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사다난했던 2015년이 저물고 있다. 2015년은 박근혜 정권의 보수장기집권 전략이 정치, 경제, 군사, 외교의 전 분야에 걸쳐 관통된 해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언론을 ‘친박’으로 획일화하고 집권 4년차를 내다보는 지금도 새누리당 당권을 움켜쥐고 있으며 수출전선 붕괴로 난맥상에 빠진 한국경제도 노동개악으로 화답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지지를 업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적대정책은 남북관계 발전을 가로막았다. 한미일 3각공조를 바라는 미국은 박근혜를 적극 지원하면서 한국보수의 장기집권 전략을 한반도 정국에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 이에 우리사회연구소는 우리사회의 민심, 한미의 대한반도 정책, 세계경제의 영역에서 특화지어 2015년 정세를 평가하고자 한다.
1. 민심 : 2015년 민심은 친박 아닌 반박
2. 한반도 정책 : 시작된 보수의 영구집권 전략
3. 세계경제 : 미국경제의 모순을 반영한 금리인상
1. 2015년 민심은 친박 아닌 반박
연초 정윤회 파동부터 메르스 사태, 그리고 노동개악에 역사교과서 국정화까지, 박근혜 정권의 퇴행적 행정에 분노한 민중은 11월 14일, 13만 총궐기로 화답하였다. 2015년 한국 국민의 민심은 ‘친박’이 아니라 ‘반박’이었다.
1) 부풀려진 박근혜 지지율 40%
박근혜 정부가 집권 3년차를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40%대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현재 대통령 지지율이라는 여론조사는 절대적 의미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의미를 살펴본다면, 지난 2월 연말정산논란과 정윤회 파동이 겹치면서 <한국갤럽> 조사상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31%까지 떨어졌고, 6월의 메르스 파동이 전국을 강타하였을 때 지지율이 32%까지 떨어졌다. 8월 지뢰사건으로 시작된 남북간 군사대결이 8.25 공동보도문이라는 평화적 형식으로 일단락된 데 힘입어 잠시나마 50%를 기록하였지만 하반기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11월 지지율은 다시금 41%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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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펴본다면 2015년 정권의 지지율이 폭락한 요인은 청와대 문고리 권력 논란, 연말정산 파동, 성완종 파문, 메르스 파동, 국정원 해킹 논란, 유승민 논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민중총궐기 등 정말로 수없이 많았지만, 지지율이 상승할 요인은 8월의 남북군사대결이 평화적으로 일단락된 것을 제외하면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정권의 지지율이 어떻게 40%를 기록할 수 있는가? 이는 순전히 친박으로 일색화된 언론과 자중지란을 반복하고 있는 민주당의 실패에 따른 박근혜 정권의 반사이익일 뿐이다.
2) 언론의 친박 일색화
박근혜 정권의 지지율이 여전한 것은 국내 언론이 친박의 나팔수로 전락해 박근혜 정권에 대한 고무찬양을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입하고 있는 것이 한 원인이다. 일례로 2015년 2월 9일, <연합뉴스>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를 취재한 기사 제목을 회의 내용과 관련없는 <朴대통령 "직장 못 구한 청년·부모생각에 잠 안와>로 뽑았다.
