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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858기 폭파 사건의 수상한 의혹 : 김현희는 가짜다
이득신 작가 2023.11.27 [18:51] 본문듣기

▲ 출처=연합뉴스  © 서울의소리

1987년은 박종철 열사의 물고문 사망사건으로 한해를 열었다. 책상을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터무니없는 사망원인 발표로 전국민을 화나게 만든 사건이었다. 이에 다급해진 전두환 정권은 수지킴 간첩조작사건으로 물타기를 시도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간첩사건 따위에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이어진 4.13 호헌조치로 국민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입을 막고 5공화국 헌법을 유지한다는 호헌조치로 대학생뿐만 아니라 전 계층의 국민들이 시위에 동참했다. 이한열 열사의 최루탄 사망으로 길거리는 온통 시위대의 행렬로 가득했다. 1987년 6월 항쟁은 그렇게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냈다.

 

12월 16일 대통령 선거는 민주세력인 김영삼과 김대중, 그리고 군부출신인 노태우와 김종필로 1노 3김의 팽팽한 세력대결이었다. 여론조사 발표가 전혀 인정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과 분위기는 민주화의 결실을 맺어야 한다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었으며, 노태우는 5공화국 전두환 폭정의 후계자라는 이미지 때문에 사실상의 당선은 힘겨워 보였다. 칼858기 폭파사건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 1987년 대선을 1개월 정도 남기고 불쑥 일어난 사건이었다.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바그다드 국제공항에서 출항한 대한항공 여객기가 인도양 상공에서 실종된 사건이었다. 좀더 정확히는 태국과 미얀마의 상공 어디쯤에서 김현희에 의해 폭파된 사건이었다. 사건이 터지자 마자 대한민국 정부는 '북한 지령에 의한 공중폭발'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범인도 사건의 내막도 전혀 조사되지 않은 상태에서 안기부를 통해 받아쓰기 기사가 흘러나온 것이다. 결국 안기부 조사 결과 북한 정권의 지령을 받고 일본인으로 위장한 특수공작원 김승일, 김현희 2인조가 액체 시한 폭탄으로 비행기를 폭파했다는 것으로 발표되었다. 김승일은 경찰에 잡히던 순간 음독자살했고 김현희는 자실미수에 그쳤다는 발표도 함께 이루어졌다.

 

이 사건에 대해서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수많은 미스테리가 남아있다.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이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지만 결국 밝혀진 것은 없었다. 안기부는 김현희의 경호원이었던 정모씨와 김현희를 결혼까지 시키며 진실 은폐의 시도도 서슴치 않았다. 1997년 둘은 결혼했지만 남편 정모씨는 2021년 2월 경 사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자살과 심장마비라는 추정 속에 김현희 남편의 사망원인도 의혹으로 남아있다. 

 

이 사건에 대한 물음표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당시 태국 해상에서 비행기용 항공보트 발견되었으며 이는 칼 858기의 항공보트라는 표식이 뚜렷함에도 불구하고 김현희가 국내에 도착한 2일후 폭파지점 수색을 종료해 버린다. 주변이나 바닷속을 수색하면 추가 잔해가 발견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정부는 별다른 이유없이 수색 종료를 발표한다. 국민들이 반발하고 유족들은 분노했지만 수색은 재개되지 않았다. 사고 3년후 태국에서 태국어민의 그물에 칼858기의 잔해 동체가 발견되기도 했다. 압축충격에 의한 파손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동체잔해는 현재 사라지고 없다. 우리 정부가 동체 잔해를 요청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미얀마 앞바다에서 칼기의 잔해가 또다시 발견되었지만, 유품이나 흔적을 확인도 하지 않고 잔해를 파기해 버린다. 

 

둘째, 김현희에 대한 의혹도 여전히 존재한다. 김현희는 평양출신에 평양외국어대를 졸업했으며, 북한외교관의 딸이라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평양 출신의 다른 여러 탈북자의 증언에 의하면 김현희의 말투는 평양 억양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길림성이나 연변 주변의 말투라는 증언이 계속되기도 했다. 또한 김현희의 어린 시절 6명의 어린이들과 함께 찍힌 사진을 공개했지만, 사진의 주인공이 일본에서 기자회견을 열며 6명의 어린이들 이름을 모두 기억하면서 내 사진을 김현희가 조작했다고 반발하며 나선 것이다. 사진속의 실제 주인공은 김현희와의 공개만남을 요구하기도 했다.

 

셋째, KAL858기 사건이 88올림픽을 방해하려는 북한의 공작이라고 발표했으나, 당시 남한은 북한과의 축구 등 일부 종목 공동개최를 요청했으며 IOC와 북한도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88올림픽 방해공작이라는 발표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또한 88올림픽 방해를 위한 공작이었다면 올림픽 개최시기나 올림픽 개최 직전 서울에서 테러를 일으키는 것이 상식적이지 고위층이나 정치인 한명 없이 중동노동자들만 가득태운 비행기를 폭파시킨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은 주장이다. 

 

넷째, 사건이후 이라크에서 조사를 받던 김현희의 남한 압송은 대선을 불과 하루 앞두고 벼락같이 이루어졌다. 다분히 선거를 의식한 행보였다. 지금처럼 사전투표가 존재하던 시절도 아니었기에 김현희가 비행기에서 내리던 장면을 생중계로 보던 국민들은 충격에 빠져들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가 적중한 것이다. 또한, 당시 김현희의 위조여권은 일본여권이었기에 일본경찰은 자신들이 수사를 진행해야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어찌 된 일인지 일본에서 발을 빼며 한국으로 압송된 것이다. 

 

김현희는 사건 발생 약  3년여가 지난 1990년 3월 사형선고를 받는다. 하지만 그녀는 사형선고 후 불과 16일 만에 특별사면으로 석방된다. 살아있는 블랙박스이자 역사의 산증인이라는 이유였다. 교도소에 수감조차 되지 않고 안기부의 특별 보호실에서 상주하는 동안 사면된 것이다. 즉, 김현희는 한국으로 압송된 이후 단 한명의 민간인은 물론이고 외부의 접촉도 없이 오직 안기부에서만 생활하다 특별사면되었고 이후에도 경호원의 특별한 감시 속에 지내다 경호원과 결혼해버리는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KAL858기 폭파사건이 일어난 지 36년이 되었다. 아직도 유족들은 밝혀지지 않은 진실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승무원과 중동노동자로 헌신했던 115명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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