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서울시/SNS갈무리 © 서울의소리 |
현 정부의 홍범도 지우기가 한창이다. 육사 내 흉상철거에 이어 해군의 홍범도함 이름 변경과 대전의 홍범도로 지우기까지 논란이 진행 중이다. 이것도 모자라 광화문 광장에 설치된 이순신장군의 동상과 세종대왕 동상까지 철거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순신과 세종은 대한민국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라고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역사적 범위를 해방이후로 축소시켜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반대하는 세력은 모두 개돼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사실, 이순신장군의 동상은 1968년 박정희의 지시에 의해 서울시에서 건립하였다. 경부고속도로에 이어 자신의 업적을 부각시키고 1971년 대선에 대비하자는 취지이기도 했다. 세종대왕의 동상은 2009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의 주도로 건립되었다. 문화국가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세종대왕을 내세웠지만 사실 오세훈의 속내는 자신의 대선행보로 가는 길을 닦는 것이었다. 지극히 전시행정의 표본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동상건립이었다. 광화문의 두 동상은 그들이 숭배해 마지않는 박정희와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오세훈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들의 국가적 영웅들을 어떤 방식으로 대우하는 지 살펴보는 좋은 예시중 하나가 스페인이다. 스페인 국민들이 숭상해 마지않는 인물이 있으니 그는 바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이다. 컬럼버스는 스페인 제국 전성기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다. 콜럼버스의 기념비는 물론, 그의 무덤이 있는 세비야의 대성당에는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그런데 사실 그는 스페인 출신이 아닌 이태리의 제노바 출신이다. 당시 스페인 이사벨 여왕의 지원으로 스페인의 국기를 달고 대항해를 시작했기에 그는 특히 스페인에서 추앙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흔히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자로 알려져 있지만, 아메리카는 무주지가 아니었고 원주민 문명이 존재했으므로 ‘아메리카를 발견했다’는 유럽인 입장에서의 시각일 뿐이다. 또 유럽인 중에서조차 북유럽의 바이킹족이 먼저 아메리카에 도달한데다, 아메리카로 인식한 것은 아메리고 베스푸치였기 때문에 실제로는 ‘아메리카 대륙과 유럽 대륙의 지속적 교류 계기를 만든 유럽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콜럼버스는 근대 이후 오랜 시간 유럽인들에게 특히, 스페인에서 위인이자 영웅적인 모험가로서 추앙받고 있다. 그는 스페인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의 국민영웅이기도 하며, 콜럼버스를 지원한 이사벨여왕 당시의 스페인왕국은 현재의 스페인 연방과는 전혀 다른 국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의 많은 국민들이 콜럼버스를 자국의 영웅으로 숭배하고 있다.
또 다른 사례는 프랑스의 국민영웅 오를레앙 잔다르크이다. 영국과의 백년전쟁으로 프랑스는 국토가 유린되고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졌으며 계속되는 패배로 민심은 이반되고 있었다. 이 때 잔다르크가 등장해 영국과의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정작 그녀는 마녀사냥식 화형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은 인물이다. 전 세계 여러 역사적 인물들 중에 가장 많은 정파들에게 가장 오랫동안 이용당한 대표적 인물이 바로 잔다르크이다. 프랑스 전역에 있는 잔다르크 동상은 오늘날에는 프랑스 극우정치인들이 외국인들을 몰아내자는 구호를 외치며 극우의 상징처럼 사용하고 있다. 정작 살아생전에 정파는 만들지도 못하고 정치적 희생양으로 산화한 역사적 인물을 수도없이 많은 정파들이 간판으로 끌어다 쓰는 아이러니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파리의 피라미드 광장에 위치한 잔다르크 동상은 극우 정치인인 마리 르펜의원이 자주 연설을 했던 곳이다. 프랑스에서 잔다르크는 2차대전 이후 우파의 상징적인 인물로 쓰여왔다. 아이러니하게 그녀는 그보다 앞선 시대에는 하층민 출신이라는 이유로 좌파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더구나 마녀라며 화형당한 인물이었지만 시성되어 성녀가 됐고, 카톨릭 교회의 주요 교재에도 등장해서 카톨릭에서조차 그녀를 종교적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또 다른 동상의 사례가 있다. 그들은 살아생전, 어느 특정한 개인의 우상화를 지극히 싫어했던 인물들이었다.
대표적인 인물로 이번 러시아혁명의 중심인물이자 구 소련의 국부로 추앙받았던 레닌이 있다. 레닌은 생전에 개인숭배를 비롯한 우상숭배를 극도로 경멸했으며 죽기 전 본인의 어머니가 묻힌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묻어달라고 유언까지 남겼지만, 그의 뒤를 이어 권력을 잡은 스탈린에 의해 철저히 신격화됐다. 그의 유언과 달리 그의 시신은 영구보존처리돼 유리관에 안치됐고, 구 소련 및 동구권 전역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이로 인해 러시아에서는 구소련 붕괴 후 수많은 레닌동상이 철거되고 참수되는 등 수난을 겪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레닌동상은 러시아에만 5,000개 이상이 남아있다.
베트남 건국의 아버지라 존경받는 호찌민 역시 사후 시신이 영구보존됐고 베트남 곳곳에 동상이 세워졌지만, 이는 본인의 뜻이 아니었다. 호찌민은 유언장에 ‘내가 죽은 후에 웅장한 장례식으로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내 시신은 화장해달라’고 밝혔고 평소에도 숭배받는 우상보다는 국민들에게 친근한 ‘호아저씨’로 남기를 바랬다. 하지만 그의 소망과 달리 베트남 정부는 하노이 바딘 광장 앞에 대규모 영모를 짓고, 그의 시신을 영구보존처리한 뒤 레닌처럼 유리관에 넣고 말았다.
이처럼 우상화는 오히려 역사적 인물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방해하는 요소가 되곤 한다. 신격화가 이뤄지면서 과거사가 묻혀버리거나 과오가 덮여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대로 이에 대한 반발로 업적보다는 과오만 지나치게 부각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역사적 인물의 행적 자체가 보여주는 시대상과 입체적인 평가를 방해한다. 당사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세워진 동상(銅像)이 양극단의 이몽(異夢)을 만든 셈이다.
광화문 광장의 이순신과 세종의 동상을 철거하고 그곳에 이승만과 백선엽의 동상을 세우자는 말도 들린다. 이순신장군의 동상은 최초 건립당시 광화문 남쪽으로 기운이 열려있어 일본을 막아내자는 풍수지리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건국대통령을 내세우고 공선주의와 맞서 싸웠다는 이유로 그들의 우상화가 계속되고 있지만 정작 우리 헌법은 4.19 민주정신을 계승한다고 표현하여 이승만의 반민주적 행태를 경계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국가 공인 친일파 백선엽은 민간에서 조차 친일인명사전으로 그의 친일 행위를 부각시키고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헌법과 헌법정신이 바뀐 것도 아니고 정부의 공식기록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자신들의 불리한 정치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불필요한 이념을 끌어들여 과도한 동상의 정치학으로 이용하고 있다. 21세기 이순신장군과 세종대왕이 스산한 세월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