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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면 깔수록…거짓말 향연’ 채해병 수사외압, 드러나는 실체들
윤, 개인폰 010-xx38-57xx 번으로 세차례나 이종섭에 전화
선데이저널 2024.05.31 [23:12] 본문듣기
 
◼ ‘윤석열이 10년 전부터 사용하던 그 번호가 부메랑 됐다’
◼ 이종섭 장관의 휴대전화기록서 대통령 개인폰 번호 나와
◼ 국방부 차원에서도 수사상황 안 바뀌자 대노…직접전화
◼ 이종섭, 尹에 전화 받고 1시간 사이에 박 대령 보직해임

이른바 채상병 수사 외압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4차례에 걸쳐 20분이나 통화한 사실이 알려지며 큰 파장이 일고 있다. 그동안 수사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외압이 있을 것이란 일각의 전망을 넘어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정황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사건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란 본인의 말처럼 그동안 줄기차게 특검을 거부해 온 이유가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어떻게 엄청난 사실이 밝혀졌을까. 이는 이 전 장관의 휴대폰에 해답이 있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이 전 장관의 휴대 전화기록을 압수수색해 확인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전 장관의 휴대전화 기록에서 윤 대통령의 개인 번호가 나왔다는 점이다. 보통 대통령은 과거 사용했던 개인폰 대신 보안폰을 사용하고, 개인폰을 사용한다 하더라도 공적인 업무와 관련해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평소 010-XX38-57XX 넘버의 모바일폰을 사용하는 것을 즐겨하고, 외부 인사들과 수시로 이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본인은 이것이 익숙할지 몰라도 정치권에서는 이 모바일폰이 판도라의 상자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동안 각종 비선 논란 역시 이 전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번호가 공수처 수사과정에서 확인되는 만큼 이것이 윤 대통령 탄핵의 트리거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리차드 윤 취재부 기자>

010 -XX38-57XX.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 시절부터 사용하던 모바일폰의 번호다. 윤 대통령은 현재도 이 번호를 사용하는데, 주로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받을 때 사용한다고 한다. 통상 한 나라의 국가원수는 여러 가지 보안 문제 등으로 인해 보안폰을 사용한다. 실제로 분실이나 해킹 등 대통령 휴대폰의 보안 문제와 메시지 노출 위험성 등으로 인해 역대 대통령들은 개인 모바일폰 사용을 자제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평소 그의 성격처럼 거침없이 과거 사용하던 모바일 번호를 그대로 사용해왔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같은 번호를 쓰고 있다. 사회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윤 대통령의 텔레그램으로 조언과 정보, 보고서 등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텔레그램으로 소통하며 능력을 인정받아 발탁된 경우도 있다. 그러다보니 수차례 논란이 있었다.

탄핵의 트리거 될 11자리 넘버

대표적인 것이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가 국민의힘 대표에서 밀려난 후 대통령이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에게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다. 지난 2022년 7월 대통령 취임 후 얼마 안 돼서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을 지켜보던 권성동 당 대표 대행의 모바일폰이 본국 기자들 카메라에 포착됐다. ̒대통령 윤석열̓이라는 발신자는 오전 11시40분께 권 대행에게 “우리 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라면서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고 했다. 이에 권 대행은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라고 답했고, 윤 대통령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대통령이 개인 모바일폰에 있는 텔레그램을 주로 소통창구로 삼다보니 대통령실 직원들 역시 텔레그램이 소통의 주요 창구다. 매일 아침 텔레그램을 열면 연락처가 저장된 대통령실 직원들의 텔레그램 접속 시간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된다. 텔레그램을 사용하는 중이면 ‘온라인’으로, 접속한 지 조금 시간이 지났을 땐 ‘OOO 오전 5:59분까지 접속함’과 같이 표시된다. 보통 새벽 6시가 되면 대부분은 ‘온라인’으로 나와 있다. 이런 텔레그램 선호는 윤석열 대통령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대선 기간에도 텔레그램만을 사용해 참모들과 소통했다. 서버가 해외에 있고 대화 자동삭제 기능이 있어 카톡보다 보안성이 강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대통령직 인수위 기간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 “텔레그램 메신저 목록에 뜬 윤 당선인의 녹색불(온라인)이 사라지기 전에 먼저 잠들어본 적이 없다”고 주변에 밝혔다는 것도 정치권에 널리 알려진 일화다. 얼마 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비선 논란 역시 윤 대통령이 개인 휴대전화를 사용하면서 불거졌다는 것이 정설이다. 4월 달엔 대통령실 공식 라인의 공개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일부 인사들이 익명 인터뷰로 제기한 ‘박영선 국무총리, 양정철 비서실장설’이 문제가 됐다.

