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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국민이 결단할 때인 것 같다.
서울의소리 2014.07.27 [08:58] 본문듣기
▲  윤재학 칼럼리스트

그렇게 무모하던 이명박도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자 미국에 아무 제한 없이 활짝 열어 제켰던 쇠고기시장을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로 생육기간을 단축하고, SRM인지 뭔지 몇 개 극 위험부위는 수입제한을 하고, 미국에 한국식품검사원을 보내 축산농가와 도축장을 검사하는 흉내라도 냈습니다.

  

만약 광우병 촛불시위가 없었더라면 한국의 축산업은 완전 몰락을 하고, 식탁은 미국에서는 폐기처분해야 하는 아주 늙은 소와 위험한 부산물인 저질쇠고기가 값싸고 질 좋은 쇠고기로 둔갑되어 완전 점령을 했을 것입니다.

  

미국쇠고기를 이명박의 당초 의도대로 무제한으로 열어 제켰더라면 광우병환자가 속출했을 지는 3류 전기기술자출신인 제 지식과 상식으로는 판단할만한 영역이 아니어서 언급을 생략합니다.

 

국민들이 들고 일어서자 “한반도 대운하”를 뚫겠다던 것을 “4대강 살리기”로 이름을 살짝 바꿔 국민 뜻을 받드는 흉내라도 냈고, 한반도대운하의 핵심이자 허리인 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하는 충주부근의 조령산맥 밑을 뚫어 배가 산으로 올라가게 하는 터널하천은 끝내 공사를 강행치 못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멀쩡하던 4대강이 더 건강해지기 보다는, 보시는 바와 같이 4대강은 이미 녹차호수가 되어 사람 곁을 떠나 큰 빗 이끼벌레의 수중낙원이 되었습니다.

 

낙동강변의 주민들은 참으로 좋겠습니다.

집에 앉아서 수도꼭지만 틀면 녹차 향을 풍기고 큰 빗 이끼벌레를 달인 보약과 같은 수돗물이 맹물 수돗물과 같은 헐값에 무제한으로 공급이 되고, 1년 열두 달 녹차향내가 풍기는 환경에서 살아가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붓 뚜껑 눌러주어 이명박을 청와대로 들여보내고, 4대강 살리기 공사를 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 주민들이 박수치며 좋아해서 얻은 결과이니 웃으면서 달게 받아 들이기 바랍니다.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 수돗물이나 댐 물을 보내달란 소리는 아예 하지 마십시오!

영남지역에서 뿌린 씨, 영남지역에서 거두시기 바랍니다.

 

노무현이 계획하고 추진하던 것을 물려받은 <세종시> 건설은 한 참 공사가 진행 중인데도 없었던 일로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고 한나라당의 49%주주인 박근혜가 앞장서서 반대를 하자 이명박도 할 수 없이 세종시 공사를 계속 추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종시 건설의 추진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국민과 박근혜의 속셈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국민들은 노무현의 의도와 같이 터져나갈 것 같은 서울과 수도권의 과밀화를 멈추게 하고 전국의 균형발전을 위해 정부기능을 세종시로 대폭 이양하기 위해 세종시 건설을 주장했던 것이고, 박근혜는 그런 것을 판단할 만한 머리나 안목은 없고 단지 대선을 앞두고 세종시 건설을 강력하게 요구했던 충청권의 “표”가 간절했을 뿐입니다.

 

각설하고!

어제 세월호참사가 일어 난지 100일!

특별법 제정을 외치는 유가족과 시민들의 피를 토하는 것과 같은 절규와 외침은 다 아시고 계실 것이고, 안산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을 거쳐 광화문광장까지 유가족과 시민들이 도보행진을 해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광화문광장 농성현장에서 “특별법제정 촉구”와 “추모행사”를 하고 마치려던 추모제는 이미 오래 전에 공지된 사실입니다.

