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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숙 18차재판> "이성잃은 검찰의 좌충우돌"

“피고인 측이 ‘착한 검찰’ 죽이려 든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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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11/07/13 [17:41]



“검찰에 조사받으러 가면서 농약을 품고 갔다.”
11일 역시, 예정됐던 6명의 증인 중 2명밖에 나타나지 않아 심드렁한 분위기 속에 속개된 한명숙 전 총리 정치자금법 위반혐의 관련 18차 공판이 박 아무개 증인의 이 한마디로 발칵 뒤집혔다.

이 증인은 2007년 5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잘해야 10개월 남짓 한만호 사장의 회사 한신건영에서 주로 운전기사로 일했던 서른 서넛 정도 나이의 젊은 사람이다. 아무리 봐도 결코 이 사건의 핵심이랄 수 없는 인물인데 덩치가 좋다는 것 말고도 뭔가 다부지고도 눈썰미가 있는 사람인 모양이다. 몇몇 회사 임원들이 이 사람을 좋게 보았고 한 전 총리의 보좌관이었던 김 아무개 피고인과도 꽤 가깝게 지낸 것 같다. 구속 중이던 한 사장이 일부 채권회수를 위임한 걸 보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이 증인은 몇몇 한신건영의 채무자들로부터 약간의 채권을 회수했다고 한다. 바로 그 때문에 지난해 12월 29일 검찰에 소환당할 때 수사관으로부터 ‘횡령혐의’ 운운의 협박을 받을 소지가 있었던 것이다. 한 전 총리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아무개 모 은행 지점장이 한 사장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가 밝혀져 구속됐는데, 이제 자신도 재차 조사받으러 오라면서 ‘횡령’ 운운하니 “이젠 불똥이 나한테도 튀는구나” 하는 공포심에 농약을 준비했다는 얘기다. (이 증인은 지난해 4월 19일 1차 소환돼 조사를 받은 바 있으나 12월 29일 재소환된 것이다. 이때는 한만호 사장의 양심선언으로 검찰이 궁지에 몰린 직후였다. 그리고 그 후 6개월여 만에 검찰 측 증인으로 법정에 나온 것이다)

정작 충격적인 건 농약이 아닌, ‘혐의 조작’을 위한 협박수사 의혹

김 보좌관이 타고 다녔던 회사 차를 언제 어디서 회수 받았는가, 한 사장이 P 건설과 함께 사업을 추진한다는 말을 듣지 않았는가, 한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주었다는 소문을 듣지 않았는가, 경선유세에 동원된 회사버스를 운전해 주고 돈을 받은 적이 있는가 등등 기왕의 재판과정에서 이미 나왔던 비교적 한가한 질문을 계속하던 검찰이 느닷없는 ‘농약소리’에 크게 당황했음은 물론이다. 그때부터 검찰은 농약을 준비해야 할 만큼 강압적인 소환이 결코 아니었음을 강조하면서, 증인이 농약을 준비했다는 증언 자체가 거짓이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언제 어디서 농약을 샀나” “농약가격이 얼마였나” “농약이 가루였다면 어떻게 포장되어 있었나” “포장의 크기는?”에서부터 “농약가게 주인 나이는? 얼굴 생김새는?”에 이르기까지 정신없이 물어댔다.

급기야 “소환되기 전, 채권회수하면서 돈 받은 게 죄가 되는지 상담을 받았고 괜찮다는 걸 알았으면서도 농약을 준비했다는 게 말이 되나”는 회심의 질문을 던지고는 “(재판 자체가) 덮어씌우기이고 답이 없는 재판이었기 때문에 검찰이 안 좋게 할 것 같아서…”라는 듣기 거북한 답변을 듣기도 했다.

검찰이 그럴 일이 아니었다. 물론 농약을 준비했다는 것은 이 사건 관련 인물들이 얼마나 정치공작적인 측면에서 이 사건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거기에서 얼마나 큰 압박을 받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한 에피소드일 수는 있지만 그 자체로 경천동지할 만한 폭로는 아니다. 공포심을 느끼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고 공포에 대처하는 방법도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 증인이 과도하게 겁을 먹었던 것에 대해 검찰이 더 많은 책임을 질 일은 아니다. 정작 충격적인 것은, 그날 그런 배경을 두고 이루어진 검찰 조사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한 그의 계속된 증언내용이다.