2015년 12월 18일, <SBS>는 박 대통령이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을 초정한 담화의 제목도 <박 대통령 "속이 타들어 가는 심정"…입법 호소>라고 뽑았다. 이처럼 한국언론에서는 회의 내용과 아무 관련이 없는 대통령의 심경이 뉴스의 제목이 된 지 오래다. 뉴스가 구체적 정보를 뒤로 하고 대통령의 심경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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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홍보성 기사가 양산되는 것은 정권이 언론에 깊숙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2015년 3월, <한겨레신문>은 박근혜 정부가 ‘언론로비’ 전담 조직을 신설하였다고 보도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이 언론사 간부 출신 인사를 채용해 언론인 대면접촉과 보도협조 요청을 하는 언론협력관 직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2015년 11월, 박근혜 정부는 KBS 사장에 예전 기자협회 신임투표에서 93.5%의 불신임을 받았던 고대영을 임명하였는데, 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고대영 후보는 KBS 보도를 망친 주범으로, 대기업으로부터 골프와 술 접대를 받았으며 향후 총선과 대선에서 KBS 보도를 청와대에 헌납할 인물"이라고 주장하였다. 제도권 언론의 경쟁적인 박근혜 고무찬양 활동에 의해 대형사건이 이어졌지만 징권의 지지율이 이내 회복되는 기형적 현상을 보였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한 해에만 청와대 문고리 권력 논란, 연말정산 파동, 성완종 파문, 메르스 파동, 국정원 해킹 논란, 유승민 논란,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등 대형 사고를 연발하였지만 정권의 나팔수들인 언론의 침묵과 대통령 찬양에 의해 아직까지 지지율 40%를 움켜쥐고 있다. 이제 국민들의 민의를 대변하는 참된 목소리들은 영세한 인터넷언론사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수많은 국민들은 제도권 언론에 침을 뱉고 SNS를 통해 인터넷 언론의 보도를 주의깊게 청취하고, 공감하며 환호하고 있다.
그러자 박근혜 정부는 이제 신문법시행령을 개정해 인터넷 언론까지 통제하려 들었다. 개정안은 인터넷 언론사의 ‘취재 및 편집인력 3명 이상’이 등록요건이었던 것을 ‘취재 및 편집인력 5명 이상’으로 늘리고 이들의 상시고용을 증명할 수 있는 증명서를 반드시 제출하도록 하는 간단한 내용이지만, 오늘날의 영세한 인터넷 언론에게 이 두 조항은 사실상 폐업협박과 같다. <언론진흥재단>에 따르면 2014년 1776개 인터넷언론을 조사한 결과 1~4인을 고용한 인터넷신문사는 전체의 38.6%였다고 한다. <한국인터넷기자협회>는 최대 인터넷언론의 85%가 사라질 것이라 내다보기도 했다.
3) 새민련의 대실패
친박으로 전락한 언론의 고무찬양 행위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 정권의 지지율 40%을 온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지지율은 어차피 상대적 개념이란 점을 주목해야 한다. 박근혜 정권이 제 아무리 죽을 쑤었더라도 야당이 더욱 지리멸렬했다면 정권의 상대적 지지율은 폭락을 면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2015년은 새정치민주연합의 패착과 자중지란으로 박근혜 정부가 어부지리를 얻은 한 해였다. 첫째, 새민련은 보수진영의 종북공세에 철저히 침묵함으로써, 정국의 주도권을 스스로 새누리당에 헌납하였다.
새민련은 2014년 12월의 <신은미-황선 통일토크콘서트> 때부터 가해졌던 종북마녀사냥에 연초부터 철저히 침묵하였다. 2015년, 그 종북바람이 이제 새민련에 휘몰아치자 새민련은 추풍낙엽처럼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2015년 3월, 김기종씨가 미국의 키리졸브 훈련을 반대한다며 리퍼트 주한미대사에 상해를 가하자 새누리당은 이 사건을 종북공세로 몰아가기 바빴다. 새누리당 이군현 사무총장은 3월 11일, "문재인 대표에게 촉구한다. 새정치민주연합 당내에 김기종 관련 인사가 있는지, (있다면) 그의 활동, 심적·물적·정책적 조력을 확인 점검하고 종북주의자를 비호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도록 밝혀주기 바란다"고 요구했다.
이후 명백히 드러난 사실이지만 김기종 씨의 행동에는 아무런 배후가 없었다. 새누리당이 김기종 씨를 ‘종북’이라고 물고 늘어졌던 것은 곤혹스러웠던 청와대 문고리 3인방에 대한 비판여론과 2월 연말정산 파동으로부터 탈출하려는 꼼수였다. 하지만 새민련은 정국현안을 꿰뚫어보지 못한 채 종북사상 검증대에 오르자 손발을 덜덜 떨면서 보수의 종북공세에 맞장구치다가 청와대 개혁의 기회를 무산시키고 말았다. 둘
째, 새민련 안철수 전 대표가 표방한 “안보는 보수, 경제는 복지”라는 전략도 실상 새누리당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전략이었다. 새누리당은 이미 2012년 총선부터 스스로를 복지세력이라고 선전해왔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하반기의 노동개악도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밀어붙여 자기들이 민생복지세력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민련이 전략적 위치를 “안보는 보수, 경제는 복지”로 설정하는 것은 새누리당의 전략을 우회 지원해주는 격밖에 되지 않는다.