  

안산부터 도보행군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오랜 관절염으로 장거리를 걸을 수가 없어 오후가 되자마자 광화문광장의 농성장과 시청광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공덕동 네거리로 도보 행군 마중을 나갔습니다.

 

서소문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 애오개역에서 내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경찰차가 선두를 서고 수많은 깃발이 휘날리며 행군대열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얼른 주변에서 박스 판때기 하나를 주워 즉석에서 <고생들 많으셨습니다. (지질이도 못난)서울시민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흘린 땀이 ‘안전한 나라’와 ‘민주주의’의(로) 결실을 맺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써서 길옆에 서서 높이 들고 행군대열을 맞이했습니다.

  

(주)현장에서 즉석에서 쓰는 글은 즉흥적으로 쓰고, 수정하면 보기에 흉하기 때문에 글이 위와 같이 엉성합니다. ‘지질이도 못난’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이고, 뒤의 토씨 “의”는 “로”로 바꾸는 것이 뜻을 더 확실하고 재미있게 하여 읽으시는 분에게 전달되는데 그러지를 못 했습니다. 고발뉴스의 이상호가자가 박스 판에 카메라를 들이 대었는데 전파를 탔을지는 모르겠습니다.

 

행군해 오시는 분들이 모두다 글을 읽고 유쾌하게 웃으며 좋아하셨고, 어떤 분들은 글을 카메라에 담고, 많은 분들이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건네 오셨습니다. 감사는 제가 그분들에게 해야 하는데 오히려 제가 그런 인사를 받았으니 염치가 없습니다. 뒤이어 행군대열의 뒤를 따라 서울역에 도착하여 1시간가량의 휴식과 현장행사를 한 다음에 오후 8시 30분에 시청광장에 도착했습니다.

 

아-!

시청광장!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습니다. 2008년 100일 가까이 진행되었던 광우병촛불시위 때 이후로 최대의 인파가 몰린 것 같았습니다. 유가족은 물론 모든 국민들이 이번만큼은 <세월호특별법>을 확실하게 제정하여 다시는 이 나라에서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안 일어나게 건강한 나라를 만들자는 이심전심의 무언의 약속이자 각오입니다

인파로 광장을 꽉 채웠고 서울역부터 행진해온 5천 명 가량의 보도행진대는 광장으로 들어갈 틈이 없어 유가족 분들만 연단 앞으로 모시고 나머지는 프라자 호텔 앞 도로를 꽉 채워 앉았습니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얼마 전에 특별허락을 받아 젊은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이끌어가는 사이트 <82쿡 = 82엄마당>에 염치도 없이 60대 후반의 남성이 가입승낙을 받아 특혜가입을 하고 몇 개의 글을 올렸고, 그 글에 댓글로 엄마들과 서울광장에서 만나자는 약속이 되어 있었으나  ‘82엄마당’ 당원 엄마들이 모여 있는 곳을 도저히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행사에 참석을 했었는지 이재오가 현장을 급히 빠져나가고 있다 저와 마주쳤습니다.

이재오의 팔을 붙잡다 시피하고 시비조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의원님, 해경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해체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물론 억지 질문이지요.

오죽 답답하면 그런 소리를 했겠습니까?

혀를 찔린 이재오가 급히 “어?”, “예?”하는 단발마의 대답인지 비명인지를 지르며 황급히 그 난처한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엄마당 당원들을 만나는 것은 포기를 하고 추모행사를 지켜보다 추모행사는 10시를 조금 넘어 끝났고 유가족과 뜻 있는 시민들이 노숙농성중인 광화문광장까지 시가행진에 들어갔습니다.

불과 500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였습니다.

  

하지만 그 거리가 서울과 평양거리보다도 멀었고, 경찰차로 2중 3중으로 틀어막은 철벽은 베를린 장벽이나 휴전선보다도 더 강력했습니다. 그때부터 하늘에서는 세찬 장대비가 쏟아 졌으나 이탈하는 시민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 경찰의 철벽과 깃발을 휘날리는 시민들이 서울신문사 앞에서 경찰차벽으로 국경을 이루고 첨예한 대치에 들어갔습니다.

