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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미애 왜 '추다르크'인가..."검은것을 희다고 해본 적이 없다"

거대언론과 국힘당의 '왜곡'에 맞선 추다르크 '비하인드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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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숙
기사입력 2020/09/14 [09:10]

추미애 "흔들림 없이 책임을 다하는 것이 국민의 뜻.. 기필코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

 

최강욱, "2월부터 7월까지 먼저 공개한 '조선'..적반하장 정도가 아니라 제 눈 찌르기"

 

딴지일보 게시판. 조선일보 7월 3일 기사에 현동환 씨의 실명으로 기사가 분명히 나와있다.

 

'검찰개혁'은 두말할 것도 없고 '언론개혁'이 시급하다. 13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페북 입장문을 언론들은 아들 서 모 씨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처럼 왜곡 보도의 진수를 보여줬다. 추 장관은 코로나 위기로 국민들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어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하다는 국민에 대한 배려 인사를 서두에 던지고 검찰개혁의 의지를 밝혔을 뿐이다.

 

그러나 언론은 허위 폭로한 당직사병 현동환 씨를 공익제보자로 포장해 실명을 공개했다고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을 겨냥해 국민의힘과 합세해 대대적인 공세를 퍼붓고 있다. 하지만 실명공개는 2월 12일 'TV조선'이 처음 실명과 얼굴을 공개했고 위의 기사를 보면 '조선일보'도 지난 7월 3일 실명을 공개했다.  

 

황 의원은 자신의 SNS 댓글을 통해 지난 2월 TV조선이 해당 당직사병을 인터뷰하며 얼굴과 실명을 공개한 방송 장면을 캡처해서 올리며, "실명 공개는 허위사실로 추 장관을 공격할 때 TV조선이 했다"라고 밝혔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실명과 얼굴을 2월 초부터 자기들(TV조선과 조선일보)이 먼저 공개해놓고 7월까지 반복한 건 잊었는지, 이젠 황희 의원을 물고 늘어지네요"라며 "적반하장 정도가 아니라 제 눈 찌르기 같은데.."라고 조선 매체의 이중성을 질책했다.

 

하지만 어느 언론도 최초 공개한 TV조선과 조선일보의 실명에 대한 지적이 없다.  비난의 대상은  조선 방 씨 일가가 되어야 한다. 조선일보는 제보자의 실명을 공개했다고 ‘공개재판을 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런 이중 잣대에 누군가는 '다중이 전성시대'라고 일침했다. 


현동환 씨는 추 장관 아들 휴가를 구두 승인한 부대 장교 개인 얼굴은 모를 수 있어도 별 세개 그려진 자신의 부대마크도 못알아보고 육본마크라면서 마치 육본에서 지시한 것처럼 허위진술을 했다. 검찰 대질심문에서 허위로 드러나자 관심 꺼달라며 스스로 잠적했다가 언론이 추 장관 공격의 빌미로 실명거론을 부추기면서 다시 조선일보와 인터뷰하고 계속 말을 바꾸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권 창출은 못해도 정권 탄핵은 할 수 있다'는 조선일보라는 극우보수 매체와 국민의힘이 카투사 출신의 일베성향 청년 현동환 씨의 영웅심리를 교묘히 부추긴 술수에 그가 정치의 '미끼'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김두일 칼럼니스트는 13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대 특혜의혹을 처음 보도한 제보자 현동환 실명 공개와 관련,

 

추 장관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이제 진실의 시간이다. 거짓과 왜곡은 한순간 진실을 가릴 수 있겠지만, 영원히 가릴 수는 없다"라며 "검은색은 검은색이고, 흰색은 흰색이다. 저는 검은 것을 희다고 말해 본 적이 없다"라고 했다. 상황 판단에 잘못이 있었으면 사죄의 삼보일배를 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그 어떤 역경 앞에서도 원칙을 지켜왔다"라며 "이 원칙은 지금도, 앞으로도 목숨처럼 지켜갈 것이다. 그건 제가 정치를 하는 이유이자 목적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저도 스스로를 되돌아보겠다. 저의 태도를 더욱 겸허히 살피고 더 깊이 헤아리겠다."라고 성찰했다.

 

이어 "검찰개혁과제에 흔들림 없이 책임을 다하는 것이 국민의 뜻이고 저의 운명적인 책무라 생각한다"라며 "기필코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지금 상황은 전 언론이 한통속이 되어 조국 전 법무무 장관과 유사한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이에 검찰개혁을 다짐하는 추 장관이 언론의 계략에 떠밀려 사퇴하는 불상사가 없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그래서 추 장관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고 그가 왜 '추다르크'로 불렸고 왜 검찰개혁의 적임자인지 살펴볼 시점이다. 심지어 언론과 국힘은 추 장관이 다리가 불편한 남편과 아들을 앞세워 감성팔이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 속사정을 들여다보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남편 서성환 변호사의 젊은 시절. 인터넷

 

추미애는 국회의원 5선, 정치인생 22년 동안 단 한 번도 당적을 바꾼 적이 없다. 전 민주당 공동대표 안철수·김한길이 새정치한다고 민주당을 탈당할 때 추미애가 민주당 최고위원회에서 한 말은 민주당을 대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저는 일생동안 입당원서를 단 한 번 써봤습니다.  1995년 여름에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입당원서를 썼는데 무척 손이 떨렸습니다. ‘내가 지금 정치호적을 작성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마음을 다 실은 정치호적을 작성한 이후 당에 저의 모든 젊음을 바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호적 그렇게 함부로 바꾸는 것 아닙니다!"

