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정윤회-김기춘’ 작품
우병우, 물불 안 가리는 특수통, 공포정치 분위기 조성
세월호 참사로 위기감, 朴 수세국면에서 공격국면 채비
KBS 백운기 신임보도국장 임명 배경 이정현 수석 입김
‘국민대통합’ 공약은 온데간데없고 TK판검사 군단 포진
그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검찰 수사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 1과장이었다. 대검에 출석한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주임검사였다. 이런 경력의 소유자를 세월호 정국대응 기획책임자 격인 민정수석실에 앉혀놓은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정국을 강경일변으로 돌파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드러난 셈이다. 결국 박 대통령은 세월호 정국에서 형성된 수세국면을 공세국면으로 전환할 만반의 채비를 다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의 밤샘 항의시위로 KBS보도국장이 사직한 자리에 선임된 백운기 보도국장의 경우 이정현 홍보수석의 광주 살레시오고 동창이다. 그는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을 KBS 앵커에서 청와대로 보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즉 길환영 사장에 노골적 반감을 표할 정도로 불확실했던 전임 보도국장보다 박근혜정부로서 더 ‘믿을만한’ 인물로 교체된 셈이다. 세월호 침몰사고를 틈타 그야말로 친청체제를 강화하려는 이 정부의 움직임에서 국민들은 참담함을 느낀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잘 알려진대로 TK(대구-경북)를 정치적 기반으로 해서 집권에 성공한 대통령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입버릇처럼 ‘국민대통합’이란 말을 내뱉어왔다. 정권 초반 일부 인사들을 다른 지역 출신으로 채우며 이런 말을 지키는 것 같았지만, 정권 출범 1년 3개월 만에 그의 약속은 ‘도로아미타불’이 되어 버렸다. 공약은 도로아미타불 특히 세월호 침몰 사고를 틈 타 대통령은 그야말로 믿을 만한 사람들로 청와대 곳곳을 채우고 있다. 특히 최근 본국의 사정기관과의 의견조율을 담당하는 민정수석실 비서관 3자리를 모두 TK출신으로 채운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인사와 사정, 민정, 공직기강이라는 청와대의 핵심 비서관 자리를 특정 지역 출신들로 채움으로써 권력 운용은 편할지 모르겠다. 반면 민심을 제대로 추스르고 국민 눈높이의 국정을 펼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많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업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민정비서관이란 공직자들을 사정하고 민심을 탐방해 대통령에게 직보하는 청와대 비서관 중에서 가장 중요한 비서관이다. 여론을 수집하고 정국 동향을 주시할 뿐 아니라 공직자들의 사정을 담당하는 자리다.
박 대통령은 먼저 민정비서관 자리에 지난 2009년 대검찰청의 박연차 게이트 사건 수사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 주임검사였고, 노 전 대통령 서거와 관련된 우병우 당시 중수 1과장, 대검수사기획관을 내정했다. 그는 검사 재직 당시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리기는 했지만 워낙 외골수여서 다른 사람들과의 융화에 어려움을 겪었던 인물이다. 실력이 출중할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성격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청와대는 지난해 말부터 이중희 민정비서관을 친정인 검찰로 되돌려 보내기로 하고 후임자를 물색해왔으며 올 2월에는 집중적으로 후임자를 찾았다. 한 현직 검사가 한 때 민정비서관으로 유력하게 검토되기도 했으나, 현직 검사라는 점과 특정 지역 출신이라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해 청와대의 낙점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본지에서도 보도했듯이 현재 청와대 한 쪽에서는 박지만 EG회장과 정윤회 씨간 권력다툼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공직사회 전반의 기강을 바로잡는 민정비서관 임명에 정 씨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말 자체가 나오는 것이 청와대의 태도가 여전히 안하무인이란 방증이다.
청와대는 이와 함께 공직기강비서관에 권오창 변호사를, 민원비서관에 김학준 변호사를 내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민정수석실 비서관 3명을 한꺼번에 내정함에 따라 지난 1월 바뀐 김종필 법무비서관을 포함한 민정라인 비서관 4명은 모두 교체됐다. 교체된 비서관 4명은 모두 판검사 출신이다. 여기에 비서관 4명 중 3명은 TK 출신이다. 김종필 법무비서관이 대구 출신이고, 우·권 내정자는 각각 경북 봉화와 경북 안동 출신이다. 민원비서관 김 내정자는 서울 출신이다. 민정수석실의 사정과 민정이라는 두 기능을 총괄하는 우병우 민정비서관 내정자와 공직자들의 기강과 인사 검증을 하는 권오창 공직기강비서관 내정자, 김종필 법무비서관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포진함으로써 공직 사정과 검증, 민심 탐방은 TK라는 동향 출신들의 수중으로 들어갔다. 홍경식 민정수석(경남 마산)과 김기춘 비서실장(경남 거제)은 경남 출신들이어서 ‘끼리끼리’(니캉내캉-경북 사투리) 문화가 자심할 수밖에 없다. 국정원과 검찰, 국세청, 경찰, 감사원 등 권력기관의 핵심 자리에는 어김없이 TK를 비롯한 영남 출신들이 똬리를 틀고 있다. 권력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단어는 사라졌고, 대통령의 공약인 국민대통합도, 시작과 끝이 공직 인사의 탕평이지만 의미 없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내각 총사퇴와 청와대 비서진 개편설이 나도는 상황에서 정치적인 부담이 큰 ‘우병우 카드’를 꺼내드는 건 단순한 일개 비서관 인사문제가 아니라 야당과 ‘적군과 아군’으로 막가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가 김기춘 비서실장의 작품이란 말도 나온다. 김 실장은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군이 시위진압 경찰의 쇠파이프에 맞아 사망한 뒤 전국적으로 분신·투신 자살이 잇따르면서 정국이 요동치자 이른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으로 맞불을 놓을 당시 법무장관이었다.(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은 23년만에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국회법사위원장 시절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주도한 탄핵소추위원이기도 했다. 이런 이력을 가진 김기춘 비서실장이 정치적으로 보자면 대통령이나 여당을 지지하는 세력이 절반을 넘고, 야당을 지지하는 세력 중 친노는 일부에 불과한 상황에서 친노 대 비노 프레임으로 정국을 돌파하려는 의도를 드러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나 새누리당이 친노 대 비노 논란을 일으킬수록 야당내부에서도 친노를 공격하거나 견제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청와대나 새누리당이 원하는 야당의 세력들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관측이 설득력을 얻는 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떨어지고 있는데다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퇴가 예정돼 있고 이에 따른 내각 개편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 김기춘 비서실장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다수의 수석비서관 교체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청와대가 사전에 공안정국 내지는 사정정국을 조성해서 지금의 난국을 타개하려는 의도로 논란이 뻔히 예상되는 우병우 민정비서관 카드를 꺼내들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Sunday Journal USA 리차드 윤 기자 http://www.sundayjournalus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