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만에 발동한 비상계엄 사태는 동이 트기도 전에 끝났다. 본국 시간으로 오후 10시 30분 느닷없이 발표한 계엄령에 국민들은 그야말로 대공황 상태에 빠졌다. 공수부대가 동원돼 국회 본청의 유리 창문을 부수고 진입해 여야 정치인들을 체포하려는 어제의 상황은 흡사 50년 전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는 것과 같았다. 본지는 그동안 몇 차례 본국 야당 정치인들이 계엄령을 주장하는 배경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본국에서는 윤석열 정권의 계엄령 발동 소문을 괴담으로 치부했지만 본지는 왜 이런 계엄령 검토설이 나오고 있는지에 대해 심층적으로 보도하며, 이것이 윤석열(본지는 오늘부터 대통령 직위를 뗀 채 이름만 언급할 것이다.)의 탄핵 트라우마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를 위해 북한을 계속해서 자극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본지의 이런 분석은 그야말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맞았다. 문제는 윤석열의 직무가 완전히 정지될 때까지 ‘북한의 도발 자극 – 도발을 빌미로 한 선제 타격-전시 상황을 이유로 비상계엄 발동’의 3단계 시나리오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야당은 본국시간으로 12월 4일 윤석열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했고, 이는 5일 본회의 보고를 거쳐, 6일과 7일 본회의 표결을 통해 결정된다. 그의 직무가 정지될 때까지 아무런 일이 없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현재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윤석열 자신의 자해극이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윤석열과 몇 차례 술을 마셔본 사람은 그의 주사를 안다. 소맥으로 목을 적신 후 안주를 충분히 먹는다. 그래야 든든하게 술을 마실 수 있다는 논리다. 그래서 안주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놓고 술을 먹는다. 안주에 대한 하나하나 설명을 곁들이는 것도 술버릇이다. 어느 정도 배가 부르면 본격적으로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면 얼굴이 불거지고 눈이 풀린다. 나이가 들어서는 2차에 가면 앉은 채로 잠이 든다. 윤석열이 3일 밤 전격적으로 10시 30분 비상계엄령을 선포할 당시 눈은 정확히 그랬다. 술이 거하게 취한 상태에서 나오는 그 눈빛 그대로였다. 그가 술을 마셨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기자들도 출입을 통제하고 극소수만 앉혀놓고 직접 계엄령을 발동했기 때문에 마시지 않았음을 입증할 방법도 없다. 무엇보다 한밤중의 계엄령 발동은 대통령의 정상적 사고 여부를 의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상적 사고를 하거나 술에 취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아직 끝난 게 아니고 시작
이날 윤석열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키르키스탄과 정상회담이 있었다. 오전부터 있었던 정상회담은 대략 6시 전후로 끝났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회담을 마친 시간에 대해 대통령실은 아직까지 공지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오전부터 이어진 정상회담에 대통령이 계속 참석하지 않는 것이 통상적이다. 미국이나 일본, 중국 정상 등 한반도 주변 강대국 정상들과의 회담은 그럴지 몰라도 이역만리 키르키즈스탄과 정상회담에 대통령이 하루 온 종일 참여하지 않는다. 이를 유추할 수 있는 것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행적이다. 행안부 장관은 국방부 장관과 함께 계엄을 건의할 수 있는 두 주무부처 장관 중 한 명이다. 이 장관은 오후 2시 30분으로 예정된 울산광역시 문수야구장에서 ‘국민통합 김장행사’에, 오후 4시 20분엔 울산광역시청에서 중앙지방정책협의회에 참석했다. 이 장관은 중앙지방정책협의회에서 오후 5시 25분께 마무리 발언을 하는 것으로 예정돼 있었으나, 행사 도중 오후 5시께 급하게 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장관은 오후 5시 8분 울산광역시청에서 나와 오후 5시 40분 서울행 기차를 탄 것으로 전해졌다. 애초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갈 계획이었으나, 시급한 상황이 발생한 것인지 급히 기차를 타고 서울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에서 서울까지는 KTX로 약 2시간 20분 가량 걸리기 때문에 이 장관이 대략 저녁 8시께 서울에 도착한 것으로 계산하면,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한 밤 10시 25분까지 약 2시간 사이에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가 열렸고, 이때 이 장관이 국무회의에 참석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사이 윤석열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시간은 저녁을 먹는 시간. 