셋째, 새민련은 중도의 모자를 쓰고 들어와 보수적 행각으로 당의 개혁정책을 방해해 온 안철수 전 대표를 통제하지 못해 1년 내내 새누리당에 끌려다니고 말았다. 새민련의 지도부의 패착은 물론 비판받아 마땅했다. 그러나 안철수 전 대표는 새민련의 혁신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스럽다. 안철수 전 대표는 2015년 단 한 번도 박근혜 정권과 제대로 싸운 적이 없다. 심지어 안철수 전 대표는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을 해외에서 사왔다는 사실이 밝혀져 국정원의 민간사찰 의혹이 불거진 2015년 7월, 새민련 국정원 불법사찰 의혹 진상조사위원장까지 맡았지만 사건을 “국정원의 정치탄압”이 아니라 “정보기관의 무능”으로 규정해 국정원의 불법사찰 의혹을 끝까지 추적하지 못하였다.
박근혜 정권에게는 부드럽기 그지없던 안철수 전 대표는 새민련 동지들과의 싸움에서는 거침없는 공세로 일관해 박근혜 정권에 막대한 어부지리를 가져다주었다. 2015년 9월 6일, 안철수 전 대표는 “낡은 진보나 당 부패를 과감하게 청산하고 결별하는 것이 자신의 살을 베어내 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 육참골단(肉斬骨斷)의 혁신”이라며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새민련 지도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안 전 대표는 10월 8일에는 "너무나 실망스럽다. 혁신위가 해당(害黨) 행위를 했다"며 "굉장히 심각하게 당의 경쟁력을 훼손했다"고 '김상곤 혁신위'까지 맹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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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12월 13일, 안철수 전 대표는 새민련 지도부의 만류를 뿌리치고 탈당을 강행하였다. 그는 탈당의 이유가 “새민련에 희망이 없기 때문”이라 했지만, 하필이면 총선을 5개월 앞둔 시점에 탈당한 이유가 무엇인지 그 진정성이 의심스럽다. 안철수 전 대표의 분열행각에 실망한 개혁적 국민들은 새민련에 등을 돌렸고, 이는 새누리당 대세론이라는 여론을 만들어 박근혜 정권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4) 민중의 역동성
결국 40%라는 대통령의 지지율은 박근혜 정권의 정당한 정치력이 아니라 그들의 꼼수가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진정한 정치대안이 등장한다면 현 정부의 지지율은 언제든지 폭락할 수 있는 유리알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2015년은 박근혜 지지율이 견고했던 해가 아니라, 정권의 실정에 진절머리가 난 국민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궐기에 떨쳐나섰던 역동적인 해였다.
국민들은 이미 지난 2014년 세월호 침몰정국에서 박근혜 정권의 사고은폐 의혹과 무책임성을 강하게 성토하였다. 2015년 6월 메르스 파동에서도 마찬가지로 정권에 대한 비판여론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메르스가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에서 감염되기 쉽다는 보건당국의 경고만 아니었으면 분노한 대중들이 당장 광화문 광장을 뒤덮을 기세였다. 그래도 세월호 정국이나 메르스 정국을 주도했던 것은 일반 시민들이었다.
