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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광구의 꿈' 한국의 마지막 승부수 34년 만에 일본에 던지다

정부 일본에 개발 전격 선언.. 산업자원부, 석유공사를 개발사업자로 지정 일본에 통보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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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20/03/19 [15:12]

'2028년 조약이 종료될 때까지만 기다리면 혼자 다 먹을 수 있다는 일본의 속셈'

'1986년 일본이 갑자기 개발 중단을 선언하고 철수'

 

사진/KBS


대륙붕 ‘제 7광구’가 최근 불거진 한일 외교·무역 분쟁 속에서 새삼 관심을 끌고 있다. 제주도에서 '이어도' 남쪽으로 향한 남한 면적의 80%쯤 되는 해역이다. 

 

이 '제7광구'를 우리 정부가 개발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올해 1월 2일 산업자원부가 석유공사를 개발사업자(조광권자)로 지정하고 일본 외무성에 통보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04년 미국의 국제 정책연구소인 ‘우드로 윌슨’ 센터가 낸 보고서에서 대륙붕 7광구 해역을 두고 "동중국해 천연가스 매장량이 사우디아라비아의 10배에 달할 것"이란 구체적인 추정 매장량까지 내놨다. 

 

그런데 오는 2028년 한일 공동개발 시한이 만료되면 일본 영해로 들어갈 공산이 커지고 있다. 여기에는 박정희 정권 시절 우리 영해로 선언하고 양국이 공동 개발에 합의했지만 그 이후의 전략 패착에 기인한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상기 지도의 '노란 선'이 바로 7광구다. 1968년 UN 아시아개발위원회는 동중국해 대륙붕 자원 탐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보고서에서 "타이완에서 일본 오키나와에 이르는 동중국해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매장량의 석유자원이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밝혔다.

 

여기가 노다지라는 보고서가 나오니 1970년 박정희 정권은 제주도 남쪽에서 일본 오키나와 앞에 이르는 7광구를 우리 땅 이라고 선포한다.

 

19일 KBS 보도에 따르면 7광구 위치가 일본 쪽에 더 가깝게 붙어 있다. 당시 국제해양법은 '대륙붕이 어느 나라와 연결돼 있는지'를 기준으로 누구 땅인지 정리를 했다. 한국에선 제주도로부터 7광구까지 한 덩어리로 쭉 이어져 있으니 당연히 우리땅으로 인식했다. 

 

당시 국제법 판례에 따르면 대륙붕은 기존 대륙에서 이어지는 연장선에 의해 개발권을 정했다. 따라서 '대륙연장선'으로 한반도에서 이어지는 7광구 대부분이 우리 소유로 볼 수 있었다. 1969년 북해 대륙붕 소유권 판결에서 대륙연장론이 채택됐고, 우리가 먼저 7광구를 설정했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했지만 일본이 자신들의 영토와 가깝다며, 이른바 '중간선 경계'를 주장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인 72년 9월 한·일각료회의에서 양국은 7광구 공동개발 원칙에 전격 합의한다. 그 배경에는 일본 협력기금 8억 달러를 앞세웠던 한·일협력위원회가 있었다. 

 

이때 맺은 독소조항으로 7광구 개발은 30년 넘게 방치되고 있고, 심지어 8년 뒤인 2028년에는 우리 정부가 손을 쓰지 않으면 일본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1970년 8월 열린 한·일협력위 상임위 회의록을 보면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심복 야쓰기 가즈오 위원이 "해양개발에 대해서 대륙붕 공동개발의 원칙을 정해 양국 정부를 설득하자"고 제안한다.

 

야쓰기 위원의 제안 3달 만에 한·일각료회담에서는 실무자 협상이 시작됐다. 한국에 모든 상황이 유리했는데도, 박정희 정권 외무부는 '대륙붕 문제로 한·일 간 정치적, 경제적 협력관계에 영향을 주면 안 된다'는 우려의 시각을 내놓는다. 지난해 일본의 경제 보복을 우려해 일본에 맞서면 안된다는 논리와 비슷한 취지다.

 

1972년 8월 한·일협력위 환영회에서 야쓰기 위원은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에게 "해양자원은 공동개발이 적합하다"라고 말했고, 김종필 총리는 "합시다"라며 공동개발에 합의한다.