부메랑이 된 텔레그램

이제 대통령의 개인 모바일폰 사용 관행은 역설적으로 채상병 수사 외압 사건과 관련해 결정적 정황 증거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수사 외압 과정에서 대통령실 관여 정황은 이른바 ‘브이아이피(VIP) 격노설’이 일었던 지난해 7월 31일부터 드러난다. 이날 오전 11시께부터는 윤 대통령이 참석한 국가안보실 회의가 열렸다. 회의가 끝날 무렵인 같은 날 오전 11시 54분, 이 전 장관은 대통령실이 사용하는 ‘02-800’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아 168초 동안 통화했다. 이 전 장관은 이 통화 직후인 오전 11시 57분 자신의 비서 역할을 하는 박진희 당시 군사보좌관의 전화로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사건 이첩을 보류하고 이날 낮 2시로 예정된 언론 브리핑을 취소하라고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낮 2시 20분께부터 5분 가량 정종범 해병대 부사령관을 국방부 집무실로 불러 지시를 내렸다. 이 자리에는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 등이 참석했다. 당시 정 부사령관이 메모한 기록을 보면 “누구누구 수사 언급하면 안 됨” “사람에 대해서 조치·혐의는 안 됨” “법무관리관이 (박정훈)수사단장에게 전화 검토”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첩 보류 지시 이후 이뤄져야 할 후속 조처를 논의한 흔적으로 보인다. 회의 직후 이 전 장관은 국방부 청사를 떠나 우즈베키스탄 출장을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낮 2시 56분께(공항으로 가던 중으로 추정) 이 전 장관은 임기훈 당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의 전화를 받는다. 통화는 11분 넘게 이어졌다. 해병대 부사령관 등과 했던 회의 내용을 임 전 비서관에게 자세히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프로세스에도 불구하고 해병대수사단이 임성근 당시 해병대 1사단장 등 8명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해 채 상병 순직사건을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하자 이번에는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지난해 8월 2일 해병대수사단이 경북청에 사건 이첩을 완료한 시각은 오전 11시 50분께다. 이첩이 채 끝나기 전인 이날 오전 11시 45분께 조태용 당시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이 전 장관에게 문자를 보낸다. 이후 오전 11시 49분부터 2분 40초가량 둘 간 통화가 이뤄진다. 이날 낮 12시 4분, 김 사령관은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건다. 이 통화에서 김 사령관이 당시 경찰 이첩 등 상황을 보고하고 이 전 장관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 명백한 탄핵 사유

이첩이 완료되고, 그런 상황이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각 이후 윤 대통령이 본격 등장한다. 윤 대통령은 낮 12시 7분 부터 자신이 검사 시절부터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직접 이 전 장관에게 세 차례에 걸쳐 전화를 걸었다. 당시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은 ①낮 12시 7분 44초부터 12시 11분 49초까지 약 4분 동안 ②낮 12시 43분 16초부터 12시 56분 59초까지 약 13분 동안 ③낮 12시 57분 36초부터 12시 58분 28초까지 1분 못 미치게 통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 차례 모두 윤 대통령이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 대통령의 첫 통화 이후 30여분 지난 이날 낮 12시 45분에는 김 사령관이 박정훈 전 해병대수사단장(대령)을 자신의 집무실로 불러 “지금부터 보직 해임이다. 많이 힘들거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슷한 시간대인 낮 12시 40~50분 사이에는 국가수사본부 과장이 사건을 넘겨받은 경북경찰청 수사부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첩했던 기록을 회수하고 싶다’는 군의 의사를 전달했다. 당시 경북경찰청 수사부장에게 전화를 건 국수본 과장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과 통화를 한 뒤 경북청 수사부장에게 전화를 건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또 낮 12시 51분에는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파견 해병대 대령이 김 사령관의 비서실장과 전화 통화를 시도했다. 윤 대통령이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건 낮 12시 7분 이후 1시간 사이에 박 대령의 보직 해임이 이뤄졌으며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과 국가안보실이 동시에 움직였다는 뜻이다. 경찰에 이첩된 사건을 군이 다시 회수하는 이례적인 일도 벌어졌다. 통화 내역에 비춰보면, 이 모든 과정에 윤 대통령이 깊게 관여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는 평소 알려진 윤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과 비추어 봐서도 개연성이 크다. 윤 대통령은 검사 시절 때도 보고가 마음에 안 들거나 수사 상황이 진척이 안 되면 담당 검사를 건너뛰고 수사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고함을 치고 호통을 치는 일들을 자주하곤 했다. 채 상병 순직사건 외압 의혹은 ①이첩 보류 및 혐의 적시 제외 ②경찰 이첩 사건 회수 ③최종 이첩 때 혐의자 축소 세 갈래로 나뉘는데 세 차례 모두 윤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이 직접 개입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야당에서는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통화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결정적 계기가 된 ‘태블릿 PC’에 비유하는 발언, 해당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위법 행위가 확인될 경우 명백한 탄핵 사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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