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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가정사' 딛고 일어선 동작을 이수진.. '생활보호대상자에서 판사'까지

"누구보다 아픈 어린 시절.. 가슴에 품어 온 그 따뜻한 손길을 이제 국민께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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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숙
기사입력 2020/03/23 [11:43]

 

4월 총선에서 동작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선 이수진 전 수원지방 부장판사가 요즘 핫이슈다. 생활보호대상자였던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난 그의 입지전적 과거사는 물론 그의 판사 재임 시의 이력 등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뜨거운 화제다. 

 

과거 '조두순 사건'에서 나영이를 검찰이 조사하는 과정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은 2008년 12월에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있는 한 교회 안의 화장실에서 조두순이 8세 여아를 강간 폭행한 사건으로 유아 성범죄의 형량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이다.

 

상처가 심해 배변주머니를 달고 다녀야 하는 어린 나영이는 검찰에 출석하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검찰은 무리하게 나영이의 출석을 요구했고 그 과정에서 검찰은 카메라 조작 미숙으로 나영이에게 반복해서 진술하게 하는 고통을 겪게 했다.

 

참다못한 나영이와 부모는 검찰을 고소했고 이때 담당 판사가 이수진 판사였다. 그는 검찰 대신 나영이의 손을 들어 줬고 국가는 1천3백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상황에서 민간인이 검찰을 상대로 승소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로 이 사건은 약자를 도우려고 판사가 되었다는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는 사건 중에 하나였다.

 

지난 1월 27일 민주당은 ‘양승태 사법부 사법농단’ 관련 의혹을 폭로한 이수진 전 수원지법 부장판사를 영입했다. 4월 총선을 앞둔 13번째 영입 인사다. 양승태 사법농단 관련 이탄희 전 판사를 영입한 데 이어 두 번째 법관 출신 영입 인사다.

 

이 전 부장판사는 전국적 지명도가 높은 나경원 미래통합당 의원(4선)이 있는 서울 동작을에 전략공천이 됐고 두 사람은 판사 출신 여성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그전까지 이 전 부장판사는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 지금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이 전 판사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영입 기자회견에서 “정의로운 판사, 약자와 함께하는 판사가 되려고 노력하며 살았는데 법관으로 양심을 지키고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물의 야기 판사’라는 이름이 붙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1심 재판을 약화시키고 법원의 구조를 공룡처럼 만들려는 상고법원을 반대했다는 이유, 법원 내 불의한 압력을 물리쳤다는 이유 때문”이라면서 “법관으로서 제 자존감은 짓밟히고 판사로서 자긍심은 무너져 내렸다”고 말했다.

 

이 전 판사는 “생활보호대상자로 중학교 사환으로 일하는 언니 월급 8만5000원으로 시골 단칸방에서 생활하던 4남매 둘째 딸이었다”면서 “치료비가 없어 전북 도민이 모아 준 성금으로 어머니 다리 수술을 받아야 했다”라고 과거를 상기했다.

 

그러면서 “일찍부터 남의 집을 전전해 더부살이해가며 학교에 다녔다. 생활비를 버느라 대학 진학도 늦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어려웠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며 감정이 북받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양승태 사법부 사법농단' 관련 의혹을 폭로했던 이수진 전 부장판사가 27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인재영입 발표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전 판사는 “누구보다 아픈 어린 시절을 겪어 약자의 아픔을 잘 안다”면서 “손을 잡아 준 친구들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지 못할 것이다. 가슴에 품어 온 그 따뜻한 손길을 이제 국민께 내민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골에서도 집이 없어 단칸방에서 5명의 가족이 살았다고 한다. 11살 때 부친을 잃고 어머니는 양말 보따리 행상으로 돈을 벌며 생계를 이어 나갔다. 그런 어머니가 행상 도중 빙판에 넘어져 다리를 다쳐 그나마 생계를 유지하던 일을 못 하게 된다.

 

모친은 고관절이 괴사하여 밤마다 울 정도로 고통이 컸다고 한다. 모친의 그런 고통을 보다 못한 초등생인 이 전 판사는 일기장에 어머니의 이야기를 썼고 그 일기를 본 학교 선생님들이 '전북일보'에 기사를 내달라고 요구하여, 성금이 모아지면서 모친의 수술을 받았다. 

 

어린시절 극심한 생활고를 겪던 이수진 전 판사의 가정환경을 보고 선생님들이 제보해 당시 기사를 올렸던 전북일보


이 전 판사는 모친의 병 간호와 집안일 때문에 초등학교 6년 동안은 거의 학교를 못 나갔다고 한다. 생활보호대상자로 정부미를 타서 간신히 생계를 꾸렸고 학교 교사들이 도와줄 정도로 가난했다. 그의 언니가 벌어오는 한달 8만 5천원 수입으로 5명이 생활해야 했다.

 

하지만 집안일을 도와가며 공부하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이 전 판사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대학교 때도 생활고에 시달려 항상 일을 손에 놓지 않았다. 그는 지방 여고에서 그 어렵다는 서울대 경제학과에 붙었고 2004년부터 2020년 올 1월까지 16년 동안 판사로 근무하다 수원지법 부장판사를 끝으로 퇴직했다.

 

그는 판사 시절에 '국제인권법연구회' 소모임 조직과 주위의 따가운 눈총에 아랑곳없이 양승태 대법원 상고법원 찬반 토론에서 공개적 상고법원 설치 반대 표명 및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 인사제도 개선 토론회를 강행하기도 했다.

 

▲     © 서울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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