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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에 빙의? 윤중천 성폭력 무죄 준 법원.. "시골, 고졸 출신이 장벽 넘으려다"

'별장 성접대' 윤중천, 법원 알선수재·사기죄만 적용..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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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숙
기사입력 2019/11/16 [10:27]

재판부 '성범죄 혐의 인정 없이 공소시효 만료 등 이유로 면소 또는 공소기각'

MBC 화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연루된 '별장 성범죄' 사건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핵심 인물인 건설업자 윤중천 씨가 15일 1심에서 각종 성폭력 혐의에 대해 법원이 무죄 선고를 내렸다.

 

수십 여 명에 달하는 일반 여성을 갖은 방법을 동원해 유인해 강간과 성추행, 불법 동영상 촬영 등 온갖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의혹 속에서도 극히 일부 혐의만 인정돼 기소됐으나, 성범죄에 대해서 법원은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손동환)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스폰서로 알려진 윤중천 씨에 대해 사기 등의 혐의만 유죄로 인정했고, 김 전 차관과 관련이 있는 강간치상·특수강간 등 혐의에 대한 성범죄 혐의는 시간이 지나 처벌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소 기각 판단을 내렸다. 

 

이날 재판부는 윤중천 씨가 A 씨를 성폭행하는 장면을 불법 촬영했다는 혐의에 대해 피해자가 ‘김학의 동영상’ 속 여성이 자신이라고 했다가 아니라고 하는 등 진술이 일관되지 않았다는 것과 불법 촬영물이 실제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내세워 피해 사실 자체를 의심하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자리에 본인이 직접 참석했고, 사람들이 다수였다면 헷갈릴 가능성이 있음에도 피해자 A 씨의 진술에 대한 당시 현장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따른 비판이 나온다.

 

이날 재판부는 윤 씨에 대해 성폭력 혐의는 무죄를 내리고 특정경제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과 알선수재 등 혐의만 인정해 징역 5년 6개월을 선고하고 추징금 14억 8천여만 원을 명령했다.  

 

그러나 이 사건의 가장 큰 핵심 사안은 윤중천 씨가 성 접대에 여성들을 동원해 저지른 강간죄다. 윤 씨는 이 사건의 피해자 A 씨를 2006년 겨울경부터 이듬해 11월 사이 3차례 성폭행해 외상 후 장애 등 상해를 입히고, 불법 촬영물 등으로 협박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비롯한 유력 인사들과 성관계를 맺도록 한 혐의 등을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이날 재판부는 개별 강간 혐의 중 2006년 발생한 사안은 10년의 공소 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고, 2007년 발생한 두 건의 사안은 당시 고소가 있어야 처벌할 수 있는데, 고소 기간이 지났다는 게 이유로 공소 기각을 결정했다.

 

검찰은 피해자에게 성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외상이 발생한 2013년부터 공소 시효를 따져야 한다면서 공소 시효가 15년인 강간치상 혐의를 윤 씨에게 적용했다. 2008년 3월부터 윤 씨에 의한 성폭력 피해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A 씨의 의료 기록을 근거로, 정신적 상해를 인지한 진단 이후부터 공소시효가 시작된다는 점에서다.

 

이에 대해 법원은 강간 피해와 정신적 상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며 윤 씨를 강간치상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A 씨의 진술을 의심한 재판부는 “피해자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당시 강간으로 인해 발생한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라며 “다른 사정들에 의해 PTSD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내다 봤다.

 

그러나 피해자 A 씨 측 이찬진 변호사는 “(피해와 상해 사이) 인과관계에 일정 정도 의심이 있다고 해도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을 고려했는지 의문”이라며 “가해자들이 표현한 성 접대 프레임과 달리 피해자가 겪었던 성폭력 피해 부분을 구분해서 판단했어야 했다”라고 주장했다.

 

특히 이날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제때 이 사건을 재판에 넘기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검찰이 이 사건을 '성접대'의 시각으로 보고 당시에에 뇌물죄를 적용했으면, 윤 씨가 법정에 정상적으로 설 수 있었을 것이라며 검찰을 탓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검찰은 이미 2013년에 이 사건을 수사했는데 성 접대와 뇌물 공여는 판단하지 않고 고소된 성폭력 사건만 판단해 사건을 불기소 했다"며, "당시 적절하게 수사권과 공소권을 행사했다면 그 무렵 윤 씨는 적정한 혐의로 법정에 섰을 것"이라고 질책했다.

 

특히 이날 윤 씨의 양형 선고에서 눈길을 끈 대목은 따로 있다. 재판부가 양형 이유를 밝히는 과정에서 다른 형사재판에서의 설명하는 방식과는 매우 다르게 윤 씨의 일생 경로를 읊기 시작했다. 마치 재판부가 윤 씨의 입장에서 성폭력 사건을 이해하는 듯한 매우 이례적인 태도를 보여 일각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재판부는 “윤 씨는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 복무를 마친 뒤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며 "어려움을 많이 겪던 중 장벽을 넘기 위해 무리하게 노력하다가 성범죄와 사기 등 범행을 저질렀다”라는 취지로 그의 살아온 경로를 구구절절 밝혔다. 

 

윤씨 측은 이날 판결에 대해 “재판부께서 고도의 집중심리를 통해 면밀히 검토해 지난 6년간 대한민국 전역에 소모적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성접대 또는 성폭행 관련 사건에 대해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않고 적절한 판단을 해주심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면서 “나머지 신상털기식 수사에 따른 사기 등의 공소사실 중 일부 유죄가 선고된 것은 항소심에서 바로잡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성단체 등에서는 성폭력 범죄를 처벌하지 못한 데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한국여성의전화 고미경 상임대표는 한국 사회가 여성에 대한 성착취와 폭력을 여전히 용인하고 있는 것 이라고 포문을 열었다.

 

고 대표는 “법무부 차관이었고 검사였던 김학의를 비호하는 공범인 검찰은 본 사건을 성폭력이 아닌 뇌물죄로 기소하였고, 윤중천이 자행한 성폭력의 일부만을 기소했다”고 말했다. 이어 “절망했어도 재판부에 일말의 기대가 있었지만 사법부는 사실상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처해 있는 상황은 전혀 고려도 하지 않았고, 성폭력에 대해서도 제대로 판결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도 “판사는 판결 중 가해자에 대해 시골, 고졸 출신으로 ‘장벽’을 넘고자 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에 빙의한 듯 말을 했다”라며 “성범죄 피해자를 겪은 여성들이 눈앞에 둔 장벽은 그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높다. (피해자는) 가해자끼리의 연대, 경찰·검찰·법원의 연대와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통념과 같은 장벽을 결국 넘어서는 것이 누구인지 끝까지 보여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윤중천 씨 등에게 1억 8천만 원 상당의 뇌물과 성 접대를 제공 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선고 재판은 오는 22일로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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