 

1985년 봄 당시에는 서슬 퍼런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은 공안정국을 만들어 웬만한 사상서적도 불온서적이라는 구실을 달고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당시 춘천지방법원 판사로 일하던 추미애는 춘천서 제일 큰 서점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받았다. 추미애는 "책을 유언비어라고 볼 근거가 없다"라며 부당함을 역설하고 영장을 기각했다. 하지만 그날 전국 법원에 접수된 유사한 영장은 추미애 판사의 춘천을 제외하고 어김없이 모두 발부됐다.

 

국회의원 재선을 앞둔 어느 날 선거운동을 하다 사무실에 오니 비서가 삼성에서 골프가방을 놓고 갔다고 했다. 얼마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현금이 가득 차 있었다. 추미애는 골프백을 바로 가져가게 하라고 비서에게 지시했다. 2007년 늦가을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삼성이 정치인들에게 보낸 돈다발을 의원님만 거절했다는데 사실이세요?"

▲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남편 서성환 변호사의 연애시절 ,인터넷

 

대구 경북여고를 졸업하고 한양법대로 진학한 추미애는 지금도 그렇지만 지역색이 극심하던 당시 전라북도 정읍 출신 남편 서성환을 대학 동기로 만났다. 거기다가 서성환은 다리에 장애가 있었다. 집안의 반대가 당연히 거셌다. 하지만 강한 사랑의 집념 앞에 특히 완고하던 아버지도 두 사람의 진심을 인정하고 결혼을 허락했다. 

 

남편 서성환은 고등학교 시절 큰 교통사고로 다리를 심하게 다치고 패혈증에 걸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그때 '덤으로 얻은 목숨'을 평생 베풀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당시 법을 몰라 고통받는 소시민들을 위한 변호사가 되고자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는 사법고시에 합격한 후 지금까지 고향인 정읍에서 약자를 위한 무료변론을 하고 있다.

 

1997년 11월 말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20여일 앞두고 추미애는 대구로 향했다. 대구 연청조직 동지들과 유세단을 만들려고 했다. "절대 안됩니더. 우리당 간판 들고 유세하고 다니면 돌 맞아 죽심니더!" 

 

하지만 추미애는 대구에서 날아오는 짱돌을 피해가며 '김대중을 찍어달라'고 호소했다. 반대하는 동지들을 설득하여 '잔다르크 유세단을 만들었다. 지역감정의 악령으로부터 대구를 구하자는 뜻이었다. 12월 18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는 국민회의 김대중 후보의 4번에 걸친 대권 도전이 마침내 이뤄진 감격스러운 날이었다. 역사적인 정권교체 후 추미애는 추다르크(추미애+잔다르크)로 불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 탄핵과 삼보일배

 

2002년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겨울 초입에 들어서도 여전히 낮은 지지율로 고전했다. 당내 원로들은 이른바 후보단일화협의회를 결성해 사실상 노 후보를 교체하려고 모의했다. 하지만 최고위원 추미애는 "민주적 절차로 뽑은 후보를 버리자는 것은 우리 스스로 민주당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라며 끝까지 노무현 후보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었다.

 

막상 노무현 후보 선대위가 발족했지만, 민주당은 노 후보에게 한 푼도 지원하지 않았다. 심지어 노 후보를 반대해 15명의 의원이 탈당했다. 난감해진 노 후보는 추미애에게 따로 보자고 해 "돈이 없어도 좋은 방법이 있어요. 돼지저금통을 들고 국민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됩니다. 도와주시겠어요?"라고 부탁했다.

 

추미애는 기꺼이 국민참여운동본부 공동본부장이 되어 돼지저금통을 들고 거리로 나가 57억 원의 국민성금을 모았다.

 

처음에 추미애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시국에 ‘3불가론’을 논거로 제시하며 탄핵에 반대했다. 그러나 민주당에서 당론으로 결정했기 때문에 원칙주의자였던 추미애는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다. 추미애는 곧 당 수뇌부들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는 책임을 통감하고 무릎이 다 나갈 정도로 '삼보일배'를 하면서 국민과 노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사죄했다. 전날 페이스북 글대로 상황 판단에 잘못이 있음을 인지하고 사죄의 삼보일배를 시행했다.

 

"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한 탄핵은 내 정치인생 중 가장 큰 과오다! 대통령님께 그 실수를 갚을 방법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도 추미애의 진심을 알고 있었고 당시의 어쩔 수 없었던 상황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추미애가 2004년 낙선한 후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노 대통령은 추미애에게 환경부 장관으로 입각하라고 제안했을 정도다.

 

민주당의 그 누구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었고, 오직 추미애만 책임지고 사죄했다. 추미애는 광주 금남로에서 출발하여 무릎에 피가 나고 깨지면서도 15km를 삼보일배하며 갔다.

 

그 결과 지금도 추미애는 다리를 붙이고 서 있거나 앉지 못할 정도로 무릎 손상이 극심했다. 조국 전 장관 사퇴 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인사청문회 당시 국민에게 다리를 벌리고 앉아 있는 자신의 모습이 송구하다고 스스로 두 다리를 묶고 장시간 동안 앉아 청문회에 임하는 결기를 보였다. 

 

민주당 많은 국회의원들이 “문재인으로는 안된다!”고 문재인 흔들기할 때도 추미애는 “문재인으로 된다!”라고 외쳤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광주 금남로에서 5.18 묘역을 향해 참회의 삼보일배를 한 추미애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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