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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재명을 외눈박이로 보아왔는가

"관훈토론회를 통해 과격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은, 매우 논리적이고 전략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서울의소리 l 기사입력 2021/11/2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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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정치의 시절이고 훈수가 넘쳐나는 계절이다. 정치도 중독성이 다분해서 매일 팔로업 하다보면 점점 톤이 높아지기도 하고 광속으로 뉴스가 뉴스를 덮는지라 어쩌다 하루를 걸러도 금단현상이 만만치 않다.

 

하루이틀 거리를 두면 세상사 뒤처지는 것같아 불안하지만 막상 1주일 정도 거리를 두면 그렇게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울 수 없다. 정치는 공력을 들이면 들일수록 더욱 헛헛하게 만들지만 마음의 평화를 주는 책과 자연은 결코  배반하지 않는 정직한 이웃이다.  

 

그러나 그런 평화도 며칠 지나면 나혼자 안드로메다에 뚝 떨어진 것처럼 슬슬 불안해지고 심지어 죄책감 비슷한 감정까지 들기도 하니 확실히 깨어있는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참 피곤한 일이다. 정치에 늘 관심을 두고 시시비비와 옥석을 가리는 것은 무척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특히 전통적인 미디어가 왜곡과 조작의 온상인 한국에서 균형잡힌 정치의식을 갖기란 극한의 통과의례가 필요하다. 그러니 먹고사느라 식당에서 접하는 종편뉴스가 전부인 서민들이 전통 미디어에 점령당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관심을 가지려 해도 꽤배기처럼 비비 꼬아 한쪽 지점에서 금을 긋고 따라가보면 결국은 만나게 되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아서 확인하지 않는 이상 착시현상으로부터 지유롭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경선이 끝난 이후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재명에 대해 물어보고 다녔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무 자르듯, 두부 자르듯 되는 게 아니라서 나도 마음자리를 옮기는 기어변속이 필요하기도 했고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하기도 했다.

 

이들은 적어도 자신을 진보 언저리에 있거나 왼쪽으로 약간 기운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인데 전부터 이재명을 지지했던 사람도 있고 아직도 차마 마음을 주기 어렵다는 사람도 있었다. 안티 이재명의 제일 많은 이유는 역시나 부도덕하고 과격해서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유를 물었을 때 열에 다섯은 근거를 대지 못했고 두세명은 조선일보의 논리를 앵무새처럼 읊는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 두사람 정도가 오해였던 것 같은데 여전히 선뜻 마음이 가지는 않는다고 했다. 선대위는 원팀이 되었는지 몰라도 아직 이격거리를 좁히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특이한 점은 대부분 그런 얘기를 하면서 스스로 안타깝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에두르지 않고 말한다면 자신도 윤석열은 끔찍하게 싫기에 이재명을 지지하고 싶은데 도무지 마음이 가지 않는다는 것과 그래서 어떻게든 이재명을 지지할 명분을 찾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견디기 힘든 것은 그들에게 대장동 의혹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음해인지 설명도 하고 과격함은 과단성의 다른 이름이라고 나의 의견을 말하기도 했지만 사실 본질적으로는 나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데에 있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기계적인 원팀은 이해관계가 얽힌 당사자들의 논리고 내 마음이 동해야 행동을 하게 되는 게 아니겠냐고. 당위와 명분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한 걸음도 못 내딛는 나는 특히 그러하다.

 

선거에서 제일 큰 무기는 내가 권하는 제품이 가진 탁월한 상품성에 있다. 상품성에 자신있어야 어떤 선거운동도 마다하지 않는 열정, 어깃장에도 담담하게 설득할 수 있는 끈기와 너그러움이 샘솟는다. 나도 그렇고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이들도 그렇고 지금 그 딜레마에 빠져있는 것 같다.

 

찍기는 찍어야겠는데 선뜻 내키지 않는다거나 옆 사람을 설득할 열정까지는 자신없다는 것. 그의 지지자들은 펄쩍 뛸 노릇이겠지만 실제 이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나도 그닥 다르지 않다는 것부터 인정하고 시작해야 한다.

 

그러니 이 글은 나는 왜 그를 외눈박이로 보아왔는가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한 비호감으로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에 대한 도를 넘는 공격과 혜경궁홍씨 의혹, 여배우 스캔들과 형수욕설, 대장동 의혹제기로 인한 부도덕 논란을 꼽는다.

 

하지만 나에게 이것들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진짜 이유를 대면하지 못하는 나를 은폐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욕설비난이나 포퓰리즘적 행보 지적질에 슬쩍 올라타 묻어가려는 심사였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이다.

