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권의 2년 6개월을 경험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과연 윤석열은 역사가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것을 두려워할까?’ 당대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대부분 “아니다”하고 외칠 것이다. 윤석열이 역사가 무엇인지 알고 두려워했다면 이렇게 행동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국가 지도자는 역사를 두려워해야 하는데, 윤석열은 그런 것 따위에는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역사보다 현재의 안위와 기득권을 유지하는 게 더 중요해 보인다. 더구나 치마폭에 놀아나는 꼴이라니, 마치 연산군을 보는 것 같다. 역사상 그런 군주는 말로가 험악했다.
조선시대 왕들도 역사를 두려워했다
“친히 활과 화살을 가지고 말을 달려 노루를 쏘다가 말이 거꾸러짐으로 인하여 말에서 떨어졌으나 상하지는 않았다. 좌우를 돌아보며 말하기를, "사관(史官)이 알게 하지 말라."
이 말은 태종실록 7권, 태종 4년 2월 8일 기묘 4번째 기사다. 태종 같은 절대 권력을 가진 자도 역사를 두려워했다는 방증이다. 조선시대 왕들은 자신이 후세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를 유념하며 국정을 운영했다. 누구도 사가(史家)들이 기술한 역사는 훔쳐보거나 함부로 수정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유네스코도 인정한 ‘조선왕조실록’이 탄생한 것이다.
역사왜곡
역사와 정치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중립적일 것 같은 학문에 주관성이 들어간다. 역사왜곡이 발생하는 이유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말이 있지만, 당대엔 진실이던 것이 후세엔 거짓이 되는 경우가 많다. 역사는 모습을 숨길 수 없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곡학아세(曲學阿世)하는 역사가는 정치권력의 입맛에 맞는 논문을 학계에 발표하는 것이 최고의 아부일 것이다. 뉴라이트도 그 일환이다. 그 중심에 낙성대 경제연구소사 있고, 최근 그곳 출신들이 역사 기관을 모조리 장악했다. 심지어 독립기년관장 자리도 뉴라이트 역사관을 지닌 사람이 임명되었다. 바야흐로 친일파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3대 역사 기관장 뉴라이트 세력이 장악
현재 한국에는 국사편찬회에서 역사를 기술한다. 이곳에서 사료를 수집하고 편찬하며 한국사의 보급을 한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교육부 장관 소속으로 한국사를 연구하고 그 체계를 정립할 수 있는 사료를 조사·수집·보존·편찬한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은 역사 3대 기관장에 뉴라이트 인사를 임명해 논란이다. 최소 20여 명에 달하는 걸로 파악되는데, 일본의 식민 지배가 우리의 근대화를 도왔다고 주장하는 인사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주동해 박근혜 정부 때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다가 채택한 곳이 한 곳밖에 없어 포기했다.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뉴라이트 인사들이 현재 3대 역사 기관의 수장을 맡고 있다.
허동현 국사편찬위원장은 '일제 강점기'와 친일파' 모두 북한 공산주의에 의해 왜곡된 분류일 뿐이라고 주장했고, 김낙년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은 일본의 경제적 수탈은 없었다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했다.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도 취임 직후 "일본이 과거에 대해 사죄하지 않는다는 기성세대의 인식을 젊은 세대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해 논란이 됐다. 광복회는 "이번 정권에서 역사 왜곡의 거대한 음모가 속속히 진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권의 굴종적 친일 역사관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설마 국민들과 직접 관련이 있는 독립기념관장까지 뉴라이트로 하겠느냐는 생각을 했는데, 실제 그렇게 했다"라며 윤석열 정권의 굴종적 친일 역사관을 비판했다. 뉴라이트는 '반공'과 '조선일보', '이승만'이 결합한 역사 왜곡 단체다. 아니 매국 친일 단체다. 역사 왜곡 친일 단체인 뉴라이트와 대적해 이기려면 우선 3대 관변단체부터 해체해야 한다. 이들은 선거 때마다 보수를 지지하며 거액의 후원금을 받아썼다. 3대 관변단체가 뉴라이트의 물적 인적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
뉴라이트 세력을 척결하려면 청소년들에게 바른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독립운동 유적지부터 답사하고 문화콘텐츠를 활용한 젊은 세대들에게 다가 갈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 내년이 광복 80년인데 윤석열 정권은 일본 해상 자위대가 사실상 욱일기를 달고 한국에 오게 하였다. 어선들이라도 나가서 막아야 한다. 아마 그렇게 할 것이다.
후세 역사가들은 윤석열 정권을 어떻게 기술할까?
그런데 후세 역사가들은 윤석열 정권을 어떻게 기술할까? 모르긴 모르되 아마 “난폭한 멧돼지와 간교한 여우가 나라를 망쳤다”라고 기술할 것이다. 이때 멧돼지와 여우가 누구를 이르는 말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역사를 무슨 동물에 비유해 기술하느냐고 따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현실도 30년 후 기술될 것이다. 조금만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명예훼손이니 가짜뉴스라고 잡아가는 세상이 아닌가. 방심위는 김건희 뒤에 여사 대신 씨를 붙였다고 제재를 가했다. 그래놓고 윤석열은 걸핏하면 자유를 강조했다.
윤석열 정권에 부역한 검사, 판사, 학자, 장관, 수석, 비서관들은 후세에 모두 환관 또는 간신으로 기술되어 역사적 심판을 받을 것이다. 누군가는 억울하다고 호소하겠지만 역사의 평가는 냉엄하다. 순간의 부와 명예를 위해 인생 정체를 망치지 않기를 경고한다.
멧돼지를 피하는 방법
주지하다시피 멧돼지는 주둥이가 쇠처럼 강해 전속력으로 달리다 어떤 물체를 들이받으면 웬만한 물체는 부서지거나 뼈가 으스러져 죽는다. 멧돼지의 저돌적인 공격을 피하는 방법은 지그재그로 달리는 것이다. 그러면 갑자기 방향 전환을 못하는 멧돼지가 추격을 포기한다고 한다.
흔히 싸워서 이기는 것은 하책이라고 한다. 누가 승리하든 양쪽 피해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가 무법적이고 막무가내일 때는 죽창이라도 들고 나가 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가꾼 감자밭이 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여우는 간교하지만 겁이 많아 죽창 소리만 내도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군주는 모두 민심의 단두대로 사라졌다. 루이 16세가 그랬고 마이 앙투아네트가 그랬으며, 연산군도 그랬다. 광주 학살의 원흉 전두환도 결국 법정에 서야 했다. 한국의 수구들에게 묻는다. 역사가 두렵지 아니한가? 민심의 단두대에 서보고 싶으면 그렇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