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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2·8 독립선언 제96주년 기념식 열려...

김원웅,"2.8독립선언 기념식에 박근혜가 회환을 보낼 수 있느냐!"

서울의소리 l 기사입력 2015/02/11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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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청년 독립단은 우리 2천만 민족을 대표하여 정의와 자유를 쟁취한 세계 모든 나라 앞에 독립을 성취할 것을 선언한다. (중략).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고상한 문화를 지녀왔고 반만년 동안 내려온 국가생활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비록 다년간의 전제 정치하에서 일어난 해독과 불행이 우리 민족을 이 지경으로 이끌었다 하더라도 건국 이래 문화와 정의와 평화를 애호하는 우리 민족은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 선진국의 모범을 본받아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후 세계평화와 인류문화에 공헌할 수 있을 것임을 확신하는 바이다.

 

이에 우리 민족은 일본을 위시한 세계 각국이 우리 민족에게 민족자결의 기회를 부여할 것을 요구하며, 만일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 민족은 생존을 위해 자유행동을 취함으로써 독립을 쟁취할 것을 선언한다.』 (‘동경 2·8독립선언서 및 결의문’ 중에서)

동경 2·8독립선언 제96주년 기념식이 10일 오전 서울 백범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열려 임우철 한국독립유공자협회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3,1 독립혁명의 촉진제가 되었던 ‘동경 2·8독립선언’ 주기를 맞아 (사)한국독립유공자협회 주최로 10일 오전 용산구 효창로 백범기념관 컨벤션홀에서 ‘동경 2·8독립선언 제96주년 기념식 및 강연회’가 열렸다.

 

이날 기념식은 임우철 한국독립유공자협회장, 생존항일독립지사, 독립유공자 단체회원, 김원웅 신채호 기념사업회회장, 김삼웅 전 독립관장,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장, 새정치민주연합 홍영표 의원 등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의례에 이어 기념사, 축사, 2·8독립선언가, 2·8독립선언서 낭독, 결의문 낭독, 특별강연,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 임우철  한국독립유공자협회장 (앞좌)  장호권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사무총장(앞우) 등 참석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한국독립유공자협회 임우철 회장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동경 2·8독립선언이 국내 3·1독립만세운동의 기폭제가 되고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기여해 더욱 역동적인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동기가 되었다며 2·8독립선언이 항일 독립운동에 불씨를 지핀 ‘독립헌장’이었음을 되새겼다.

 

김원웅 신채호 기념사업회 회장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에 대해 "이승만을 건국의 공로자라고 칭송하는 것은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아니고 노무현을 욕보이는 것이다"고 비판하고, 기념식장의 박근혜가 보낸 화화을 가리키며 "역사를 왜곡하려고 교학사 교과서를 만드는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2.8 독립선언 기념식에 화환을 보낼수가 있는냐"고 나무랐다.

▲ 박근혜 정부는 이런 자리에 화환을 보내선 안된다고 강조하는  신채호 기념사업회 김원웅 회장   © 서울의소리

 

김삼웅 前 독립기념관장은 ‘오늘의 한·일관계와 도쿄 2·8독립선언’ 제하 특별 강연에서 2·8선언에 대해 “〈무오독립선언서〉로도 불리는 이 선언서는 저명한 해외 망명인사 대부분이 서명한, 국치 이래 최초의 대규모적인 독립선언”이라고 역사적 맥락에서 조명하며 이는 국내 2천만 동포들에게 “국민된 본령이 독립인 것을 명심하여 일제와 육탄혈전 함으로써 독립을 완성할 것을 촉구한 결의문” 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작금의 한·일 관계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해마다 방위백서를 만들고 근년에는 독도를 자국령으로 표기하는 등 불법 무례를 자행했지만 한글판을 만들어 배포한 것은 최초의 일”이라며 드러내 놓고 독도를 탐하고 한국을 우롱하는 아베 신조 정부의 수상한 움직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특히 “아베신조는 ‘쇼와(昭和)의 요괴’로 불린 기시 부스케의 외손자이며, 기시는 일본제국국의 도조 히데끼 내각에서 상공대신을 역임하고 만주국을 주물렀던 침략전쟁의 원흉 중 하나로 전후전범재판에서 A급전범으로 사형을 선고 받았던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베가 이끄는 자민당 정부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에서 가장 극우노선을 지향하면서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며 “A급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에 정부관리들이 참배하는 것을 합법화하고, 헌법개정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것을 볼 때 오래지 않아 일본의 ‘평화헌법’은 ‘제국헌법’으로 바뀌게 될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2·8독립선언은 1919년 국내 3·1독립선언에 앞서 2월8일 일본 동경에서 재일유학생들이 조선청년독립단을 조직하여 발표한 독립선언이다.