 

1978년에 정식 협정이 발효되고 한-일 양국은 7광구를 공동개발한다는 조약을 맺었다. 석유가 나오면 반씩 나누자는 내용이다. 당시 우리는 국제법적인 근거만 있었지 막상 석유를 탐사할 기술도 돈도 없었으니, 일본의 조약 제안을 받아들인다.

 

이때부터 7광구의 이름도 JDZ(Joint Development Zone), '한-일 공동개발구역'으로 바뀐다. 1979년부터 87년까지, 한·일 양국은 7광구에서 7개 공구를 뚫었다. 이 중 2곳에서는 가스가, 한 곳에서는 석유가 나왔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가능성은 충분했다.

 

1980년부터 한-일 양국이 탐사하고 시추를 시작해 시험적으로 7개 시추공을 뚫었고 3개 시추공에서 적은 양이긴 하지만 석유와 가스가 발견됐다. 온 국민이 산유국, 이제 부자 나라가 된다는 꿈으로 가득찼다. '제7광구가 검은 진주'라는 노랫말의 국민가요까지 나왔다.

 

하지만 일본은 1986년 이후 갑자기 개발을 중단하고 철수해버렸다. 그 이후로 7광구는 30년 넘게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일본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경제성이 없다"는 거였다. 그러나 진짜 속셈은 따로 있었다. 

 

1982년 UN 국제해양법이 새로 채택된다.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이란 개념이 이때부터 도입됐는데, 대륙붕 소유권을 옛날처럼 어느 나라와 연결됐는지 복잡하게 따지지 않고 중간선을 그어서 반씩 나눠 갖는 개념으로 바뀌고 말았다.

 

1985년 국제사법재판소는 결국 대륙붕의 경계를 두고 육지에서 이어진 대륙연장선이 아니라 육지로부터의 거리가 기준이 된다는 다른 결정을 내린다. 이 국제법 판례가 적용이 되면 7광구의 상당 부분이 일본의 영향권에 놓이는 것이다. 일본은 이 판결이 나온 뒤부터 공동개발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새로운 해양법에 따라 한국과 일본의 중간선을 그어보면 아래 지도와 같다. 지도를 보면 90% 이상이 일본 영토로 귀속된다. 

 

 

또 박 정권 시절인 1978년 맺은 한-일 조약도 발목을 잡았다. '탐사와 시추는 반드시 양국이 공동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한국이 단독으로라도 계속 개발하고 싶어도 일본이 안 한다고 하면 할 수 없도록 독소 조항이 들어 있었다.

 

더구나 이때 체결한 한-일 조약은 영구 조약이 아니라 50년 동안만 유효한 조약이다. 굳이 한국과 공동개발해서 반씩 나눌 필요가 없이 2028년 조약이 종료될 때까지만 기다리면 혼자 다 먹을 수 있다는 일본의 속셈이다.

 

이후 지금까지 34년간 7광구는 이러한 독소조항에 걸려 시추는커녕 탐사 한번 해보지 못한 채 허송세월을 보냈다. 90년대 초 2차 탐사 당시 자료만 검토하더니, 2001년에는 아예 탐사 중단을 선언했다. 2010년에는 '가능성이 없다'며 일방적으로 공동연구를 종료했다.

 

일본의 일방적인 중단에 우리도 개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후 일본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워 7광구, JDZ 개발을 원천적으로 봉쇄시킨다. 조약상 한쪽이라도 반대하면 못하게 돼 있는 조약이 함정이다.

 

우리 정부가 그래서 이번에 마지막 승부수를 띄운 거다. 석유자원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고려하면 남은 8년도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 외교부가 지난달 일본 외무성에 한국이 개발을 시작하겠다는 입장을 전했고, 현재 일본의 응답을 기다리는 중이다.

 

KBS는 이를 두고 '과거 전례로 봤을 때 일본이 동의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며 그런 경우를 감안하고서라도 우리 정부가 전략을 세우고 있을 것으로 믿고있다고 했다. 덧붙여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일 테니까 빼앗길 때 빼앗기더라도 한번 싸워나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물음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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