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연합뉴스 © 서울의소리 |
“선비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선비고, 가장 싫어하는 사람도 선비다.”란 말이 있다. 여기서 ‘선비’란 책 좀 읽거나 글 좀 쓰는 사람을 말하는데, 지식인으로 통칭하면 되겠다. 그런데 왜 지식인들은 서로 존경하지 않은 버릇이 있을까? 위의 말에는 지식인의 자존심, 올곧음, 시기심 등이 동시에 함축되어 있다.
조선시대 이황과 이이는 자타가 인정하는 대학자로, 나이는 차이가 났지만 서로를 존경하기도 하고 은연중 서로 시기하기도 하였다. 이황과 이이의 사상은 너무 깊어 여기서 논할 바가 아니고, 다만 두 학자의 우정과 선비적 태도는 배울 만하다.
현대작가는 과연 지식인일까?
현대 작가를 지식인으로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별도로 논의하더라도 그들이 독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부인할 수 없다. 이문열, 김주영, 김훈은 자타가 인정하는 유명 작가들이다.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김주영의 <객주>도 기념비적 작품인 것은 분명하다. 김훈의 <칼의 노래>, <남한산성>, <하얼빈>도 모두 베스트셀러가 된 유명 작품이다. 그런데 이 세 작가에겐 묘한 공통점이 있다.
작가는 보통 시대와 타협하기보다 거대 기득권과 싸우는 경향이 짙은데, 세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작가 특유의 저항 기질은 부족해 보인다.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벗어났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역적 한계 때문일까? 아니면 자기만의 어떤 콤플렉스 때문일까?
이문열의 레드 콤플렉스
이문열은 경북 영양 출신으로 서울대 사범대를 다니다 중퇴하고 작가의 길을 걸었다. 데뷔작 <세한도>는 명작의 반열에 올랐고, 그후 나온 <사람의 아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영화로 나올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하지만 이문열은 부친이 서울대 농대 교수를 하다가 6.25때 북한으로 납치되어 평생 ‘레드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래서인지 그는 차츰 인식이 보수화되었고, 급기야 한나라당(국힘당 전신) 때 공천 심사위원을 맡아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자 분노한 독자들이 이문열의 저술을 모아놓고 불살라버린 사건이 벌어져 충격을 주었다. 이문열은 이후 ‘북악문원’에 파묻혀 한동안 세상과 등지고 살았다. 하지만 그후로도 극우 중 극우인 황교안을 지지하고, 간혹 언론에 인터뷰하며 극우적 발언을 서슴없이 해 그동안 자신의 책을 사준 독자들을 분노케 하였다. 작가에게 자신의 책이 불태워지는 일만큼 더 큰 치욕이 또 있을까. 이문열은 경북 영양에 있는 생가가 불타는 아픔까지 겪었다.
이문열 작품 전반에 나타나 있는 것은 ‘허무 의식’으로 엄석대가 나중에 기차에서 형사에게 체포되는 장면이나, 현역 군인이 제대 군인에게 얻어맞는 장면이나, 폭풍우를 만난 배 안에서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편하게 잠을 자고 있는 돼지의 모습엔 작가의 짙은 허무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식인, 그 돼지는 바로 이문열 자신이 아니었을까.
4대강 칭송한 작가 김주영
작가 김주영은 <객주>로 널리 알려진 원로 작가(1939년 생, 85세)이다. 그의 고향에는 ‘청송 문학관’이 건립되어 있고, 지자체의 지원으로 말년을 편하게 살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가 이명박 정부 때 추진한 4대강 개발을 칭송하며 언론에 자주 나와 인터뷰하였다는 점이다. 유명 작가 중 4대강 개발을 칭송한 작가는 거의 없다. 김주영은 노무현 대통령을 일컬어 “패거리 정치“ 운운하기도 하였다. 고향이 경북이어서 그런지 인식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조국 가족 비판한 김훈
우리들에게 <칼의 노래>, <남한산성>, <하얼빈>이란 소설로 친숙한 작가 김훈이 최근 조국 가족을 비판한 글을 수구 언론에 실어 논란이다. 그 소식이 알려지자 민주당 강성 지지층들이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일부 독자들은 벌써부터 “김훈 책을 갖다 버리겠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일부에선 “제2의 이문열이 나타났다.”라고 성토했다.