  

같은 얼굴, 같은 민족, 같은 언어이련만 서로 말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의 방송차량에서는 예의 그 “불법시위와 채증을 하여 강력한 처벌”을 하겠다는 개나발을 계속 불어 대었고, 시민들은 “길을 비켜라!”와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피맺힌 절규가 빗줄기를 뚫고 오갔을 뿐입니다.

  

그대로 그 슬픈 장면만 바라보며 죽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옆에 학생이 들고 있는 스티로폼 판을 하나 양해를 구해 얻어서 그 뒷면에 즉석에서 또 하나의 호소문을 써서 시민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호소문은 이랬습니다.

  <유벙언씨! 제발 부탁입니다.

  “나 멀쩡히 살아있다.”라고 하는 동영상 하나만 올려 주십시오!

  그러면 이 더러운 세월 끝장납니다.>

 

그때 마침 현장중계를 하고 있던 고발뉴스의 이상호기자가 마이크를 입 앞에 들이대 뜻하지 않게 현장에서 즉석 길거리 인터뷰를 했는데 그게 전파를 탔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원래 그런데 나가더라도 연단에 올라 자유발언을 하거나 기자의 길거리 즉석 인터뷰 같은 것은 극구 사양하는 데 워낙 불시에 이상호 기자가 입 앞에 마이크를 들이대고 다짜고짜 질문을 던져오니 몇 마디 대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유병언이 만약 살아 있다면 이 정부로서는 그것을 쓸어 덮을 마땅한 방법이 없습니다.

 

많은 시민들도 그 글을 읽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폭소를 터트리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거나 반갑게 악수를 청해 왔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런 분들에게 모르면 몰라도 정부가 유병언의 시체라고 발표한 백골은 앞뒤가 영 맞지를 않고 유병언이 아닐 가능성이 많지만, 유병언 역시 어떤 방법으로든 입이 막혔을 것이라고 정황얘기를 해 주면 고개를 끄덕이며 “그도 그렇다.”고 동의를 하셨습니다.

 

위 글 대로 유병언이 만약 살아있고 그가 살아있다는 것이 공개되었을 때 이 정부가 그것을 어찌 수습하겠습니까?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 백골이 유병언의 시신이 아닐 가능성은 농후하지만, 역시 유병언의 입도 어떤 방법으로든 간에 막혔기 때문에 정부가 그 백골을 유병언의 사체라고 하고 나왔을 것입니다. 앞 뒤 정황에 꿰어 맞추어 본 제 추측일 뿐입니다.

 

그렇게 대치를 하다 12시 마지막 전철을 타고 힘없고 맥 빠지는 발걸음을 집으로 돌렸습니다.

오늘 아침에 그 대치장면이 보도된 사진을 보니 말문이 막혔습니다. 2중 3중의 차벽으로 서울시청광장 ~ 광화문 농성장소 ~ 경복궁 ~ 그 뒤의 청와대 모습, 가관이었습니다.

  

사방이 다 경찰이 쏘아대는 서치라이트와 시민들 손에 든 촛불이 쏟아지는 빗방울에 난반사 되어 불규칙한 불빛 곡선을 그리며 휘황찬란한데, 오직 청와대 한 곳만 깜깜절벽 암흑천지였습니다. 흡사 인공위성에서 찍은 한반도주변의 야경사진 같았습니다. 일본, 남한, 중국대륙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데 오직 북한만이 고양이 눈깔같이 평양 한 점만 희끗하게 밝고 나머지 북한전역은 깜깜 암흑천지의 사진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나라!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이제 전 국민이 나서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국민들이여!

  답을 주십시오!

 

                                                                         칼럼리스트 윤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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