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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을 '추억하는 사람들'과 조문 거부하는 정의당

비극으로 멈춘 3180일, 8년 8개월 최장수 서울시장.. 집 없는 박원순의 '인생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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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숙
기사입력 2020/07/11 [11:12]

최민희 "정의당, 왜 박원순 조문 정쟁화하나.. 시비 따질 때, 슬퍼할 때 있어"

지성용 "인정사정 없는 정의당의 ‘정의’란?.. 오합지졸이 되어버린 정의당"

 

박원순 서울시장의 유서

 

'순재산 마이너스 6억9천만원' 박원순.. 서울시장 재직시 빚 더 늘어

전우용 " 박원순 재산인 집 두 채 팔아 시민단체에 기부한 이후, 집을 가진 적이 없다"

 

최민희 전 의원은 11일 정의당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조문하지 않겠다'는 발언이 나오는 데 대해 "정의당은 왜 조문을 정쟁화하나"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박 시장 조문은 자유"라며 이렇게 말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전날 박 시장을 성추행으로 고소한 전직 서울시청 직원에 대한 연대를 표하고 2차 가해를 우려하며 조문 거부 입장을 밝혔다. 심상정 대표는 빈소 조문 후 "가장 고통스러울 수 있는 분은 피해자"라고 언급했고, 같은 당 장혜영 의원도 "차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애도할 수 없다"라며 서울특별시장(葬) 결정을 비판했다.

 

정의당의 이런 태도를 두고 최민희 전 의원은 "시비를 따질 때가 있고, 측은지심으로 슬퍼할 때가 있는 법"이라며 "뭐 그리 급한가"라고 지적했다. 

 

이렇게 정의당 소속 여성 의원들이 젠더적 편향성에 갇혀 도의적 분별력이 크게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정의당 지지철회 조짐이 보인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지성용 신부도 이날 정의당을 겨냥해 "인정사정없는 정의당의 정의"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저는 정의당을 음양으로 그 동안 지지해왔다. 우리나라 진보정당의 불행한 역사 안에서 정의당이 정말 밀도 있는 성숙한 진보정당, 수권정당이 되기를 바랐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동안 정의당의 역사 안에서 무수히 희생하고 검증된 수많은 지역정치자원들을 외면하고 정치경험도,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의심스러운 의원들이 비례대표가 된 과정이 의문스럽다.”라고 지적했다.

 

지 신부는 “’정의(Justice)’를 ‘정의(Definition)’ 하려다 사람을 잡는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있고, 대한민국 법에도 원칙이 있다”라며 “우리는 지금 피해자, 가해자의 이야기를 잘 알지 못하고, 아직 더 확인도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법적 절차라는 것도 있어서 고소 고발이 이루어지면 경찰조사, 검찰조사, 재판도 1심 2심 대법원까지 다녀온다.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하려는 것”이라며 “그런데 이러한 과정 하나를 밟지 않고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가는 듯한 인상을 준다면 그것 자체가 유가족들을 향한 가해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 “그런데 이미 언론과 기레기들이 써 놓은 몇 줄 기사와 선동에 ‘정의’라는 무거운 칼을 들고 휘두르려는 당신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많이 무겁다”라며 "자한당에서 비례를 했던 의원에게 또 다시 비례를 주는 정의당을 바라보며, 얼마나 많은 당원들과 국민들이 실망했는지 알기는 아는지 마음이 무겁다. 오합지졸이 되어버린 정의당이 노회찬 정신을 기억하며 성찰하기 바란다”라고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내비쳤다.

 

장용진 아주경제 기자는 전날 SNS로 "고소인에 대한 비방이나 공격은 잘못이다. 지금은 고소장의 존재 외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고인에 대한 비방이나 의심도 잘못된 것이다. 함부러 말하지 말라"라고 했다.

