 어디까지나 외부 기관이다. 외부 기관에 보내는 공문서 첫머리를 저널리즘의 기본 운운하면서 훈계조로 시작하는 건 심각한 결례다.

 

보통 기관 대 기관 공문이었으면 진작 작성자가 결재판 모서리로 두들겨맞았을 일이다 "이 새끼들아"

 

굳이 수정한다면 2번은 "00월 00일 귀사 보도 내용에 대한 사실관계 확인 및 보도 경위 등에 대한 질의를 드리고자 합니다"가 맞다. 누차 말하지만 언론사는 대통령실 산하 기관도 아니요, 심지어는 산하 기관에 하달하는 문서도 이런 식으로는 안 쓴다 "이 새끼들아"

 

3번 항목도 엉망진창이다. 질문의 기본은 먼저 '정확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질의 목적의 공문서라면 "어떤 절차를 거쳤느냐"고 물어볼 게 아니라, 너네가 제도와 규정에 의해 정해놓은 절차 A, B, C, (...) 를 준수했는지를 항목화해서 질의하는 게 맞다 "이 새끼들아"

 

그게 왜 안되는지 아나? 니들도 절차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렇다. 절차 숙지가 안된 상태에서 대통령실의 의향과 어긋나는 보도가 나가서 "괘씸죄"를 뒤집어씌우고 싶은데, 막상 뒤집어씌우자니 어디서 무엇을 꼬투리를 잡아야 할지 판단이 안 서니까 서술형의 답변을 요구하는 것이다.

 

일단 답변 오면 그 가운데 적당한 것 꼬투리잡을 요량이라는 게 눈에 훤히 보인다 "이 새끼들아"

 

4번 항목은 왜 쓴 거냐? 제대로 쓰려면 4번 항목의 상황 설명을 2번에 집어넣고 이에 관한 절차 준수 여부를 질의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2번은 훈계질, 4번은 아몰랑 나 기분나빠 빼애액 이런 것 외에는 이게 왜 공문서에 들어가야 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질의를 하랬지 누가 너네 입장 발표를 하랬냐고. 저건 대통령실이 '공식적으로' 입장 발표를 할 때 들어가야 할 문구이지 언론사에 보내는 공문에 들어갈 표현이 아니잖아 "이 새끼들아"

 

이 공문의 백미는 맨 마지막의 '4-1'이다. 일단 1, 2, 3에는 없었던 하위항목이 왜 들어갔는지는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보고서 체계 이런 식으로 짜면 내용 읽기도 전에 바로 빠꾸 먹는다. 아까 맞았던 결재판 모서리에 한 번 더 찍혀도 할 말 없다.

 

게다가 이 4-1에 들어간 문장은 의문형으로 끝을 맺는다. 내가 살다살다 공문서에 의문문을 직접 쓰는 경우는 또 처음 봤다. 물론 정말 '질문'이 의도가 아니다. 질문이 아니라 항의다. 그런데 그 항의의 방식도 공문서의 요건과 격식에 맞는 항의가 아니라, 시정잡배들이 서로 드잡이하면서 할 때 하는 그 항의다.

 

MBC가 자사의 보도 내용에 밝힌 '국내언론 보도 내용'의 국내언론이 지칭하는 언론보도가 어느 언론사의 어느 보도인지를 정확하게 특정해달라고 요청하는 게 맞다 "이 새끼들아"

 

정말 일 안해본 티가 팍팍 나는 공문서다. 대학생들도 보고서 작성 요령 한 학기만 배워도 이딴 식으로 안 쓴다. 실무를 안 겪어봐도 보고서에서 뭐가 중요하고 뭐는 피해야 하는지 요령만 알려주면 그 정도는 한다. 그런데 이건 그 수준도 못된다.

 

그냥 "마 우리가 대통령이고 니들은 (고작) 언론사인데 우리가 물어보면 아 예 예 송구스럽습니다요 한번만 봐줍시요 데헷 하고 고개 숙일 것이지!"라고 강짜부리는 게 너무 눈에 보여서 우습다 못해 처량할 지경이다.

 

이건 질의를 목적으로 하는 공문이 아니라 그냥 '온라인 취조'다. 물론 대통령실이 언론사에게 이런 비대면 취조를 시행할 권한은 없다. 대통령실은 행정부 수반의 활동을 관장하고 보조하는 기관이지 사법기관이 아니니까.

 

대통령을 검찰총장 출신을 앉혀놨더니 대통령실이 통째로 무슨 대검찰청이라도 됐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대통령이 검찰총장 출신이 아니라 검찰의 아버지라고 해도 대통령인 이상은 행정부의 수반일 뿐이므로 언론기관에 대한 수사권 따위는 없는 게 당연하다. 그걸 깨닫지 못할 정도의 능지 수준이 그야말로 능지처참할 따름이다.

 

글쓴이: 박성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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