 

 당시 독립선언서 문안은 실행위원이었던 이광수가 작성하였으며, 백관수가 2월8일 오후 2시 기독교청년회관에서 2·8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강제 해산으로 10명의 실행위원을 포함한 27명의 유학생이 검거됐다.

 

 이 선언문에서는 ‘만일 이로써 성공하지 못하면 온갖 자유행동을 취하여 최후의 일인까지 열혈을 흘릴 것이며, 영원한 혈전을 불사한다’고 명시했다.

 

<위키백과> 

 

1918년 와세다대학 철학과 학생이던 이광수는 베이징에 건너가 체류 중에 제1차 세계대전의 휴전, 민족자결주의윌슨 강령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중국인들은 이 소식을 듣고 파리 강화 회의에서 중국의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하였다. 이광수도 조선 독립의 희망을 품었으며, 파리강화회의에 중국대표 주정샹, 구웨이준, 후웨이더 등이 베이징을 떠난 후 이광수는 서울로 돌아가 현상윤 그리고 최린과 독립운동을 논의하였다. 이광수는 11월 동경으로 돌아가 와세다대학의 정경과에 있던 최팔용을 만나 결의를 밝혔고, 최팔용은 백관수, 김도연, 서춘, 김철수, 최근우, 김상덕 등의 동지를 얻었다. 이광수는 원문을 쓰고 영문으로 번역을 하였다. 최팔용은 이광수가 상해에 피하여 있을 것을 권유하였고, 이광수는 이 요구를 따라 상하이로 피신하였다. [1]

 

본 독립선언은 만주 지린에서 발표되었던 무오 독립선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상해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김규식의 지시에 따라 조소앙이 동경에 파견되어 유학생들을 지도하여 이루어지게 되었다.

 

 

글로벌선진학교에 모여든 조선 재일 유학생 400 ~ 600여 명 앞에서 최팔용이 ‘조선청년독립단’ 발족을 선언하고 이광수가 기초한 2·8독립선언서를[2] 백관수가 낭독했다. 참여한 사람은 장영규최팔용윤창석김철수백관수서춘김도연송계백변희용강종섭이봉수 등이다. 이들은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은 자주민임을 선언"하였고,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며 민족의 궐기를 촉구했다.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가도로 나선 학생들은 최팔용의 사회아래 대회선언과 결의를 열광 속에 가격하고 독립운동의 구체적인 방향을 논의할 때 일본 경찰들이 들어닥쳐 해산을 명하였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이를 거부하여 큰 소란이 일어났다. 이들은 일경과 몸싸움을 벌이다 강제 해산되고 사회자 최팔용 외에 약 60명이 검거되었고, 8명의 학생들이 기소되었다.[1] [3] 그러나 학생들은 굴복하지 않고 2월 12일 오전에 50여 명의 조선인 학생들이 청년회관에서 독립운동을 협의하다가 검거되었다.

 

이렇게 2월 한 달 내내 조선인 학생들의 독립운동이 일어났다. 이는 이광수에 의하여 조선과 해외에 보도되었으며, 이 사건은 다음 달 3월 1일 서울에서 이루어진 3·1 독립선언의 도화선이 되었다.

 

<2.8 독립선언서 전문>

 

조선청년독립단은 아 2천만 민족을 대표하야 정의와 자유의 승리를 득한 세계만국의 전에 독립을 기성하기를 선언하노라.

 

4천 3백 년의 장구한 역사를 유한 오족은 실로 세계 고민족의 하나이라. 비록 유시호 중국의 정삭을 봉한 사는 유하얏스나 차는 양국왕실의 형식적 외교관계에 불과하얏고 조선은 항상 오족의 조선이고 일차도 통일한 국가를 실하고 이족의 실질적 지배를 수한 사 무하도다.