2015년 11월 14일, 진보진영은 여기에 민중총궐기를 성공적으로 성사시켜 시민들과 진보진영의 공동대응 흐름을 만들어내었다. 진보진영은 <전국농민회>를 중심으로 올해 3월부터 민중총궐기를 대대적으로 준비해왔으며 여기에 <민주노총>과 <한국진보연대>를 비롯한 진보진영 제 단체들이 속속 결합하면서 민중총궐기가 성사되었다. 여기에 박근혜 정권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개악은 진보진영을 뛰어넘은 광범위한 민중이 총궐기에 합류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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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진영 추산 13만명, 경찰 추산 8만명이 결집하였다고 보도된 11월 14일의 민중총궐기는 진보진영이 전국집중 대규모 대중투쟁에서 조직화 목표를 초과달성해냈다는 소중한 성과를 내었다. 정권의 공안탄압이 혹독해 진 2015년에 10만명 조직화 목표를 뛰어넘어 최대 13만명이 모였던 11월 민중총궐기는 박근혜 정권의 실정에 반발한 민중의 분노가 매우 높다는 것을 정확히 보여주었다. 결집한 민중들은 경찰의 과잉진압에 분노하며 12월 6일의 제2차 총궐기, 12월 19일의 제3차 총궐기 흐름까지 열어내었다. ‘친박’은 종편의 스크린에 떠도는 유령이었지만, ‘반박’은 민중의 가슴 속에서 확인된 현실이었다.
5) 새 진보정당 요구 분출
민중의 분노가 실질적으로 표출되는 것과 더불어 각계각층에서 지금의 한국사회를 바로잡으려는 모색들이 2015년, 줄을 이었다는 점도 민심이 반박으로 흐렀다는 징표이다. 민주노총 정치위원회는 민주노총과 농민, 빈민 대중조직, 진보정당, 정당에 참여하지 않았던 모든 ‘좌파’ 진영 등을 포괄하는 공동대응을 모색해오다 11월 26일, 내년 총선에 대한 공동 대응방향으로 ‘선거연합정당’ 구성을 논의했다.
<민중의 소리> 보도에 따르면 이 논의는 노동개악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기반 강화를 전제로 대외적으로는 하나의 정당형식을 띠는 ‘선거연합정당’을 구성해 내년 총선에 나서자는 내용이라고 한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모든 진보진영이 연대하는 내년 총선을 언급하기도 하였다.
김원웅 전 의원과 김은진 원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2월 20일, "민주파괴, 민생파탄, 평화위협, 독재정권의 횡포는 도를 넘어섰지만 그에 맞설 야당은 보이지 않는다. 정보, 공작, 공포 통치 앞에서 야당은 한없이 무력하기만 하다. 국민들과 함께 어깨 걸고 싸울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유신독재 부활에 정면으로 맞서는 강한 정치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며 <민주통일정치포럼>을 발족하였다.
이들은 “국민주권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다. 국민주권민주주의 실현을 사명으로 하는 새 정당, 국민의 위대한 힘을 믿고 그 힘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정당이 필요하다. 노동자, 농민, 빈민, 서민, 청년, 학생들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정당을 건설하자. 양심적인 지식인, 종교인, 시민사회인사, 모두가 함께하는 새로운 정당을 건설하자”라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민주통일정치포럼은 이러한 새로운 정당 건설의 밑거름이 되고자 한다”며 “민주통일정치포럼에 함께 해 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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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투쟁을 보좌해 온 권영국 변호사도 12월 20일,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정치혁명”을 제시하며 시민혁명당 추진위원회를 출범하였다. 이들은 새로운 대안정당을 만들어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정치를 구현하겠다며 포부를 밝혔으며 "기존의 양당체제로는 해결할 수 없어 스스로 정치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 창당을 결정했다"며 출범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이들은 "정부의 독점, 독식으로 인한 불평등과 빈곤 때문에 시민들이 절박한 상황"이라며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러한 흐름은 분노한 민심의 뜨거운 열기를 여실히 보여준다. 총체적으로 2015년의 민심은 정권에 대한 비판여론이 매우 높아졌다. 박근혜 정권은 언론을 총동원하고 지리멸렬한 야권에 기대어 집권 3년차를 버티었지만, 분노한 민심은 정권의 횡포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궐기하며 민중의 새로운 지도부를 모색하는 데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 면에서 2015년은 “친박의 해”가 아니라 “반박의 해”였다. 박근혜 정권은 눈앞의 정치이슈에서 교묘한 꼼수를 부리며 집권체제를 유지했다고 기뻐할지 모르지만, 한국사회의 민심은 현 기득권층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더욱 명확히 한 2015년이었다.
<계속>
출처 - 우리사회연구소 http://urisociet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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