한때 ‘김훈체’ 라 할 정도로 문장 하면 김훈으로 통할 정도로 독특한 문체를 구사해 각광을 받았던 작가 김훈이 살 만해져서 그런지 보수적 색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출신인 김훈은 소설 외 주옥 같은 산문도 여러 편 썼다. 필자 역시 그의 주요 작품은 모두 읽었다. 특히 자전거를 타고 숲 여행을 하는 산문은 가히 일품이다.
작가의 작품과 그의 사생활은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작가의 글이 독자나 그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때 그건 이미 사생활의 영역이 아니다. 세상엔 ‘보편타당’이란 말이 있다. 그래, 누가 봐도 그런 것 같아, 이것이 보편타당이다. 그러나 조국 가족에 대한 그의 비판은 편견이 가득해 보인다.
내 새끼 지상주의의 파탄?
작가 김훈은 4일자 중앙일보 1면에 ‘내 새끼 지상주의의 파탄…공교육과 그가 죽었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기고했다. 최근 발생한 서울 서이초 교사의 자살을 ‘내 새끼 지상주의의 파탄’으로 본 것이다. 이는 학생인권조교례가 교권을 침해했다고 보는 보수들의 시각과 맥이 통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 여교사를 지속적으로 괴롭힌 소위 ‘똥깨나 뀌고 사는 학부모’가 문제이지,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침해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아니다. 물론 작가 김훈도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논란이 된 것은 그 글에 조국 가족을 슬쩍 집어넣은 점이다. 작가 김훈은 그 글에서 ‘내 새끼 지상주의’를 가장 권력적으로 완성해서 영세불망(永世不忘)의 지위에 오른 인물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그의 부인이다. 그는 아직도 자신의 소행이 사람들에게 안겨준 절망과 슬픔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렇게 해서 공동체의 가치는 파괴됐고, 공적 제도와 질서는 빈 껍데기가 됐다”라고 성토했다.
결론은 조국 죽이기?
작가 김훈의 기고 글은 겉이 서이초 교사의 죽음이라면 속은 조국 가족 비판인 것 같다. 수구 언론들은 ‘김훈 작가가 말한 단 두 줄 때문에 개딸이 분노했다’라고 보도했지만, 사실상 그 두 줄에 그 글을 쓴 의도가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 글이 실려 있는 언론 매체도 중앙일보다. 중앙일보가 작가에게 원고를 청탁했는지 작가 스스로 써서 보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결국 남은 것은 조국 가족 상처내기로 보인다.
조국 교수는 자타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서울대 법대 교수로, 그동안 그가 발표한 논문은 가장 인용이 많을 정도로 유명하다. 조국 교수는 법철학에도 조예가 깊어 이미 많은 베스트셀러를 냈고, 최근에도 <조국 법고전 산책>이란 책을 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하였다.
작가 김훈이 조국 교수의 저술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같은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자신의 소설 <하얼빈>보다 조국 교수의 <조국 법고전 산책>이 더 많이 나간 것에 심기가 불편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선비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선비고, 가장 싫어하는 사람도 선비다.”란 말이 증명된 셈이다. 하지만 김훈의 기고 글이 그런 하찮은 질투가 아니길 빈다.
작가로서 측은직심도 없나?
우리 민족의 정서는 측은지심이다. 법도 가족이 모두 범죄 혐의에 연루되었을 때 부모나 자녀 중 하나에는 관대한 것이 관례였다. 정경심 교수는 표창장을 위조했다는 죄로 4년 선고를 받아 지금 복역 중이다. 조국 교수도 재판 중이다. 그런데 검찰이 이미 고졸로 만들어버린 조민 양을 기소하고 아들도 기소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적어도 이 땅의 양심 있는 작가라면 윤석열 정권의 선택적 정의와 수사에 대해 비판하면서 수십 가지나 되는 본부장 비리 수사를 촉구하고 조국 가족을 비판해야 된다. 하지만 작가 김훈은 ‘내 새끼 지상주의의 파탄’이란 자극적인 말로 현 교육계를 진단하고, 거기에 슬쩍 조국 가족을 삽입한 얍삽함까지 보였다.
작가 김훈에게 묻는다. 조국 가족이 전부 구속되어야 편하겠는가? 공정과 상식이라는 거짓 구호로 국민을 기만한 윤석열 정권보다 이미 멸문지하를 당한 조국 가족을 또 상처내고 싶은가? 그대는 윤석열 정권의 굴욕적 대일외교, 빈손 한미외교, 경제파탄, 노조탄압, 언론탄압, 야당탄압, 수십 가지나 되는 ‘본부장 비리 혐의’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는가? 이제 필자도 김훈의 독자임을 거부한다. 이황과 이이의 시대가 차라리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