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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조국 대란’의 본질은 검찰개혁과 그에 대한 검찰의 '저항'"

"본질은 조국을 임명하게 하느냐 주저앉히느냐에 있는 것.. 딸 표창장 문제는 핵심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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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20/09/15 [14:16]

"조국 지명 전에는 지명을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저항, 지명 후에는 검찰이 힘을 총동원해서 ‘사건을 만든 것'이 본질"

 

시사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 8월 자신의 임기를 끝내고 은퇴했다. 4월 총선에서 여당 180석 압승을 만든 혁혁한 전과의 선봉장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자신의 정치 인생 마지막 선거를 역사적인 압승으로 유종의 미를 확실히 거뒀다. 그는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관악구을에서 평민당 소속으로 출마해 2016년 20대 국회의원 선거 세종시를 마지막으로 평생을 야당에 몸 바친 7선 거물정치인의 이력을 마감했다.

 

그동안 기자간담회 말고는 언론에 나서지 않던 이 전 대표는 '시사인'과 전격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15일 올라온 시사인의 기사 내용이다.

 

‘버럭 해찬’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맡은 과업을 잘 끝내 홀가분한, 유쾌하고 배려 많은 정치가가 있었다. 그는 줄담배로 유명하다. 이날도 담배를 연이어 다섯 대 피웠다가, 취재진이 창문을 여는 걸 보고는 딱 멈췄다. 무심코 담뱃갑을 잡다 멈칫하고 내려놓는 동작을 인터뷰 내내 반복하면서도 끝내 다음 담배를 물지 않았다. 농담도 자주 했고 ‘자학 개그’도 했다. 초선 의원 시절이던 1991년 탈당했다 돌아온 일을 회고하다 “한 짓 봐서는 날아갔어야 마땅한데”라고 말해 기자를 웃겼다.

 

딱 하나만 물어보겠다고 해서 성사된 인터뷰였다. 20년 집권론. 이해찬은 당 대표가 된 2018년 8월 전당대회 때도 20년 집권론을 내걸었고, 올해 8월28일 퇴임 기자간담회에서도 20년 집권을 당부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총리, 문재인 정부에서 집권당 대표를 지냈다. 각 대통령과 관계가 그보다 긴밀했던 사람은 있었을지라도, 세 정부 모두에서 이 정도로 핵심이었던 사람은 그밖에 없다. 그에 동의하든 반대하든, 지금 집권세력의 세계관과 사고구조를 그보다 잘 보여줄 적임자는 없다. ‘20년 집권론’이라는 슬로건은 그 세계관이 응축된 결과물이다.

 

왜 20년 집권인가. 뭘 하려고 20년 집권이 필요한가. 민주당은 무엇을 해야 20년 집권을 해낼 수 있나. 당 대표 2년 동안 어떤 준비를 했나. 2022년 대선이 요구할 리더십은 무엇인가. 이 모든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화두다. 그래서 딱 하나를 물어보는 인터뷰가 140분 걸렸다.

 

Q: 모든 사회 영역에서 민주화가 여전히 핵심 과제라는 뜻입니까?

 

A: 쉽게 말해서 검찰을 보세요. 민주화된 검찰이 아니잖아요. 검찰총장이 신임 검사 신고식에서 뭐라고 말했냐면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쓰고 있는 독재와 전체주의를 배격하는 진짜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해요. 자세히 보세요. “허울을 쓰고 있는” 현재형이야. “쓴”도 아니고 “쓸”도 아니고, 미래권력도 과거권력도 아닌 현재권력을 말하는 겁니다. 그게 헌법정신이라고 했어요. 검찰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이 이런 데서 나오는 겁니다.

 

Q: ‘조국 대란’의 본질이 뭐라고 보십니까?

 

A: 조국 대란은 검찰개혁과 그에 대한 검찰의 저항 문제이기 때문에 피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자세히 보면 조국 장관 후보자 지명 전과 후에 검찰의 기조가 달라집니다. 지명 전에는 지명을 못하게 하는 방식으로 검찰이 저항을 합니다. 지명 후에는 검찰이 힘을 총동원해서 ‘사건을 만드는’ 쪽으로 갑니다. 그게 본질입니다.

SBS

 

Q: 지명 직전에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통령 독대를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습니다.

 

A: 사실입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세 번을 요청했어요. 내가 다 얘기는 안 하지만, 있을 수 없는 사안입니다.

 

Q: 당의 판단은 뭐였습니까?

 

A: 나는 지명해야 한다고 봤어요. 이인영 당시 원내대표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이 지명이 검찰개혁 의지의 바로미터라고 봤습니다.

 

Q: 여론이 나빠진 계기는 딸의 입시 관련 문제였습니다.

 

A: 표창장 문제는 비례 균형이 안 맞아요. 그렇게까지 검찰을 투입해서 수사한다는 것 자체가 검찰의 의도를 보여줍니다. 의학 논문 저자 문제는, 이공계나 의학 공부 하는 사람들은 전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요. 결국 본질은 조국이라는 사람을 임명하게 하느냐 주저앉히느냐에 있는 거지 딸 문제는 핵심이 아니에요.

 

Q: 지지자들 중에는 조국 전 장관의 명예회복을 위해 부산시장 후보로 내자는 의견도 있습니다.

 

A: 그건 아니죠. 둘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본인도 생각이 없고.

 

Q: 임기 중 가장 큰 일은 총선이었습니다. 어떻게 준비했습니까?