 

내가 ‘이재명’이란 이름을 처음 만난 건 그가 성남시장으로 당선된 후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즈음으로 기억하는 경향신문에 실린 전면인터뷰에서였다. 기억나는 건 모라토리엄과 시립의료원, 그리고 그의 형제들이 하나같이 못배웠고 여전히 가난하다고 한 것뿐이다.

 

정치혐오를 넘어 무관심으로 살았던 때 인터뷰에서 처음 만난 그는 매우 돋보이는 사람이었다. 광주대단지 사건 외에는 어떠한 정보도 없던 성남이라는 도시가 내 머리에 들어온 계기이기도 했다.

 

그곳에 이렇게 진보적인 사람이 시장이라고? 이게 말이 돼? 이력이 빈한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훌륭한 사람이라면 왜 전혀 모르고 있었지? 토건정부 하에서 과연 이 사람이 소신대로 할 수 있겠어? 게다가 노출이 아니라 노동자였다고? 그랬다. 그는 노출이 아니라 노동자 출신이었던 것이다. 

 

그 인터뷰에서 나는 그가 전문 행정노동자로 자신을 규정한다는 인상을 받았고 솔직히 감화되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 기사는 아마도 이재명을 있는 그대로 다룬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사가 아닐까 싶은데 너무나 강렬해서 신문 스크랩을 해두었을  정도로 호감가는 인터뷰였다.

 

인터뷰가 진정성있는 거라면 10년쯤 후 매우 중요한 사람이 되어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딱 그렇게 되었다. 일찌기 그의 가능성을 보고도 왜 난 적극지지자가 되지 못했을까. 나의 무지와 게으름이 원인이지만 한편 이것이 이재명이 극복해야 할 딜레마라고 생각한다.

 

돌아보면 역설적으로 그 인터뷰가 나로 하여금 그에게 대단한 오해를 하게 만든 계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이 사람은 어떻게 이리 승승장구할 수 있지? 더구나 찢어지게 가난했다는데 빈자들을 위해 일한다는 말을 믿으라고? 지금까지 노동자, 농민 출신들이 정치적으로 성공한 적이 있었나? 그건 마치 하늘 아래 분당이라 할만큼 구시가와 이질적인 동네가 성남시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에 느껴지는 이물감과 비슷했다. 

 

나는 이쯤에서 내가 가진 위선을 깨부숴야 했음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을 향하여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10대 후반에 밤을 지새게 만들었던 이 말이 사무치는 요즘이다.

 

아프락사스는 빛과 어둠, 선과 악이며 성스러움과 속된 것, 우아한 것과 천박한 것이기도 하고 아름다움과 추함의 공존이기도 하다.

 

그러나 외부세계에서 주어진 이미지를 현실 혹은 진실로 여기면서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을 게을리한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뒤늦게 남은 얇은 막을 깨는 것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이재명을 미워(싫어)했던 건 아닐까. 나의 내면 어딘가에 그를 인정하지 못한 그 무엇을 찾아야 했다. 나의 의식도 내외부에서 자의, 타의로 조작된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건 이재명이 규명할 일이 아니라 내가 내안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나의 내면에 없다면 외부의 이미지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힌트를 어제 노무현재단의 알릴레오 북스에서 찾았다. 윤흥길의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에 대한 이야기에서 유시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선생에게 감정이입 되었고 이재명은 권씨에게 자신을 동일시한다고 했다. 유시민의 말처럼 어디에 서 있는가에 따라 풍경이 다르게 보이듯 자신의 계급적 기반이 무엇인가에 따라 이토록 다를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고 나의 위선을 정면으로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를 공부할 때, 사극을 보거나 소설을 볼 때 나는 내가 누구에게 감정이입하는지 의식하며 읽는다. 구한말 의병운동을 이끌었던 것은 유학자들이었다. 이름없는 민초들이 숱하게 스러져갔지만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는다. 기억하고 싶어도 기억할 수 있는 기록이 없다.

 

항일독립운동도 민주화운동도 지식인들이 주도했다. 대개의 경우 리더는 양반이나 지주 출신의 지식인들이었다. 미국 유학파를 첫번째 대통령으로 뽑은 민중은 그를 굳이 박사라고 불렀다. 지도자는 명문가이거나 최소한 중농 이상의 계급출신이어야 한다는 일종의 밈이 내면화된 것은 아닐까.

 

나에게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이 한마디에 공장으로 달려간 학출들은 민중의 잠재된 폭발적인 역사적 동력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어쩌면 그들을 동원이나 도구적 존재로 인식한 것일지도 모른다. 

 

빈농의 자식인 노무현에게 몇학번이세요 하고 들이댔던 천박한 법기술자에게 분노하고 노무현의 도덕성을 의심해본 적이 없지만 나는 왜 노동자 출신의 인권변호사 이재명의 도덕성에 실눈을 뜨고 보았는가.

