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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에 기억해야할 국민방위군 사건.

인천상륙작전보다 더욱 뼈저리게 기억해야할 사건

서울의소리 l 기사입력 2016/06/2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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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방위군 책임자 처형장면 / 1951년]

 

벌써부터 6.25 특수를 누리려고 중앙방송과 종편들이 난리 법석을 떨고 있다. 선사시대 문화재가 발굴된 것 처럼 호들갑 떨면서, 당시 정훈장교가 찍은 희귀사진들이 ‘최초 공개’된다며 용맹-정진하는 ‘국군 영웅’의 모습으로 다루고 있다.

 

그것이 정말로 나라를 지키고자 스스로를 내던졌던 호국영령들의 얼만 기리기 위한 것이라면 이를 부정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증오심을 고조시켜 통일을 어렵게 만들고 남한 내 진보세력을 규탄하기 위한 헤게모니를 만들려는 추잡한 수작임을 알기에 역겨운 것이다.

 

그런데 6.25를 제대로 알려면 ‘국민방위군’ 사건을 다뤄야한다. 이 사건은 현재 이 나라 수구보수단체의 전신인 ‘대한청년회’가 주도가 되어 거언 10만명에 달하는 국방군을 얼어죽이고 굶어 죽인 사건이다.

 

‘국민방위군은 1950년 12월 21일 공포 실시된 ‘국민방위군 설치법’에 의하여 ... 병력 응모를 시작하자 순식간에 50만 명을 넘어섰다. ... 그런데 정부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남쪽으로 철수하게 되자(1951년 1.4후퇴) 국민방위군 100만여 명도 남쪽으로 후송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 그런데 국민방위군 간부들이 24억의 예산을 횡령 또는 전용함으로써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사령부의 고급 간부들이 보급품을 부정으로 착복함으로써 급기야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영하의 기온에서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수많은 장정들이 식량과 피복을 지급받지 못해 곧바로 병력 1천여 명의 아사 및 동사자가 발생하였고 수 만 명이 영양실조에 걸려 이후 사망에 이르렀던 것이다(사망자 수는 9만여 명 이상으로 추산됨).’ - 다음 백과사전 ‘국민방위군’

 

6.25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킨 ‘인천상륙작전’의 총 동원 병력이 7만 5천명임을 따져봤을 때,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병력 9만명을 몰살시키지만 않았으면, 우리는 막강한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몰살당한 이들 뿐만 아니라, 부당한 처우를 견디지 못한 국민방위군들은 집단탈출하기 시작하면서 군기가 문란해지지 않았으면 맥아더가 굳이 인천상륙잔전을 하지 않고 우리 힘으로 밀고 올라갔을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국민방위군의 총재는 바로 이승만 였다는 것이고, ‘이승만 정부는 여론을 의식하여 현장조사를 실시하였지만 처음부터 방위군 간부 몇 명만을 기소하여 무마하려 했다.’(다음 백과사전).

 

이에 국민들의 여론이 들끓자 국무총리와 국방부 방관을 경질시키고, 국민방위군 사령관 등 4명을 총살에 처했지만, 이승만 정권에 상납된 정치자금에 대한 수사는 아예 이뤄지지도 않았다. 이승만 정권은 다섯명 총살한 것으로 6.25전쟁의 판세를 바꾼 9만 명을 몰살 국민방위군 비리 사건을 덮어버린 것이다.

 

전후 1953년, 이승만은 국민방위군의 해체시켰다. 하지만 당시 비리에 연류되어 수만명을 몰살시켰지만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던 수 많은 국민방위군 간부들, 즉 [대한청년단] 출신으로 국민방위군이 만들어지자 별다른 군사 교육을 받은 적도, 소양도 능력도 없으면서, 대한청년단 출신이라는 이유로 각부대의 지휘관이 된 수 많은 급조된 방위군 장교들, 나라 지키는 것보다 물자 빼 돌려서 자기들 배를 채우기 위해 혈안이 되었던 그 추악한 비리의 사실들은 전후 다시 국군의 요직으로 들어가서 똑같은 짓을 반복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현재 60년이 넘도록 끊임없이 국방비리가 쏟아져 나오는 이유이다. 국군의 전통은 그렇게 세대를 초월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대한민국 공공기관과 공기업을 통 털어서 ‘군’만큼 비리가 많이 조직적으로 발생하는 곳은 없다. 특히나 이들은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와 집단성을 강조하는 이유로 조직 내에 전염병을 퍼트리듯 비리를 권유하며 이에 포섭되지 않는 이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도태시킨다.

 

‘최전방에서 나라를 지켜야 할 책임’을 가진 군인들이 이렇게 재사보다 잿밥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국민방위군의 편성을 주도한 세력들 자체가 친일 부역자들로서 이들의 핏속에는 애초에 나라 지키는 것보다 자신들의 이권에 더 관심을 끄는 본능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실상을 모르고 순수하게 나라 지키려는 일념으로 그들을 뒤따랐던 민초들은 그렇게 전쟁의 참화 속에서 얼어죽고 굶어죽었던 것이다. 이들 국민방위권의 후예들이 7,80년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 까지 자신들의 매국적인 본성에 대한 콤플렉스를 덮기 위해 ‘좌익빨갱이’ 몰이를 해왔던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처사이다.

 

그 사건의 ‘당사자’이거나, 그 후예들이 6.25전쟁을 회고하면서 이런 문제를 일절 논하지 않고, ‘남한 내 종북좌파 척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도 자신들과 한통속이 되지 않은 ‘외부세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이질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대통령이자 국민방위군의 총재였던 이승만을 비롯한 직간접적으로 연류가 된 대한청년회간부, 국민방위군지휘관, 정치권 인사들 수 백명을 저 날 저 순간 총살했다면...   그 이후로부터 이 나라 국방부에서 빚어질 천문학적 규모의 비리가 이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이는 우리가 6.25를 맞으며 인천상륙작전보다 더욱 뼈저리게 기억해야할 사건이다. 

 

글쓴이 : 둥글이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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