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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3일. 대한민국 헌정사를 뒤흔들었던 비상계엄 선포 사태가 일어난 지 정확히 1년이 지났다. 국회 유리창을 깨고 진입했던 무장 병력의 모습과 서울 도심을 질주하던 장갑차의 굉음은 사라졌지만, 그날의 상처는 아물 기는 고사하고 곪아가고 있다. 광장의 촛불은 ‘내란 주동자 처벌’을 외쳤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법의 심판대는 텅 비어있다. 그 중심에 윤석열이 있다. 윤석열은 최근 돌연 재판에 직접 나서고 있다. 한때의 부하들과 직접 대면 신문하며 적극적으로 자기 변호에 나서는 모양새다. 그가 11월 재판에 모두 나섰지만, 그가 계엄에 동원했던 부하들은 그에게 유리한 사실을 말해주지 않고 있다. ‘국가적 위기 상황이었다’ ‘경고성 계엄이었다’ ‘나 혼자 계엄을 고려한 것이 아니다’ ‘법률가 윤석열이 불법 계엄을 했겠느냐’. 그러나 윤석열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관계를 입증하기엔 그와 부하들의 기억이 너무나 다르다.
계엄 후 1년 가까이 관련 재판이 이어지는 가운데 윤석열과 관련자들의 진술은 계속 엇갈리고 있다. 윤석열의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받으려면, 계엄에 동원된 이들의 증언을 거의 다 뒤집어야 한다. 윤석열에 대한 재판이 언제 마무리될지 알 수 없으나, 혼자만의 폭주로 본국을 절대절명의 위기로 몰아넣은 것도 모자라 자신의 오판으로 인해 법정에 선 부하들까지 전부 사지로 몰아넣는 내란수괴 윤석열에 대한 법의 냉엄한 심판이 필요할 때다. <선데이저널>은 계엄 1년을 맞이해 독자들의 냉철한 판단을 위해 계엄, 그 날의 재구성을 했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2022년 3월 대선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본지는 윤석열의 육성파일을 단독으로 공개하며 그가 얼마나 앞과 뒤가 다른 사람인지를 낱낱이 까발렸다. 검찰총장이 되기 위해 검경수사권 조정에 적극적인 척 하면서, 술자리에서는 ‘경찰이 검찰에 엉까려고 한다’든가 ‘이명박은 김경준에게 네다바이 당한 사람’이라는 식의 막말을 서슴치 않았던 것이 바로 윤석열의 실체였다. 본지는 그를 양두구육이라 비판했고, 그가 대통령이 되면 야만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본지 보도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은 간발의 차로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본지의 전망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전개됐다. 무엇보다 계엄이 실패로 돌아가고, 관련자들이 재판을 받는 지금 윤석열의 양두구육 행태는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부하들까지 사지로
계엄이 본격화 된 것은 2024년 10월 1일 국군의 날이었다. 행사가 끝난 뒤 윤석열은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군 수뇌부 몇 사람을 초청해 만찬을 열었다. 핵심 참석자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여인형 방첩사령관·곽종근 특수전사령관·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 등이었다. 윤석열이 기억하는 이날 술자리는 즐겁기만 했다. 행사 이후 고생한 군 수뇌부 20명에게 저녁을 대접하려고 급히 만든 자리였다. 계란말이와 김치찌개, 베이컨을 직접 만들었다. 한남동 고깃집에서 따로 사 온 김치도 있었다. 손수 음식을 만든 김에 ‘소맥’ 폭탄주를 돌렸다. 본인도 그날 술을 많이 마셨다. 훗날 계엄군으로 국회로 출동한 곽종근의 기억은 사뭇 달랐다. 일단 그날 만찬은 즉흥적인 자리가 아니었다.
여인형이 며칠 전 자신에게 연락해 따로 사복을 준비했을 정도였다. 취한 윤석열은 시국 이야기를 분명히, 그것도 강경하게 꺼냈다. 반국가세력과 종북세력에 의해 국정 운영이 어렵다. 비상대권 사용을 검토해야 한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등 일부 정치인을 호명하며 ‘내 앞에 잡아와라, 총으로 쏴서라도 죽이겠다’고도 했다. 대통령과 일치하는 진술은 ‘고깃집 김치가 맛있었다’가 거의 전부다. 윤석열은 곽종근이 사복을 입은 모습조차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곽종근의 복색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날 저녁 자리가 끝나고 김용현과 티타임을 가진 것은 모두 군인이었다. 곽종근, 여인형, 이진우가 함께 ‘확보해야 할 장소’를 논의했다.