 

그러면서 "고소인에 대한 근거없는 비방이나 공격을 원하지 않는다면 고인에 대해서도 혓바닥 함부러 놀리지 마라. 억지로 조문하라고 한적 없다. 하기 싫으면 하지마라. 대신 입은 닥쳐라. 특히 유호정 의원... 당신부터!"라고 매섭게 후려쳤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 페이스북

 

다음은 SNS에 올라온 한 네티즌의 댓글이다.

 

"반드시 고소인의 고소가 진실여부인지 조사해서 밝혀야 한다고 봅니다 3년동안 당했다면 증거가 산더미겠죠? 그럼 그 증거들 다 내놓고 밝히세요 한사람이 이일로 사망을 했는데 2차 피해 어쩌고 신변보고 어쩌고 숨어버리는 고소인 당신 정말 피해자가 맞기는 한건지? 미투는 원래 얼굴까고 신고 하는겁니다 머가 두려워서 숨어있는지 참으로 화가 나네요" 

 

미투 의혹으로 박 시장의 그동안의 살아온 이력을 부정하는데 대해 방송인 김어준 씨는 "'피해자의 증언'이 아니라 '고소인의 주장'일 뿐"이라며 "살아온 궤적과 이력만으로도 그를 추모하고 그리워할 이유는 차고 넘치며 이외의 모든 선동과 주장, 궤변을 단호히 거부하고 배격한다"라고 했다.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는 전날 페이스북에 연이어 두편의 글을 올려 어려운 시절 '역사문제연구소' 설립 당시 그와의 인연과 추억을 돌이키며 통한의 심정을 토해냈다. 그는 "저녁 내내 마음이 떨리고 손이 떨려 아무것도 못 했다"라며 "제가 박원순 시장을 처음 만난 게 1989년이니, 벌써 30년이 넘었다"라고 회고했다.

 

전 교수는 "역사문제연구소의 건물과 도서를 기증한 사람은 역사학자도 아닌 박원순 변호사였다"라면서 "자기 집을 팔아 연구소 건물을 사 줬고, 자기가 모은 책들을 기증했다. 그랬으면서도 연구소의 대표나 이사장 같은 자리는 맡지 않았다.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에 다니다가 제적된 뒤 단국대 사학과에 다시 입학했지만 역사학계와는 별 관계가 없었던 사람"이라고 박 시장의 살아온 궤적을 차근차근 짚었다.

 

그러면서 "그런 사람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의 역사의식을 높여야 한다는 말에 동조하여 선뜻 전 재산을 내놓았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박변호사도 대단하지만 부인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부인과 동지적 관계가 아니었다면 그럴 수 없었을 거"라고 했다.

 

이어 "처음 봤을 때는 워낙 품이 넓고 스케일이 커서 나이가 꽤 많은 줄 알았다"라며 "그 때 나이 고작 30대 중반 이었다"라며 "그 나이에 전 재산을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그말고 과연 누가 있을까요? 아마 앞으로도 그같은 사람이 다시 나오기는 어려울 거"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역사문제연구소가 자리를 잡은 뒤 그는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를 잇달아 만들었고, ‘시민운동의 대부’라는 별명을 얻었다"라며 "제가 아는 박원순은, 시민운동을 할 때나 시장 일을 할 때나 언제나 행동거지가 정결한 사람이었다. 그는 술도 잘 마시지 않았고, 유머감각도 꽝이었다. 허튼 행동이나 허튼소리를 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라고 기억했다.

 

또 "그래서 지금의 이 상황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라며 "그저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 명복을 빌고 싶지 않다. 아직 할 일이 많은데, 그가 꾼 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는데, 그의 죽음을 어떻게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라고 되물으며 '그는 우리 곁에 계속 살아 있어야 한다. 육신이 안 보이더라도."라며 박 시장의 사망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심정을 토해냈다.

