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연합뉴스 © 서울의소리 |
윤석열은 초보 정치인이었다. 검사생활만 26년을 했던 법조인 출신으로 정치에는 문외한이었다. 정부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나 국가가 가야하는 방향 같은 중대한 일을 애당초 알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 정말 정치에 대한 뜻이 있었다면 차라리 구의원이나 시의원을 통해 정치입문과정을 배우고 경험한 후 더 큰 정치를 펼치는 것이 옳은 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처음부터 정치를 차근차근 배우지 않고 대통령부터 도전해 덜컥 당선되고 말았다. 대한민국 비극의 시작이었다. 당선된 후 그가 손을 댄 대표적인 정책들은 모두 실패했다.
최근 실패로 발표된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동해 심해가스전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헛꿈으로 끝난 것이다. 대왕고래 프로젝트가 발표된 시기와 배경부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발표가 이뤄진 지난해 6월 초는 22대 총선 참패 직후로 윤석열 정권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치솟던 때였다. 대왕고래 발표 직전 갤럽 여론조사에선 윤석열의 지지율이 21%를 기록해 20%선 붕괴 위기에 몰리는 상황이었다. 그즈음 관련 부서에서 대왕고래 시추 보고서가 올라왔고, 참모들로부터 이를 보고받은 윤석열이 불리한 국면을 전환시킬 카드로 꺼냈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도 틈만 나면 산유국의 꿈이라는 사기를 치며 국민들을 기만했던 터라 과거를 기억하는 국민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역시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한 이 사업도 결국 예상대로 실패로 돌아갔다.
부산엑스포 유치 실패도 윤석열이 실패한 정책이었다. 윤석열이 유치전에 본격 뛰어든 건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직후로 민심이 극도로 악화된 시기였다. 여권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6개월 남은 총선에 먹구름이 낀 상황에서 윤석열은 부산엑스포에 사활을 걸었다. 엑스포 유치에 성공할 경우 부산은 물론 전국적으로 표심을 흔들 수 있다는 계산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결선투표로 가면 당장 성공이라도 할 것처럼 요란을 떨었다. 당시 재계와 정부 일각에서도 엑스포 투표 결과를 보수적으로 예측했지만 대통령실은 분위기를 띄우다 119대 29라는 유례없는 대참패로 끝나고 말았다. 이미 해외 언론에서도 120표 정도의 득표로 사우디가 1차 투표에서 승리할 것을 예상하는 보도가 지배적이기도 했다. 정치적 계산에 눈이 멀어 현실을 도외시한 채 국가적 망신을 초래한 대표적 사례로 기록된 것이다.
의대 증원 문제도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기록되고 있다. 의대 증원 문제는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는 과제였지만, 윤석열이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이 총선 두 달을 앞두고 갑자기 2000명이라는 숫자를 들고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의대 증원 400명에 대해 반발이 컸던 상황이라 보류해둔 과제였지만 윤석열은 2000명 증원에 대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강압적으로 추진하려 했다. 총선 필승 카드로 여긴 윤석열이 무리하게 밀어붙인 결과는 참혹할 지경이었다. 심지어 윤석열의 대표적인 지지층으로 알려졌던 그들이 12·3 비상계엄 포고령에 '전공의 처단'이 명시되면서 의사들이 윤석열 탄핵 집회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이 세가지 실패 사례의 공통점은 윤석열의 무지와 무능, 독선이 일을 그르쳤다는 데 있다. 국익과 민생에 직결된 사안은 정치적 계산을 배제한 채 정확한 예측과 분석이 우선돼야 한다는 게 기본 원칙이지만 윤석열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잘못된 판단을 밀어붙여 실패를 거듭하며 화를 자초하고 말았다.
윤석열의 실패는 계엄령으로까지 이어졌다. 계엄령의 실패는 차라리 국가를 살린 형국이 되었다. 독단적인 국정 운영은 민주적 절차를 파괴하고, 헌법을 유린하는 지경으로 이어졌다. 비상계엄 선포와 내란 사태는 윤석열의 무지와 무능이 극단으로 치달은 행태이다. 지금 시대에 내란이 성공할 거라고 믿었던 시대착오적 인식과 주변의 만류를 무시하고 강행하는 독선적 태도, 국가와 국민은 안중에 없는 오만하고 이기적 태도 등이 결합돼 최악의 상황으로 나타난 것이다. 윤석열의 무능이 우리 사회에 끼친 해악이 너무도 지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