 

그러면서 마치 선심쓰듯 도덕성보다 더 중요한 게 행정능력이라고 얼치기 덮어쓰기를 하려 한 것일까. 노무현도 뒤늦게 현실에 눈뜨고 인권변호사로 민주화운동에 복무해왔음에도 정통성에 시비를 걸었다. 이재명은 더 열악한 조건에서 '학번'을 갖고 인권변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말은 안하지만 '소년공 출신'이라는 점에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은 아닐까.

 

사실 지도자감이 처음부터 빈농의 자식이 괜찮았던 건 아니다. 노무현을 대선후보로 선출해놓고 지지율이 떨어지자 정몽준과 후보단일화하라고 얼마나 그를 흔들어댔는지 기억한다면 말이다.

 

이는 마치 기시감처럼 이재명에게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엄밀히 말해 리더의 조건을 만들어놓고 그것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진건 아이러니하게도 노무현의 죽음부터였다.

 

우리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뽑는다고 하지만 아직도 왕을 선출하는 반봉건에서 벗어나지 못한 측면이 있다. 87년 체제의 본질인 권력자 선출방식에서 한 발짝도 진보하지 못한 것도 어쩌면 민주주의를 선거로 왕을 선출하는, ‘존경할만한 지도자를 내손으로 뽑는다, 뽑아주면 다 알아서 다스려주겠지’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김대중 대통령은 워낙 보스정치의 시대였으니 두말할 것이 없었지만 노무현은 임기내내 아군에서도 공격받다 죽어서야 비로소 존경할만한 지도자로 인정되었다. 문재인에 이르러 그의 모든 행보, 심지어 아내와의 연애담까지 아름답게 그려진 것은 그가 인간적, 도덕적으로 남다르다는 점이 주효했겠지만 노무현이 갖지 못한 '학번'과 사시 수석 등 진보적 지식인 출신의 엘리트 인권변호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권력 2인자로 있었음에도 인간적, 도덕적으로 도저히 흠결을 찾기 어려운 문재인과는 달리 상스러운 욕설을 일삼고 바닥에서 공돌이로 굴러먹던 사람을 지도자로 인정해야 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이것이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재명이 그냥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내놓는 하고 많은 이유들의 기저에 흐르는 심리적 거부감이 아닌가 싶다.

 

빈농의 자식은 괜찮은데 십대부터 소년공으로 살아야 했던 정치인은 한번도 만난 적이 없음을, 의식으로는 그들이 역사발전의 주인이라고 떠들면서도 가르쳐야 할 대상이라고 대상화해왔음을, 그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는데 부에 대한 욕심이 없다는 것을 믿지 않았던 것은 그들이 가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띄엄띄엄 이해한 것은 아니었는지.

 

노출(노동자 경험이 있는 노회찬 같은 지식인)이 아니라 소년공 노동자 출신의 대졸 인권변호사는 빈농 독학 인권변호사와는 다르다고 보았을까? 노무현, 문재인을 찬양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없으면서 왜 이재명 찬양에는 거북함을 느끼는가. 이런 것들이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혹자는 이재명이 가난으로 과거팔이 한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정치인이든 누구든 과거팔이 하지 않는 이는 없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판단할 때 그가 살아온 길을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누구나 과거팔이가 아니라 팩트와 오늘의 자신이 있게 한 배경을 말하는 것이고 이재명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가난했고 그 가난 때문에 소년공으로 살아야 했고 팔을 다쳤고 멸시와 편견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이것은 팩트다. 어쩌면 성공한 전태일이 살아 우리곁에 온 것일텐데 왜 주저하는 걸까.

 

이재명도 민주화운동을 했고 극빈층에서 법률가로 신분상승에 성공했다. 개천에서 용난 홍준표는 자신의 가난에 진저리를 내며 가난한 이들을 조롱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 개천에서 용이 되지 못한 것은 열심히 하지 않은 결과이니 자신을 탓해야 한다며 업신여기는 게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태도다.

 

우리는, 아니 나는 자신의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밝히며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 필요를 채워주고 싶다는 이재명 같은 캐릭터를 처음 만난 것이다. 

 

십여년 전 아직은 볼만한 시절이던 종이 경향신문에서 형은 나중에 공부했지만 자신의 여자 형제들은 못 배웠으며 여전히 가난하고 밑바닥 노동을 하고 살지만 자신이 시장이 됐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질 수 있겠냐고 말하던 그 말을 어쩌면 나는 불신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보편적인 인간유형은 아니지 않는가. 설마, 그래도 뭔가는 도와줬겠지, 안 도와줬다면 그것도 인간성에 문제 있거나 문제있는 가정 아냐? 그렇게 가난했는데 여보란 듯이 살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삶을 살았다고? 왜? 이것이 오랫동안 그를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미몽에 빠지게 만든 것인지도 몰랐다.