여인형의 기억은 곽종근에 더 가깝다. 윤석열은 한동훈 등 정치인, 민주노총 등 좌익세력과 좌익 언론인에 대해 품평하며 “이재명 같은 사람을 어찌할 수 없으니 비상대권을 통해서 조치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여인형이 윤석열의 ‘비상대권’ 운운을 들은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윤석열은 총선을 앞둔 3월 삼청동 안가에서 “비상대권을 통해 시국상황을 헤쳐나가야 한다”고 했다. 8월 초 그에게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도, 이재명을 포함한 정치인들에 대한 비상대권 사용을 시사했다.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 국군의날 만찬이 있은 뒤 어느날, 김용현은 여인형에게 “합동수사본부 구금시설이 어디냐”고 물었다. “내가 수도방위사령관을 해서 잘 아는데, B1벙커를 활용해도 될 거야.” 실제로 여인형의 기억은 그를 사령관으로 모셨던 방첩수사단장 김대우의 재판 증언과 일치한다. 계엄 당일 합동체포조의 단장 격이었던 여인형은 그에게 수방사 B1벙커로 잡아넣을 14명의 이름을 받아적으라고 지시했다. 이재명, 조국, 한동훈, 우원식, 이학영, 박찬대, 김민석, 김민웅, 김어준, 양정철, 양경수, 조해주, 김명수, 권순일. 10월부터 수시로 김용현과 만난 여인형의 휴대전화 메모에서도 발견된 이름들이다.
엉터리 국무회의
헌법 제89조는 계엄과 그 해제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계엄 국무회의에 절차적 하자가 있었다면 계엄은 곧장 불법이 된다. 윤석열은 논의를 제대로 거친 국무회의였다고 주장하지만, 잘못된 줄 알았지만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 국무위원들의 기억이다. 명시적으로 반대한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었는지도 쟁점이다. 윤석열은 계엄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9시 33분경까지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에게 대통령실로 들어오라는 지시를 했다. 지시를 전달한 것은 김정환 수행실장과 강의구 부속실장이었다. 한덕수가 오후 9시가 조금 안 된 시각 대통령집무실 옆의 대접견실로 들어왔다. 한덕수는 ‘당시 상황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충격이 너무 컸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계엄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무위원을 부를 동안 시간을 벌고, 장관들이 오면 선포를 만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요건을 갖춰야 하니 기다려달라.” 윤석열의 기억에서는 한덕수가 계엄 재고를 요청한 것이 맞는다. 다만 김정환이 한덕수가 이처럼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은 없었다. 먼저 와 있던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무슨 일 때문에 모이라는 것이냐고 물었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려는 것 같다.” 김영호와 한덕수가 집무실로 들어가자, 김용현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이 있었다. 조태용 국정원장과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도착했다. 조태열의 기억 속 자신은 계엄을 반대했다. “외교적 영향뿐만 아니라 70여년간 대한민국이 쌓아온 모든 성취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만큼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문제이니 재고해 주십시오.” 윤석열이 거절했다.