2008년 2월 회사가 부도상황에 있을 때 회사 직원 김 아무개가 검은 비닐봉지에 돈을 가득 담아와 직원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한명숙한테서(김 아무개라고 한 것 같기도 함) 받아 왔다”고 떠들어 댄 소리를 들었다는 자신의 검찰조서 내용에 대한 확인신문에 답변을 하면서다(이 돈은 김 아무개 보좌관이 한 사장에게서 빌린 돈의 일부인데, 검찰은 한 총리가 직접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신은 당초 “(한 총리가 아니라 보좌관인) 김 아무개한테서 받아 왔다고 들었다”고 진술했지만 수사관은 “보좌관에게서 받아 왔다면 그 돈이 어디서 넘어 왔을까? 당연히 한명숙에게서 넘어 온 것 아니겠나”라고 유도신문을 했고, 증인이 “그럴 수도 있겠죠” 하니까 조서를 그렇게 꾸민 것이라고 했다.

이뿐이 아니다. 자신이 구경조차 하지 못한 한 전 총리 댁에 간 적이 있다고 거짓진술을 하라는 압박을 받았다는, 더욱 놀라운 폭로가 이어졌다. 두 명의 수사관이 “횡령혐의로 걸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가운데 “증인도 있다”고 겁박하면서 돈을 갖다 주었든, 한 사장을 모셔 갔든, 그것도 아니면 혼자라도 ‘풍동(한 전 총리 자택이 있는 곳)’에 간 적이 있다고 진술하라고 겁박했다는 것이다. 백승헌 변호인의 반대신문을 통해 정리된 수사과정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횡령혐의 안 걸리려면 ‘풍동’간 적 있다 해라”

-소환과정은?

여러 번 전화가 왔다. 아버지와 회사 임원 한 아무개가 좋을 게 없으니 가지 말라고 했다. 계속 나오라고 전화 왔고 음성메시지도 남겼다. 빨리 나오라고 하면서 돈 받은 게 있으니 횡령으로 조사할 거라고 했다. 한 전 총리 문제라는 소리는 없었다. 짐작만 했다.

-그동안 누구에게서든 횡령으로 자신을 고소하거나 고발했다는 얘기 들은 적 있나.

들은 적 없다.

-어떤 압박감을 받았나.

지점장이 구속됐다는 소리, 한 사장이 (법정에서) 갑자기 진술을 바꿨다는 소리 듣고 나도 이번에 들어가면 구속될 거다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보증 선 문제, 금전문제 등으로 사정이 안 좋은 때였다.

-검찰조사는 어떻게 이루어졌나.

1차는 사무실, 2차는 영상녹화실에서 했다. (한 사장에게서 받은) 채권회수 위임장 사진을 찍고 휴게실로 갔다. 휴게실서 담배 피우며 조사관 둘 하고 얘기했다.

-횡령건에 대한 정확한 언급은?

한 수사관이 “(횡령) 이런 거 우리 검사님은 용서 안 한다”고 하면 다른 수사관이 “그런데 당신은 풍동에 간 적도 없다고 한다. 한 사장 모시고 간 거 아니면, 근처에라도, 혼자라도 간 거 아니냐” 고 했다. 증인이 있다고도 했고 “발을 빼려면 확실하게 빼라. 지금은 좋지만 나중에도 좋게 해 줄 수는 없다”고도 했다.

-풍동에 한 총리 댁 있다는 걸 알았나.

(처음에는) 몰랐다.

재판장도 깊은 흥미를 느낀 듯 했다.

-증인이 풍동에 간 사실이 있느냐는 것과 횡령혐의 건은 잘 연결이 안 되는데, 수사관이 직접 그렇게 (연결시켜) 말한 것이 맞습니까.

같은 자리에서 한 분은 “(횡령혐의에 대해 검사님은) 용서 안 할 것”이라 하고 또 한 분은 “사실대로 말하라. 증인도 있다”고 말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럼 직접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증인이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네요. 그런데 발을 빼라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글쎄, 저도 모르겠습니다.