 

이런 의구심이 있어 이후 조선일보를 위시한 기득권 나팔수들이 그를 음해하고 악마화 할 때 그를 편들어주기보다 모르는 척 무의식적으로 한쪽 손바닥을 대주었을지도 모른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서 진보적인 정책이 가능한 것이란 말인가 의심의 눈초리로 보면서도 그의 진정성을 믿고 싶은 마음과 왜곡을 밥먹듯하는 자들임에도 유독 그에게만 예외가 적용되어 혹여 저들이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도저히 논리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율배반적인 양가감정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첫인상 위에 차곡차곡 쌓인 그의 행보도 매우 특이한 것이어서 점점 외눈박이로 만든 것 같다. TV토론에서 야비한 표정으로(맘에 안들면 같은 얼굴도 야비하게 보이기도 하고 꿇릴 것 없는 당당함으로 읽히기도 한다)문재인을 코너로 몰아넣고 네거티브로 일관하던 모습과 손가혁의 폐단, 김부선 스캔들, 혜경궁 홍씨, 욕설 파일, 도지사 당선 직후 기자들에게 더 이상 질문 안받는다고 야멸차게 입을 앙다물던 모습, 나로선 검증하기 어려운 성남의 선심성(이 얼마나 주관적인 언어인가) 예산 집행, 모라토리엄을 둘러싼 온갖 음해.

 

나는 판단할 근거를 확보할 의지도 없이 그냥 무책임하게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의 미디어 환경은 물을 거슬러오르는 연어의 각오가 아니라면 온갖 오물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 보궐선거 직후였나, 20대 표심에 대한 몇차례 포스팅을 올렸는데 이재명 지사가 잘 읽었다는 댓글을 달았다. 그때 댓글이 너무 많아 내가 세운 원칙은 어느 누구에게도 답글을 달지 않겠다는 것이었기에 그에게도 답글을 달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지지자로 보이는 이들이 따라 들어와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직접 왕림하시다니 역시... ”하며 그를 찬양했다. 이렇게 무례할 수가, 나는 그들의 자발적 노예같은 천박한 태도에 역겨움을 느꼈는데 그에게 갖고 있던 뭐라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함의 실체가 이런 느낌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이런 돌출되고 돌발적인 상황에 대한 감정들도 하나하나 차곡차곡 쌓여 그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경선이 끝나고 난 후 지금까지 그를 부도덕하다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그에 대한 의혹이 얼마나 얼토당토 않는 것인지 설명하고 언론을 성토하면서도 나로서는 마음 어딘가 남아있는 찌꺼기의 정체가 무엇일까를 찾는 시간이었다.

 

그러니 이 글은 ‘이재명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가 아니라 나는 왜 이재명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마음 속 깊이 못마땅해 했을까에 대한 부끄러운 자기고백이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많은 이들에게 그에게 선뜻 손이 내밀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자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재명을 잘 몰랐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게 팩트다. 나에겐 더 나은 대안이라고 믿었던 지도자가 있었기에 그러하기도 했지만 나의 내면 속에 흐르는 위선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였는지도 모른다. 내가 나의 의식의 흐름을 직면하기 위해서는 알리바이가 필요했고 만천하에 복잡한 내 심경을 드러내놓는 이유이기도 하다.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무, 즉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무도 없다.” 불의함을 알고도 불의함에 손을 들어주는 인간들에게 실망하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강조한 헤르만 헤세의 이 말을 기억하려고 한다.

 

나는 무관심과 무지가 얼마나 무책임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각성하며 이제야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재명 바로알기의 첫 번째 관문인 대장동 국감에서 그는 매우 영리한 사람임을 확인했고 두 번째 관문인 관훈토론회를 통해 그는 과격하지도 불안하지도 않은, 매우 논리적이고 전략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100미터 달리기에서 윤석열이 30미터에서 시작하는 주자라면 이재명은 마이너스 50미터에서 시작하는 주자다. 그동안 보수언론은 차치하고라도 그를 편들어주거나 하다못해 있는 그대로 해명해주는 진보 마이크도 빈약했기에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중도 혹은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중 소위 반이재명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까막눈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보통 대선 후보는 정책능력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쌓여온 인간적인 호감도가 더해진 사람이 선택받는다. 그러나 중앙정치가 아닌 지방정치에서 잔뼈가 굵어 제대로 알려질 기회가 없었던, 오히려 보수정부 10년동안 지방자치로 진보적 어젠다를 주도해온 사람, 10년의 전쟁터에서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사람이 후보가 되었다.

 

연애도 썸타는 시간이 필요한데 이번 대선은 특이하게 사귀기로 결정하고 썸을 타는 특이한 선거다. 진도도 나가야 하지만 틈틈이 썸도 타야 한다.

 

글쓴이: 강미숙 사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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