조태열은 다시 말했다. 조태열은 현재까지 나온 진술대로는 계엄을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한 인물이다. “그동안 야당에서 계엄 얘기만 나오면 정부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설득하실 겁니까.” 무의미한 대화가 몇 분 이어진 뒤 모두 다시 대접견실로 되돌아갔다. 윤석열과 더 얘기를 나누고 김용현이 돌아왔다. 국무회의 의결 정족수는 11명. 장관들이 올 때마다 김용현은 한덕수에게 왼손 손가락을 폈다 접었다 하며 정족수 충족 여부를 알렸다. 오후 9시 37분 한덕수의 독촉 전화를 받고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들아왔다. 송미령은 계엄 전후로 윤석열 앞에서 반대 의견을 명시적으로 낸 국무위원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주장한다. 최소한 이 시간부터는 누군가 명시적 반대를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찬성할 분위기가 아니었고, 다들 참담한 상황이라 다 같이 반대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덕수는 오후 10시 10분 ‘계엄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계엄 포고령을 받아들어 읽었다. 김용현의 기억 속엔 계엄에 찬성한 사람도 있었지만,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조태열과 송미령의 진술이 일치하는 ‘교집합’ 만류자는 최상목 경제부총리였다. 최상목은 국무회의장에 도착해 길길이 화를 냈다. 기획재정부 선배 한덕수에게 “왜 반대하지 않았느냐, 50년 공직 생활을 마무리하려고 했느냐”고 했다. 한덕수는 “나도 반대해요”라고 작게 말했다. 이상민을 향해서는 “원래 예스맨이니까 ‘노’라고 못 했겠지”라고 비아냥댔다. 장관들이 만류하거나 말거나, 윤석열은 오후 10시 27분 계엄을 선포했다. 계엄을 선포하고 돌아온 윤석열의 말은 이랬다. “막상 해보면 별거 아냐, 아무것도 아냐.” 그랬던 윤석열은 법정에서 이때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국무회의를 제대로 한 것 아니냐는 여론도 있다.”
체포조는 누구 지시?
계엄 과정에서 정치인 체포 지시가 있었는지도 계엄의 불법성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다. 체포조는 확실히 꾸려졌다. 윤석열은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방해한 바 없고, 정치인 체포 지시도 내린 적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 역시 관련자들의 진술과 갈린다. 12월 3일 오후 10시 53분, 윤석열은 홍장원 국정원 1차장과 1분 24초 동안 통화했다. 홍장원의 기억 속 대통령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봤지? 비상계엄 발표하는 거. 이번 기회에 싹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 국가정보원에도 대공수사권 줄 테니까 우선 방첩사를 도와 지원해. 자금이면 자금, 인력이면 인력 무조건 도와.” 곧바로 여인형과 전화가 연결됐다.
홍장원이 물었다. 무엇을 도와주면 되는가? 여인형은 곧바로 체포조 명단을 불러주고, 이들에 대한 실시간 위치추적을 요청했다. 그러나 윤석열의 기억에서는 통화 내용이 크게 달랐다. “간첩수사의 노하우는 경찰보다는 방첩사에 더 있을 것이니, 경찰뿐 아니라 방첩사에도 정보를 줘라.” 정치인 체포를 직접적으로 지시했다고 볼 수 있는 홍장원의 진술과 달리, 이 통화는 단순한 격려에 지나지 않았다. 윤석열은 홍장원의 진술이 황당하기만 하다. 나는 평소에도 방첩사 역량을 강화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던 차였다. 여인형이 홍장원에게 위치추적을 요구했다는데, 영장도 없이 어떻게 수사하나. 자신이 이를 지시했기 때문이라는 건 황당한 주장 아닌가. 방첩사령관이라는 사람이 수사를 모르는 것 아닌가? 윤석열이 검찰총장까지 했는데 어떻게 이런 불법적인 무리한 요구를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법정에서 윤석열이 이렇게 주장하자, 홍장원은 기억이 아니라 합리적 추론을 시도했다. 어차피 계엄은 이미 탈법적인 상황이었다. 윤석열 말이 맞는다면 여인형이 혼자 내란을 했다는 건데,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지시하지도 않는데 일개 3성 장군인 방첩사령관이 이재명 야당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여당 대표를 체포·구금해서 방첩사 구금시설에 구금하고 신문하겠다고 하겠는가.” 다음날 0시 31분, 윤석열은 곽종근에게 전화를 걸었다. 국회 본회의장에 계엄 해제 의결을 위해 의원들이 속속 들어차고 있었다. 이미 특전사 병력을 끌고 국회로 나와 있던 곽종근이었다. 그는 그전부터 ‘헬기가 어디쯤 가고 있느냐’며 출동을 재촉하던 윤석열이 의원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상현 1공수여단장이 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한 것이 이미 0시 30분이었다는 것이다. 반면 그때는 윤석열이 이미 이진우 수방사령관에게 지시를 했고, 이상현이 이진우와 통화한 뒤였다는 것이 곽종근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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