검찰은 이날 추호도 예상치 못한 불벼락을 맞은 셈이 됐다. 당초 이 증인은, 이날 선임검사의 말을 빌리면 “(별 중요한 증인도 아니고)단지 정황파악을 위해 부른 것이고 혹시 빠진 것은 없는지 물어 보려 했던”, 누가 봐도 ‘C급 증인’이었을 뿐이다. 놀이개삼아 한 전 총리 흠집내기에 사용하려던 카드가 ‘표적수사’ ‘협박수사논란’으로 불길이 확 번진 셈이다.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치민 검사들은 방청석에 포진하고 있는 수사관들을 연신 검사석으로 불러 귀엣말을 나누면서 증인에 대한 격한 신문을 쏟아 냈다.

“휴게실 대화를 조사라고 생각했는가” “수사관들이 직접 그렇게 얘기하든가” “큰 소리라도 낸 적이 있는가” “구속시킨다고 하든가” “증인이 한 사장 운전기사도 아니고 돈 전달 시기에 입사한 사람도 아닌데 풍동 간걸 왜 물어봤겠나”

대답은 간단했다. “저도 그걸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왜 ‘착한 수사관’을 그렇게 (없는 말로) 괴롭히냐는 뉘앙스의 질문도 있었다.

“그 수사관은 늘 가족이 지켜본다는 느낌으로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수사관들과 함께) 커피도 엄청 마시고 담배도 반 갑이나 피우지 않았나요” “(수사 마치고 헤어질 때) 그 수사관이 엘리베이터까지 마중하지 않았습니까” “헤어질 때 언제 차 한 잔, 아니면 식사 한 번 하자고 않던가요.” 급기야는 “내가 차비하라고 5만원 주지 않았습니까”라는 질문 아닌 질문도 나왔다. ‘착한 수사관’에 ‘착한 검사’다.

재판 초장부터 한 사장의 갑작스런 양심선언으로 검찰이 크게 놀라 다급해지긴 했던 모양이다. 근무한지 몇 달 되지도 않는 운전기사를 한 사장과 엮어, 한 총리의 잡 근처에서 돈을 전달한 것이 틀림없다는 정황을 만들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 한 것이다. 문제는 수사관들이 한 건 올리겠다는 영웅심리에서 개인플레이를 한 것인가, 검사까지 개입된 조직적인 것인가다. 수사관들이 정식 조사 자리에서 진심으로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을 거라는 집요한 신문 끝자락에 증인이 주심검사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검사님도 (그날 조사 다 끝나고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그런 말(‘풍동에 가지 않았느냐’) 하셨잖아요”

착한 검사, 순진한 검사, 멍청한 검사

이 증인은 2차 소환조사를 받은 다음 날 피난처를 찾아 영등포 민주당사로 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이 검찰에서 받았던 조사내용을 낱낱이 밝히고 농약병과 위임장을 민주당에 연결된 변호사 사무실에 맡겼다고 한다. 재판장 직접 신문을 통해, 보좌관 김 아무개 피고인을 통해 2차 소환 전에 민주당 당직자를 소개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소환도 받기 전에 민주당 사람들을 왜 소개받았는지 납득이 안 간다는 재판장의 의문에 대해 증인은 “검찰 탐문전화가 많았기 때문에 (뭔가 경계하고 대비하려는 차원에서) 그랬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검찰은 독이 잔뜩 오른 두꺼비를 어르고 달랜 구렁이가 된 셈이다. ‘협박수사’ ‘강압수사’ 가리지 않는 무섭고 독한 검사인줄만 알았는데 착하기도 하고 순진하기도 했던 셈이다.

분노한 검사 한 사람이 자신들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도 모르고 “증인이 그때 농약병 들고 민주당에 갔을 리 없다. 갔었다면 그때 왜 민주당에서 비난성명을 내지 않았겠나”고 반박했다. 한 사장의 양심선언을 겪고도 아직 법정에서의 폭로가 얼마나 큰 파급효과가 있는 것인지를 모르는 검찰, 그래서 억울하고 답답해도 꾹 참고 법정에서 진실 폭로의 기회를 기다리는(혹은 노리는) 피고인 측의 인내를 가늠하지 못하는 검찰. 착하고 순진할 뿐 아니라, 이 대목에서는 좀 멍청한 것 같기도 하다.
 

강기석 / 노무현재단 홈페이지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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