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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초라한 장준하 공원, '마음이 무겁습니다'
하루 빨리 장준하 선생 암살의 진실이 밝혀져야 합니다.
서울의소리 2013.08.19 [13:56] 본문듣기
지난 8월 17일은 故 장준하 선생님께서
경기도 포천의 약사봉에서 암살당하신지 38년째 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이날 장준하 선생님이 묻혀계신 경기도 파주의 '장준하공원'을 다녀왔습니다.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던 그날의 추억을 갈무리해봅니다.



아침 9시 30분에 합정역 2번출구 앞에서 추모식을 주최하는 곳에서 마련해준
전세버스를 타고 경기도 파주에 위치해 있는 '장준하 공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교통량이 제법 많더군요.
그런데 차가 막혔음에도 불구하고 약 40분만에 '장준하 공원'에 도착하였습니다.
장준하 선생님은 생각보다 매우 가까운 곳에 계셨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죄송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신 분들 중 몇분께서 자동차 네비게이션에
'장준하 공원'을 찍으면 안내가 나오지를 않아서 애를 먹으셨다고 얘기해주시더군요.

'장준하 공원'의 정확한 주소는 <경기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 688> 입니다.

사실 아직까지 '장준하 공원'을 안내하는 공식 홈페이지가 만들어지지 않았더군요.
하루빨리 공원에 대한 안내를 해줄 수 있는 홈페이지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수막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번 38주기 추모식의 주최는 '장준하 기념사업회'이고,
주관은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입니다.

이번 추모식의 주관을 맡은 '장준하특별법제정시민행동'은
'장준하선생 암살의혹규명 국민대책위원회(국대위)'가
이번 38주기 행사를 통해 발전적으로 거듭난 단체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장준하 선생님의 의문사를 밝히기 위한
'장준하 특별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관련글 - 장준하 특별법 제정 추진 '수많은 의문사 진실 밝혀야' (클릭)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가로막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박정희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장준하' 라는 이름 세 글자 였기 때문입니다.
장준하 특별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온 국민의 관심과 성원이 필요합니다.


▲ 각계각층에서 보내온 조화들입니다.

한가지 아쉬웠던 것은
맨 왼쪽의 조화를 보내신 분은 직접 오셨어야 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이 보낸 조화는 없었습니다. (당연한건가요? ㅎㅎ)


▲ 가운데에 계신 분이 바로 장준하 선생님의 미망인이신 김희숙 여사님 입니다.

다가가서 인사를 드렸더니
"어이구, 우리 이쁜이 왔어?" 라고 반갑게 손을 잡으며 맞이해 주시더군요.
 
지난주에 처음 뵈었는데 저를 기억해 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너무 밝으셔서 오히려 제 마음 한구석이 더 아프더군요....


▲ 사진 오른쪽에 손을 내밀고 계시는 분이 장준하 선생님의 장남 '장호권 선생님'이고, 가운데는 미망인이신 '김희숙 여사님', 그 옆에는 장준하 선생님의 손녀, 맨 왼쪽에 계신 분은 장준하 선생님의 며느리 이십니다.

가족분들이 모두 얼굴이 많이 닮으셨더군요.
특히 장호권 선생님과 따님은 완전 붕어빵이었습니다. 


▲ 38주기 추모식을 위해 준비된 무대입니다. 

추모식에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분들이 약 200여분 정도 참석을 하셨습니다.
신부님도 계시고, 목사님도 계시고, 스님도 계시더군요.
 
정치인들도 다수 참석했습니다만 새누리당 관계자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더군요.
이러면서 무슨 과거사를 논하고 국민 통합을 말하는 건지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추도식에 참석한 분들이 분향과 헌화를 하는 모습입니다.


▲ 장준하 선생님의 무덤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새겨져 있는 장준하 선생님의 책 '돌베개'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문득 국정원 대선개입을 규탄하는 시국선언을 하는 대학생들과 청소년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들이 가진 '젊음'이 바로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 장준하 선생님의 무덤으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더군요.
역사를 만나러 올라가는 길입니다.


▲ 장준하 선생님의 무덤입니다.
 
