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이한열기념사업회 제공 © 서울의소리 |
오늘은 이한열 열사가 전두환 최루탄에 후두부를 가격당해 쓰러진 날이다. 그리고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7월 5일 이한열 열사는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이후 전두환 정권의 폭정에 분노한 전국의 민중들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나며 결국 6.29 항복을 이끌어 낸다.
1987년 1월 14일 전두환 정권은 참고인 조사를 한다면서 서울대생 박종철을 끌고 물고문 끝에 숨지게 만든다. 기자와 검사 그리고 의사 등 일부 뜻있는 이들에 의해 진실이 밝혀지며 정국은 급랭한다. 대학생은 물론이고 야당과 재야 세력 등이 개헌을 요구하며 전두환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이 때, 전두환은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며 직선제 개헌을 거부한다. 결국 박정희 전두환처럼 소위 체육관 선거라고 불리는 간접선거를 계속하기로 하면서 노태우를 후계자로 내세우겠다는 것이었다. 노태우를 후보자로 내세우는 것은 그가 가장 전두환의 말을 잘 따랐기 때문이다. 둘은 육사 동기였으며 학업 성적은 언제나 노태우가 우등생의 반열에 있었다. 그러나 리더십이 뛰어난 전두환이 하나회를 만들면서 둘 사이의 관계는 역전되고 노태우 역시 전두환을 그림자처럼 추종하는 2인자가 된다. 전두환 아래서 장관과 당 대표를 거치며 그에게 낙점된 노태우가 향후 대통령의 직에까지 오르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당시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은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도 불구하고 6월 10일 전당대회 겸 대통령 후보자 지명대회를 치르기로 한다. 이미 노태우를 후계자로 정해 놓은 상태에서 전두환이 상왕 정치를 하려던 속셈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학생 재야 정치권 등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민정당이 전당대회를 치르기로 한 6월 10일, 국민저항대회를 전국적으로 실시하기로 하며 모든 독재 반대 국민들이 나서기로 한 것이다. 한편 연세대는 6.10 항쟁의 전날인 6월 9일 출정식을 하기로 하며 정문으로 모여 들었다. 집회가 한참 진행되면서 전경이 쏜 직격탄에 후부두를 맞은 이한열 열사가 쓰러지게 된다. 결국 평범한 시민들 이른바 넥타이 부대들마저 시위에 나섰으며 그리하여 정권은 마침내 6월 29일 항복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대통령 직선제를 전격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노태우를 통해 발표된 6.29 선언은 대통령 직선제를 포함해 김대중 등 재야 세력 사면과 함께 지방자치제 도입까지 민주적 기본 질서를 다수 포함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현재의 제 6공화국은 1987년 헌법의 체제에서 만들어진 제도이다.
제 21대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된지 불과 1주일도 되지 않았다. 기대도 많지만 벌써부터 특히 인사 부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재명 대통령은 성남시장과 경기지사 그리고 국회의원과 당 대표를 거치며 이미 충분히 검증된 바 있다. 물론 대통령 직은 과거 대통령이 경험한 직에 비해 훨씬 엄중한 자리이다. 문재인 정부처럼 자칫 실수라도 하게 된다면 결국 발목을 잡히며 임기 내내 적폐 세력들에게 시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열사들의 민주화 정신을 새기며 다시는 이 나라가 독재와 쿠데타의 망령에 빠지지 않도록 굳세고 단단한 단일대오가 필요하다. 시민들은 우선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 전폭적인 응원과 지지를 보내야 한다. 직언도 필요하고 쓴소리도 필요하다. 하지만 아직 민주 정부가 탄생한지 아직 1주일도 되지 않았다. 좀 더 지켜보면서 응원과 함성을 보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