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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인명사전을 교회에 비치하라
친일인명 사전에 올라 있는 '노기남 대주교' 건물 기념이라니!
서울의소리 2015.11.15 [17:44] 본문듣기

Before & After

 

많은 일들에 대해 ‘비포’와 ‘애프터’를 따지는 세상인데 하물며 남의 나라 속국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지나도록 이 나라는 여전히 비포에 머물고 있다. 어찌 그것이 ‘나라’라는 통칭으로 먼 산 이름 부르듯 불릴 수 있겠는가? 나라를 이루고 있는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의 문제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지난날이고 다가온 날의 초상이다. 그 초상의 모습은 추상화가 아니라 구상화이며 세밀화다. 그 초상 속에 한국천주교회의 모습도 담겨 있다.

 

서울시 교육청은 700여 개 중, 고교 가운데 이미 친일인명사전을 소장하고 있는 학교를 제외한 551개 학교에 친일인명사전 배포를 결정했다. 어쩌면 우리는 지극히 당연한 일을 이렇게 늦추고만 있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2009년 펴낸 친일인명사전은 3권으로 돼 있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 김성수 <동아일보> 설립자, 방응모 전 <조선일보> 사장 등 친일인사 4389명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장로교단을 비롯한 한국 기독교단들도 교회 성물과 종을 일본 전쟁을 위해 갖다 바쳤으며 헌금을 거두어서, 일본군에 전투기를 헌납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교회 주일 설교에 전쟁에  참여하라고 하며,기독 청년들을 전쟁에 나가도록 독려했다.

 

해방이 된 지 60년이 넘어서야 나라를 팔아먹고 유지하는 데 앞장선 민족 배반자 명단이 발표된 것도, 해방된 지 70년이 되어도 그 명단이 교육계를 비롯한 각계에 제대로 배포되지 않은 것도 우리의 검은 초상 속 세밀화다. 심지어 이제는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단체를 애써 ‘좌파 성향 민간단체’로 매도하는 형편이니 우리는 해방 ‘애프터’가 아니라 해방 ‘비포’에 머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안타까움’은 그렇게 쓰는 말이 아니다


지난 11월 서울에서 열린 영성학교의 ‘관상과 실천’에서 필자는 “한국천주교회의 원죄는 친일이며 그것은 도덕적인 죄인 SIN이 아니라 형법적인 죄인 CRIME”이라고 말했다. 교회는 그 원죄를 청산하는 데 소극적이었으며 2000년 12월 3일, 대림 첫 주일에 발표된 ‘한국천주교회의 2000년 쇄신과 화해’에서 교회는 씻을 수 없는 원죄에 대하여 참으로 유감스럽게도 두루뭉술하게 표현했었다. 발표문 7항 중 제2항이다.

 

“우리 교회는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식민통치로 민족이 고통을 당하던 시기에 교회의 안녕을 보장받고자 정교 분리를 이유로 민족 독립에 앞장서는 신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때로는 제재하기도 하였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교회는 발표문 앞머리에서 과거의 잘못에 대하여 고백하고 참회한다고 말했지만 자신이 했던 일을 마냥 “안.타.깝.게”만 생각했다. 자신의 구체적인 일이 빚은 잘못에 대해 민족 앞에 용서를 빌지 못하는 교회의 안타까움이 정녕 안타까웠다. 안타까움은 그렇게 쓰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교회는 몰랐을까?

 

지금은 절판된 필자의 졸저 “깨물지 못한 혀”(우리신학연구소, 2008)는 민족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을 준비하고 있던 시절 그 사전에 거명된 천주교회 친일인사 7명에 대한 교회와 교계언론의 반응에 대한 연구서였다. 우리는 과연 그때의 지적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나아갔을까?

 

유감스럽게도 한국천주교회는 여전히 ‘비포’에 머물러 있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천주교인사 중 대표격인 노기남 대주교의 이름으로 명명된 건물의 기념소식을 접하는 우리는 한없이 깊은 나락 속으로 빠진다. 민족에게 손가락질 받는 인물이 천주교인에게는 추앙받을 인물인가?

 

   
▲ 노기남 대주교.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 사전에 올라 있는 사진.(사진 출처 =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 사전)

 

교회는 누구를, 무엇을 섬기고 있는가?


천주교라는 종교 안에서는 당연히 ‘그리스도’ 중심적이겠지만, 세상은 ‘그리스도교’ 중심적일 수는 없는 것이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이름 지어 부를 수 없는 하느님’(다석 유영모의 표현)은 한없이 깊고 넓지만, 그리스도교는 한없이 깊고 넓지 않으며 천주교회는 더더욱 그러하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성찬례를 하신 뒤 그들이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자 그들에게 했던 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임금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자신을 은인이라고 부르게 한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섬기는 사람처럼 되어야 한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에 있다.” (루카 22,25-27)

 

과연 교회는 스승 예수의 말씀처럼 섬기고 있는가? 예수가 그토록 경계한 수많은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민족과 역사를, 지금여기의 사람과 삶을 섬기라는 그분의 말씀이 어려운가? 신학은 어렵지만 말씀은 간결하고 쉬운 것이다. 교종 프란치스코가 2014년 한국에서 아시아 주교단과 만났을 때 “세상이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방식은 피상성”이라고 경고했다. 주교 강우일은 그 ‘피상성’이란 단어를 “없어도 되는 일에 목매는 일”이라고 해석했다.

 

광복절 미사에 친일인명사전을 읽어라.


한국천주교회의 친일행각은 단순히 정치적인 면만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것은 반교회적인 일들이 수두룩하게 묻어 있다.

 

그들은 그것이 교회를 살리는 길이었다고 변명하거나 돌려 말하고 싶겠지만 신사에 참배한 일, 천황폐하 만세를 부른 일, 일본군을 위해 아침저녁 기도를 올리게 한 일,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공납에 앞장선 일들은 한마디로 교종이 말씀한 ‘피상성’이며 그것이 바로 ‘하지 않아도 되는’, ‘하지 않아야 하는’ 일들이었다. 사목이란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선량한 신자들을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내몰았는지 그 죄는 작지 않다. 그것이 기록하고 두고두고 뉘우쳐야 할 한국천주교회의 원죄 역사다.

 

일선 학교에 배포되는 친일인명사전을 전국 본당에 비치하라. 그리고 해마다 광복절이 오면 친일인명사전을 읽어라. 자학사관에 빠지란 말이 아니라 지나간 역사 속에서 행했던 부끄러운 일들 앞에 한국천주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스스로 물어라. 역사의 선배들이 저지른 어리석은 죄를 두 번 다시 현시대인들과 미래인들이 반복하지 않을 때 친일의 오욕을 쓴 선배들은 비로소 그들의 죄에서 풀려나와 하느님 앞에 나아갈 수 있다.

 

 
 

김유철 (스테파노)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한국작가회의 시인, 경남민예총 부회장. 저서 “그대였나요”, “그림자숨소리”,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 “천 개의 바람” 등이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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