배고픔을 참지 못하는 윤석열은 계엄을 건의한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나 혹은 관련자들과 함께 만찬 자리에서 이를 논의했던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은 익히 알려져 있듯 만찬자리에 술이 빠지지 않는다. 이 자리에서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지고, 계엄사령관을 누구를 할지도 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얼마 뒤 윤석열은 한덕수 총리를 용산으로 불러 계엄령 관련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전해지는 말로는 계엄령 발동 소식을 들은 한 총리는 깜짝 놀라서 윤 대통령을 30분 동안 설득했으나 윤 대통령은 흥분하며 철회하지 않았다고 한다. 윤석열은 흥분하면 얼굴이 불거지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윤석열에게 한 번 질린 사람은 다시는 얼굴을 마주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지금 누구도 그에게 직언을 해줄 수 없는 이유다. 어쨌든 한 총리는 반드시 국무회의를 열어야 한다고 요구했고, 그래서 연락되는 국무위원들 호출해 긴급하게 회의를 열었다. 여기에 한덕수 국무총리와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용현 국방부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최 부총리는 경제 망가진다며 반대하고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나 윤석열은 평소 자기 성격 때문인지 술을 마셔서인지 오히려 역정을 내고 계엄령 발동을 강행했다. 그가 발표한 계엄령 전문을 보면 21세기 민주국가의 대통령이 써서는 안 되는 단어들로 가득차 있다. 종북세력, 범죄자소굴, 일거에 척결 등 한국전쟁 직후나 군사정권 시절 지도자들이 썼던 단어들이 가득하다. 그렇게 해서 12.3 사태로 불리는 비상계엄 사태가 일어났다.
국회 해제의결 전후 행적 미스터리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다. 박 계엄사령관은 같은 날 오후 11시, 계엄사령부 포고령 제1호를 발표했다. 이후 자정을 넘길 무렵 계엄군이 국회 경내로 진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검은색 유니폼과 위장 무늬 전술장비를 착용하고 야간투시경과 총기로 무장한 이들 병력은 특수전사령부 또는 수도방위사령부 소속으로 추정됐다. 계엄군은 국회 본청에 진입하려는 과정에서 보좌진들과 충돌하며 유리창을 깨거나 창문을 넘어 진입하는 등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회에 모인 190명의 국회의원은 4일 오전 1시를 넘겨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이에 따라 비상계엄 선포는 법적 유효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계엄군은 국회에서 철수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오전 1시 15분, “국회 본청으로 들어왔던 군인 전원이 철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가 의결됐을 경우에 즉시 해제해야 한다. 하지만 윤석열이 이를 해제한 것은 오전 4시 30분 정도가 되어서다. 계엄 해제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을 수 있겠지만, 계엄 발표 후 6시간 동안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마치 세월호 참사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7시간 동안 행적의 미스터리를 보인 것과 마찬가지다. 문제는 아직 계엄 정국이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본지는 그간 현 정부가 계엄령을 발동의 3단계 시나리오, 즉 ‘북한의 도발 자극–도발을 빌미로한 선제 타격–전시 상황을 이유로 비상계엄 발동’를 제시해 왔는데 현재 야당도 이런 가능성이 현실화 되는 것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4일 윤석열에 대해 “무력을 동원한 비상계엄 조치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 국지전이라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野) 5당이 개최한 ‘윤석열 대통령 사퇴 촉구·탄핵 추진 비상시국대회’에서 “(윤 대통령은) 보통의 사람들이 쓰는 기준에 의해 판단하지 않는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계엄에) 한 번 실패해 다시 시도할 것이지만, 더 큰 위험이 있다”며 “북한을 자극하고, 휴전선을 교란해 무력 충돌로 이끌 위험이 상당히 크다”고 지적했다. 이번 계엄 파동의 주범인 윤석열과 김용현은 현재까지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따라서 2차 계엄의 가능성은 계속 존재하는 셈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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