 

또 합병 이래 일본 조선통치 정책을 보건대 합병시의 선언에 반하야 오족의 행복과 이익을 무시하고 정복자가 피정복자에 대한 고대의 비인도적 정책을 습용하여 오족에게 참정권, 집회결사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등을 불허하며 심지어 신교의 자유, 직업의 자유까지도 불소히 구속하며 행정, 사법, 경찰 등 제기관이 조선민족의 사권까지도 침해하며 공사간에 오인과 일본과의 우열의 차별을 설하며 오족에게는 일본인에 비하야 열등한 교육을 시하야서 오족으로 하여금 영원히 일본인의 사용자로 성케 하며 역사를 개조하야 오족의 신성한 역사적 전통과 위엄을 파괴하고 능모하며 소수를 제한 이외는 정부 제기관과 교통, 통신, 병비 등 제기관에 전부 혹은 대부분 일본인을 사용하야 오족으로 하여금 영원히 국가생활에 지능과 경험을 득할 기회를 부득케 하니 오인은 결코 여차한 무단전제 부정, 불평등한 정치하에서 생존과 발전과를 향유키 불능한지라.

 

그 뿐더러 원래 인구과잉한 조선에 무한으로 이민을 장려하고 보조하야 토착하니 오족은 해외에 유리함을 불면하며 정부의 제기관은 물론이고 사설의 제기관에까지 일본인을 사용하야 일단 조선인의 부를 일본으로 유출케 하고 상공업에도 일본인에게만 특수한 편익을 여하야 오족으로 하야금 산업적 발흥의 기회를 실케 하도다. 여차히 하방면으로 관하야도 오족과 일본과의 이해는 상호배치하야 기해를 수한 자는 오족이니 오족은 생존권리를 위하여 독립을 주장하노라.

 

최 후 동양평화의 견지로 보건대 위협이던 아국은 이미 군국주의적 야심을 포기하고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신국가의 건설에 종사하는 중이며 중화민국도 역연하며 겸하여 차후 국제연맹이 실현되야 다시 군국주의적 침략을 감행할 강국이 무할 것이다.

 

그러할진대 한국을 합병한 최대이유가 소멸되었을 뿐더러 차로부터 조선민족이 무수한 혁명란을 기한다면 일본에게 합병된 한국은 반하야 동양평화의 요란하고 화원이 될지라. 오족은 정당한 방법으로 오족의 자유를 추구할지나 만일 차로써 성공치 못하면 오족은 생존의 권리를 위하야 온갖 자유행동을 취하야 최후의 일인까지 자유를 위하는 열혈을 유할지니 어찌 동양평화의 화원이 아니리오? 오족은 일병이 무하니 오족은 병력으로써 일본에 저항할 실력이 무하도다.

 

일본이 만일 오족의 정당한 요구에 불응할진대 오족은 일본에 대하야 영원의 혈전을 선하리라. 오족은 구원히 고상한 문화를 유하얏고 반만년간 국가생활의 경험을 유한 자라 비록 다년간 전제정치하의 해독과 경우의 불행이 오족의 금일을 치하얏다 할지라도 정의와 자유를 기초로 한 민주주의의 선진국의 범을 취하야 신국가를 건설한 후에는 건국 이래 문화와 정의와 평화를 애호하는 오족은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문화에 공헌함이 유할 줄을 신하노라.

 

자에 오족은 일본이나 혹은 세계각국이 오족에게 자결의 기회를 여하기를 요구하며 만일 불연이면 오족은 생존을 위하야 자유의 행동을 취하야 써 독립을 기성하기를 선언하노라.

 

재일본동경조선청년독립단 대표

최팔용, 윤창석, 김도연, 이종근, 이광수, 송계백, 김철수

최근우, 백관수, 김상덕, 최근우, 백인수, 서 춘

 

결의문

 

1. 본단은 일한합병이 오족의 자유의사에 출치 아니하고 오족의 생존발전을 위협하고 동양의 평화를 요란케 하는 원인이 된다는 이유로 독립을 주장함.

2. 본단은 일본의회 및 정부에 조선민족대회를 소집하야 대회의 결의로 오족의 운명을 결할 기회를 여하기를 요구함.

3. 본단은 만국평화회의에 민족자결주의를 오족에게 적용하기를 요구함. 우 목적을 전달하기 위하야 일본에 주재한 각국대사에게 본단의 의사를 각해정부에 전달하기를 요구하고 동시에 위원 3인을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함. 우위원은 기히 파견된 오족의 위원과 일치행동을 취함.

4. 전제항의 요구가 실패될 시에는 일본에 대하야 영원히 혈전을 선함. 차로써 발생하는 참화는 오족이 기책을 임치 아니함.

 

조선청년독립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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