 

A: 총선의 핵심도 의사결정구조를 잘 만드는 겁니다. 결국 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문제죠. 그거 하려고 당 대표를 했다고 봐도 됩니다. 공천규칙을 1년 전에 결정했습니다. 그게 정당에서 제일 중요한 의사결정구조니까. 핵심은 당원과 일반 국민 여론이 대략 5대 5로 반영되도록 하는 겁니다. 규칙으로 딱 박아놓으니까 출마할 사람들이 그에 맞춰서 준비를 하죠. 

 

전 당원 투표에 부쳐서 의결해버렸어요. 끝까지 규칙을 흔들어보려는 사람이 있었지만 제가 막았어요. 그러니 공천 잡음이 없고, 현역 의원 중에 공천 불복이 없었어요. 그리고 전 당원 투표가 가능하도록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그걸로 이번 전당대회까지 치렀지요. 대의원에게 돈 뿌리고 자기 친인척 데려다 대의원으로 넣고 하는 일이 덕분에 사라졌어요.

 

Q: 옛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의사결정구조를 계속 강조한 이유는 뭔가요?

 

A: 개인 리더십에 의존하면 어쩔 수 없이 연속성이 떨어집니다. 20년 집권 못하죠. 우리가 김대중 대통령 때까지는 개인 리더십이었습니다. 당내 경선을 처음 제대로 해본 게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후보가 된 2002년 경선입니다. 그렇지만 현대화가 덜 된 부분이 있어서 종이 당원, 가짜 당원 이런 문제가 계속 있었지요. 이제는 플랫폼을 만들어서 당원들이 의사결정을 하게 만드는 데까지 온 것입니다. 유럽의 해적당처럼 작은 정당은 있어도, 한 나라의 집권당이 전면적으로 플랫폼 정당으로 전환한 경우는 처음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제 이 플랫폼에서 당원 명부도 제대로 관리되고, 정책 토론도 하도록 해서 실질적인 정당 활동이 가능하도록 더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차기 지도부가 해주리라 기대합니다.

 

Q: 총선 전략은 뭐였습니까?

 

A: 선거 쟁점이 5개라고 봤어요. 코로나19, ‘미투’, 부동산, 경기 부진, 그리고 미세먼지. 봄이니까 미세먼지는 석탄발전소 가동을 줄일 각오까지 하고 있었는데 중국에서 코로나19로 공장이 멈추면서 미세먼지 문제가 사라졌습니다. 부동산과 경기 문제는 최대한 쟁점을 안 만드는 쪽으로 관리하고, ‘미투’는 공천 단계에서 선제적으로 다 싹을 날렸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로나19. 이건 약인지 독인지 우리 하기에 달린 문제였으니까 방역에 최선을 다한 것이지요.

 

Q: 중국발 입국을 봉쇄해야 한다는 주장이 당시에 많았는데요?

 

A: 우리는 봉쇄로 갈 수 없는 나라입니다. 수출 주도 경제라 테이블에 올릴 수 없는 카드예요.

 

Q: 180석은 예상했습니까?

 

A: 2월까지 1당은 유지할 수 있겠다고 봤습니다. 그때는 우호적인 정당과 연립해서 과반수를 만들 목표였지요. 3월쯤 되니까 단독으로 과반수를 할 수 있겠다고 봤습니다. 막판에는 160석이 가능해 보였고, 우호적인 야당과 연립해서 170석까지 간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비례연합정당을 만들면 더 나오고요.

 

Q: 비례위성정당에 대한 지도부 판단은?

 

A: 명분상으론 위성정당 만든다는 게 말이 안 되고, 그건 소수당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 대형마트 들어서라고 만든 제도가 아니니까. 그런데 저쪽 대형마트가 먼저 들어서서 소수당도 별 보호가 안 되는 상황이 되니까 전략적 판단을 안 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만들기로 하되, 우리는 7석 이상은 안 가져온다고. 전 당원 투표에서 통과가 됐지요. 그 문제하고, 재난지원금을 하위 50%에 주느냐, 70%에 주느냐, 다 주느냐의 문제. 이 둘이 총선 막판에 큰 결정이었습니다.

 

Q: 2차 재난지원금 논의 과정에서, 1차 재난지원금은 “선거를 고려한 것”이라는 여당 의원 발언도 나와서 논란이 됐습니다.

 

A: 용어가 잘못됐어요. 둘은 개념과 목적이 다릅니다. 그때 지급한 재난지원금은 경기 활성화를 위한 거였습니다. 코로나19는 진정세였고 소비를 진작시킬 필요가 있었으니까요. 경기부양 목적이니까 긴급성이 중요했고 분류할 시간이 없으니 100% 지급이 맞다고 당은 본 겁니다. 

 

이번 건 목적이 소비 진작이 아니라 재난구조입니다. 방역전이 벌써 8개월째라 한계에 다다른 영세 소상공인이 많이 생겼어요. 이번엔 이분들 구조가 목적입니다. 그래서 1차, 2차 이런 식으로 부르면 안 돼요. 그 용어 구분을 안 해주는 바람에 잘못된 논란이 일었다고 봅니다. 몇 번 이런 이야기를 전달했는데 전당대회 과정이라 그랬는지 제대로 전해지질 않았어요.

 

Q: 2차 유행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을 두고도 논란이 있었습니다.

 

A: 3단계 논의가 있었습니다. 3단계는 준전시나 마찬가지예요. 다 통제하고, 사실상 셧다운에 가깝습니다. 실업, 폐업, 일감 증발… 긴급재정명령까지 꺼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필요하다면 가야겠지만 우리가 판단하기에는 너무 이르니 차기 지도부가 판단하는 게 맞겠다고 봤습니다. 8·15 집회 참여한 사람들의 2주 잠복기까지 고려하면 8월 말까지 봐야 판단할 수 있다고 보고 보류를 시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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