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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구 선생 손자 '김진', 친일청산 반대하는 토착왜구 배후?

"김원웅 광복회장 부모님이 독립지사가 아니다"...재향군인회 청와대 청원 배후가 김진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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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태라
기사입력 2020/10/17 [08:13]

광복회장에 당선된 후 친일청산에 앞장서고 있는 김원웅 광복회장을 음해하는 청와대 청원을 재향군인회에 올린 배후가 김구 선생의 손자 김진 씨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 재향군인회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 안에 올라가 있는 김원웅 광복회장에 대한 갖가지 음해 게시물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의소리

 

광복회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김구 선생 손자인 김진 씨가 재향군인회에 '김원웅 광복회장 부모는 독립운동 지사가 아니다'라는 청와대 청원 서명을 올리도록 사주 하였다"고 말했다.

 

김구 선생의 가계도를 보면 그 아들 '김신', 또 김신의 아들이  '김진'이다.

 

아울러 김진 씨의 아들까지 전부 공군조정사ㆍ공군참모총장 등을 한 공군 집안이다. 자손들은 대체로 친일세력에 부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항일독립투쟁 역사의 큰 획을 그어 국부로 존경받는 김구선생 후손들이 김구선생과는 다른 디엔에이를 갖고있는 자손인듯 하여 안타깝다.

 

▲  김구선생 가게도    © 서울의소리

 

위키리크스에 따르면 김신은 이승만ㆍ박정희에 김진은 이명박ㆍ박근혜에 부역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원웅 광복회장의 부모님이 독립운동지사가 아니다" 라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가 논란이 거듭되는 가운데 청원을 올린 세력들이 독립운동가 후손으로서 변절한 인사들이 뒤에서 주도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일명 '토착왜구'가 광복회에도 다수 존재하고 이들 청원의 서명 횟수를 1만여명 이상 올리는데 주요한 배경ㆍ역할은 재향군인회가 하고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하다. 

 

현재 청와대 청원은 서명에 머리수와  힘을 보태라는 메시지와 함께 재향군인회 사이트 메인에 올라가 있다.

  

이에 김원웅 광복회장은 16일 '서울의소리'와 인터뷰에서 관련 이야기를  했다.

 

김 광복회장은 자신의 부모님이 독립지사가 아니라는 청와대 청원이  올라온 것에 대해 실소를 금치 못한다며 지난 13일경 보훈처에 요청해서 받은 근거 자료라며 자료를 띄우며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도 세세하게 전했다.

 

아버지에 대한 자료는 총 22페이지에 달한다고 했다. 이 기회에 자신도 몰랐던 새로운 스토리를 알게 됐다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1944년 해방전 주한미국대사관에 있는 무관 버드대령이 임시정부에 요청을 한다. 만주에 가서 공작을 할 유능한 요원을 소개해달라는  것인데, 그 요원이 우리 아버지다. 공작금을 금덩이로 줬다는 기록까지 있다. 8월보고를 한 내용들인데 그러다 아버지가 일본에 잡혀 기차에 태워져 압송 중, 화장실 간다하고 묶인 다리는 풀린 상태에서 두팔은 묶인 채 기차가 막 출발한 즉시 뛰어내렸는데 손이 묶인 상태로 뛰어내려 의식을 잃다가 깨고보니 중국의 한 농가였다고 한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흥미진진한 내용도 소개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이번 청와대 청원과  관련해서 광복회장 선거에 대한 휴유증이 큰것 같다며 심경을 밝혔다.

 

이 내용은 김 회장이 사건이 터진 후 김현정의 뉴스쇼 등이 출연해 언급한 바 있다.

 

김 회장은 당시 이종찬 (전 국회의원, 국정원장 출신) 후보와 함께 출마했다.이 후보는 광복회 회원들의 복지에 관한 공약을 내세웠으며 자신은 '친일청산'을 강하게 공약으로 해서 압도적인 표로 당선이 됐다고 밝혔다.

 

그런데 친일청산을 한다니까 저항도 거세어져 안타깝다고 말하며 "제가 회장을 하려는 이유는 친일청산을 함으로써 광복회가 더는 기득세력화 되는것을 막아야 하기에... "라고 소신을 피력했다.

 

▲ 전월순 지사의 독립군복을 입은 조선의용대 사진 (2열 가운데 녹색 동그라미 표시)     ⓒ 김원웅 회장

 

우리 아버지께서 훈장 받을때가 1963도예요. 제가 대학생이던 당시고 그리고 재조사를 했을 때는 제가 군대 가던 시기죠. 제가 어렸을 때였다. 하여 이번에 자료를 요청하여 보훈처로부터 관련자료 22쪽을 받았다.

 

1944년 해방전 주화미국대사관에 있는 무관 버드대령이 임시정부에 요청하기를 만주에 가서 공작을 할 유능한 요원을 소개해달라한건데 그 사람이 우리 아버지다. 공작금을 금덩이로 줬다는 기록까지 있다.

 

그러다 일본에 잡혀 압송 돼 기차를  타고 화장실 간다하면서 뛰어 내리셨다는 기록이 있다. 손이 묶인 상태에서 뛰어서 의식을 잃고 깨어보니 중국 농가다.

 

전부 외교부차관이 관리하는 기록물이다. 어머니는 1939년(16살에참여)에 운동에 참여하셨다. 중칭에 사진, 두번째 초록 동그라미가 어머니다. 약산 김원봉 선생과 결혼한 분도 같이 찍은 사진이다.

 

임시 정부가 중국정부에 식량을 요청할때 싸인 (어머니, 아버지 가명) 한  자료 등을 보여주었다.

 

▲ 김근수 지사 중국정부의 기록문서보존 자료 (1942년 4월 자료, 국가보훈처 제공. 왼쪽자료에 김근수 지사의 이명인 김석(金石)의 성별(男), 나이     ©광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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