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연합뉴스 © 서울의소리 |
한 사람의 가치는 그가 떠났을 때 더 잘 드러나는 법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몰랐던 선행이나 정의로운 행동이 현직을 떠나거나 세상을 떠났을 때 더 추억되는 것이다. 그런 분의 추억에는 향기가 묻어 있다. 타인의 삶까지 맑게 해주고 위로해주는 향기 말이다. 그 향기는 라일락 향기보다 맑고 눈부시다.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이 18일 임기를 마치고 헌재를 떠난다. 끝까지 헌재 재판관으로 임무를 다해준 두 분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고마움과 존경을 보낸다. 두 분 덕에 내란수괴 윤석열이 파면되었고, 한덕수 총리의 전횡에 제동이 걸렸다. 두 분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했다. 물론 다른 재판관들도 동참했다. 그 업적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재산 4억도 많다고 부끄러워한 문형배 재판관
특히 문형배 재판관의 삶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김장하 선생의 장학생으로 대학을 다니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판사가 된 그는 한시도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인사 청문회 때 김장하 선생을 소개할 때 여야의원들 모두 공감한 것도 그 때문이다.
고위 공직자 인사 청문회 때 이토록 칭찬만 나온 사람은 문형배 재판관이 거의 유일할 것이다. 그만큼 그는 이슬처럼 살았고, 생활도 평균인의 삶을 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청문회 때 신고한 본인 재산이 겨우 4억이었는데, 그것도 평균인보다 많아 죄송하다고 해 의원들을 머쓱하게 했다.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들의 평균 재산은 수십억에 달하고 어떤 사람은 수백억이다. 정당하게 물려받은 것이거나 벌었다면 존경할 만한 일이지만, 세상이 어디 그런가. 고위 공직자 일부는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었고, 심지어 달러로 돈을 번 장관도 있었다. 나라를 팔아 돈을 번 것이다.
감장하 선생과 문형배 재판관 스토리 감동의 물결
문형배 헌법재판관은 1965년 경남 하동군에서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대아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법학과를 졸업했다. 그동안 부산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 부산가정법원 법원장,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 부산지방법원 판사, 부산고등법원 판사,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역임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가 재개봉되었는데, 문형배 재판관과의 스토리 때문이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난 문형배 재판관은 진주에 사는 김장하 선생의 도움으로 대학교를 다니고 사법고시에 합격해 법관의 길을 걸었다. 문형배 배판관은 이번에도 스승에게 전화했는데, “단디해라”란 말을 들었다고 한다.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산 김장하 선생의 가르침을 배운 문형배 재판관이 내란수괴 윤석열을 파면시킨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것은 문형배 재판관이 국회 인사 청문회 때 김장하 선생을 언급할 때부터 예고되었다.
문형배 재판관은 김장하 선생에 대해 "선생은 제게 자유에 기초하여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하며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고 공동체를 튼튼하게 연결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몸소 깨우쳐 주셨다"고 회상한 바 있다. 문형배 재판관은 김장하 선생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헌법과 법치주의를 지키기 위해 힘썼다. 문형배 재판관은 김장하 선생의 삶과 철학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했다.
‘어른 김장하’ 재개봉
2023년 11월에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가 개봉된 이후 호평을 받았는데, 문형배 재판관과의 인연이 알려지자 2025년 4월 9일 재개봉되었다. 이번 재개봉으로 전국에서 많은 관객들이 김장하 선생의 삶과 철학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있다. 김장하 선생은 자신의 선행을 공개적으로 알리기를 원하지 않았고,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며 검소한 삶을 살았다.
김장하 선생은 부박한 시대, 진정한 어른이 무엇인지 보여 주었다. 다큐멘터리가 재개봉함에 따라 김장하 선생의 철학과 삶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나눔 정신과 사회적 책임을 되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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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고향 청산도, 산이 두 분을 닮았다>
18일 퇴임하는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여생이 행복했으면 한다. 기회가 온다면 두 분의 가족을 필자의 고향 청산도로 모시고 싶다.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 느림보 섬 청산도는 두 분을 닮았다. 지고지순한 사람도 있고 지고지순한 섬도 있다. 4월 다도해의 섬들은 꽃처럼 아름답다. 청산도는 지금 마침 유채꽃 축제 중이다. 거기 서편제 길이 있는 마을(도락리)이 필자의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