 

또 다른 글에서 전 교수는 "그는 1995년 전 재산인 집 두 채를 팔아 시민단체에 기부한 이후, 집을 가진 적이 없다"라며 "그는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세상에 알렸고, ‘성희롱’이라는 개념을 정착시켰으며,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문제를 세계에 알리는 데에도 큰 공헌을 했다. 그가 주도하여 만든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은 우리 사회 시민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그렇게 바쁜 중에도 <국가보안법연구>를 비롯해 수십 권의 책을 썼다"라고 박 시장의 궤적을 추적했다.

 

이어 "변호사로, 저자로, 강연자로, 때로는 사외이사로, 그리고 시장으로 활동하면서 돈을 벌었으나 가족을 챙기지 않고 시민단체들에 기부했다."라며 "65세인 그의 재산이라고는 수억 원에 달하는 부채뿐이다. 곧 시장공관을 떠나야 하는 그의 유족들에게는 거처할 곳도 없다"라고 했다.

 

전 교수는 "박원순이 살아온 일생을 흉내조차 못낼 자들이 그의 일생 전체를 능멸하는 걸 보자니, 어떤 나라 속담이 떠오른다"라며 "상처 입은 사자가 죽으면 들쥐떼가 달려들어 그 상처를 물어뜯는다.”라고 작금의 상태를 비유하면서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김두일 차이나랩 대표도 페이스북에서 그를 회고하고 추모했다. 그는 "지금 내가 기억하고 싶은 박원순의 모습은 단지 두 가지 뿐이다. 시민사회의 활동가로서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한 일… 서울시장으로 광장을 시민들에게 내어준 일…"이라고 적었다.

 

이어 "전자는 대한민국 시민사회활동의 거의 모든 분야에 그의 자취가 남아있고 후자는 2016년의 촛불혁명은 그가 지켜준 광장에서 완성될 수 있었다. 세월호 가족들도 그의 배려가 없었다면 아마 버티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변호사였던 그가 죽음으로 영원한 침묵을 선택해야 했던 이유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추측도 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그저 그를 위한 추모를 하고 싶을 뿐"이라며 "그가 남긴 유서의 '오직 고통밖에 주지못한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글귀는 유독 가슴이 저려왔고 '모두 안녕'이라는 마지막 말은 쓸쓸함을 남긴다"라고 했다.

 

양희삼 카타콤 교회 목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는 언제나 좋은 사람이 곁에 있을 때는 그 가치를 잊어 버리고 살아간다. 그가 떠나고 나면 그를 추앙하려고 한다"라며 "저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이런 서울시장이었다면 그는 정말 훌륭한 분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겨준 유산이 7억에 가까운 빚 밖에 없다는 삶 앞에 인간이라는 우리는 너무 심한거 아닙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실제로 3180일, 8년 8개월여간의 3선 임기를 비극으로 마감한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은 재직 내내 순재산이 마이너스였고, 임기 동안 빚이 오히려 늘었다. 시장으로 재직하면서 그의 빚은 늘고 순재산은 줄었다. 2009년 말 기준으로 순재산 -6억9천91만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신고돼 올해 3월 공개된 내역에 따르면 박 시장의 재산 중에 아파트나 상가나 주택 등은 없었다. 박 시장 본인 명의로 개인 간 채무 2천381만원, 금융기관 채무 4억2천100만원을 지고 있었고, 부인 강난희 여사 명의로 개인 간 채무 3억9천30만원, 금융기관채무 803만원이 있었다.

 

박 시장과 가족(부인, 장녀, 장남)의 예금은 4천755만원 있었다. 부동산으로는 박 시장 본인 명의로 경남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 소재 땅(논)이 있었으며, 평가액은 7천596만원이었다. 박 시장 본인 명의의 자동차는 없었다. 작년에 부인 강난희 여사가 2005년식 체어맨 승용차를 폐차하고 2014년식 제네시스 중고차를 2천300만원에 샀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12기 동기다.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박 시장 사망에 대해 "너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 사진/박원순 서울시장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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