장준하 선생님의 무덤은 다름아닌 '돌베개' 그 자체 였습니다. 

 "광야에서 돌베개를 벨지언정 못난 조상이 될수 없다"는 그 말씀.....
죽으셔서도 돌베개를 베고 누우시다니요.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돌무덤을 손으로 쓰다듬어 보았습니다. 단단하고 차갑더군요.
그때 손에 전해져오던 감촉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 장준하 선생님께 큰절을 올렸습니다. 

너무 늦게 찾아와서 죄송하다고 마음속으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장준하 선생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그 정신을 기억하겠노라고 약속드렸습니다.


▲장준하 선생님의 무덤의 비석은 다름아닌 '사상계(思想界)' 였습니다.

 '사상계'는 '이승만의 3.15 부정선거'에 저항하여 일어난 '4.19 혁명'을 이끌어내는 토대가 된 잡지입니다. 그리고 '사상계의 발행인'이 바로 장준하 선생님입니다.

 '4.19혁명'은 우리나라의 헌법정신과 직결되는 역사적 사건이고, 그 시발점이 바로 장준하 선생님이 발행하신 '사상계' 입니다.

 장준하 선생님은 그런 분이십니다.


▲ 장준하 선생님의 무덤에서 멀리 통일전망대가 보이더군요.

 민족의 통일을 염원하셨던 그 마음이 전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번 38주기 추모식에 참석하는 내내 마음이 너무 불편하고 한편으로는 화가 났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 위 사진이 장준하 공원 입구입니다.

 한마디로 휑하고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출입을 통제하는 입구도 없고, 장준하 선생님을 소개하는 박물관이나 추모관도 없습니다.
잔디에는 잡초가 무성했고, 돌멩이가 굴러다니고, 바닥이 파여서 모래가 드러난 곳도 많았습니다.


▲ 장준하 선생님의 무덤위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비가 많이 내리게 되면 금방이라도 쓸려 내려갈 것 같은 불안한 모습이었습니다.
어쩌면 과거와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질수도 있겠다는.....
그런 불안한 마음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장준하 선생님 무덤 위쪽으로 길이 나있길래 올라가 봤더니
나무를 꺾어서 길을 어설프게 막아놓았더군요.

단숨에 나무를 뛰어넘어 좀더 들어가 보니 산책로와 연결이 되어 있었습니다.


▲ 장준하 선생님의 무덤은 이렇게 '살래길' 이라는 산책로와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장준하 선생님의 무덤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심히 걱정되는 것은 누군가가 나쁜 마음을 품고 장준하 선생님의 무덤을 언제든지 훼손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 장준하 공원안에 있는 유일한 편의시설(?) 화장실 입니다.
 
왼쪽 칸에는 남자용 소변기가 설치되어 있고, 오른쪽은 남자와 여자가 공동으로 쓰는 양변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화장실을 오고가면서 남자와 여자가 눈을 마주치게 되는 민망한 상황이 연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 속이 상해서 장준하 선생님의 장남 장호권 선생님께 공원의 열악함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오히려 이마저도 다행인 것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파주시에서 그동안 많은 협조를 해줘서 이정도라도 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참고로 한가지 비교를 해보자면 전국적으로 '박정희 기념사업'에 쓰이는 예산이 무려 '2000억원'이라고 합니다.
 
관련글 - 방방곡곡 박정희 기념, 예산 2000억원 (클릭)

가장 가까운 예가 중구 신당동에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박정희 공원'입니다.
 
그리고 한가지만 더 예를 들자면.... 
 

▲ 이 5m짜리 동상 하나만 해도 무려 12억 입니다.
 
장준하 선생님의 삶과 죽음은 '돌베개' 그 자체였습니다. 아직도 제 손끝에는 그 날의 차가웠던 돌베개 무덤의 감촉이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초라했던 '장준하 공원'의 모습이 계속 떠올라서 마음 한켠이 너무 무겁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로 세우기를 꿈꾸시는 모든 분들께 고합니다.

장준하 선생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민주주의를 열망했던 그 정신을 기억해주십시오. 이 분을 바로세우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절대 바로 세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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