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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비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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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석
기사입력 2017/06/30 [04:06]

 

나는 김기춘이야말로 무고한 한명숙 전 총리를 감옥에 집어넣은 원흉이라고 믿는다.

 

한명숙 총리는 2010년 12월 6일~2011년 10월 31일 근 11개월 동안 (선고공판 포함) 24차례, 30명에 이르는 증인들을 부른 1심에서 완벽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따라서 2심이 2013년 4월 15일에서 7월 8일까지 3개월도 안 되는 동안 두 명의 증인만을 부르고 단 3차례 재판 끝에 8월 19일로 선고기일을 정했을 때 아무도 1심 무죄 판결이 뒤집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무엇보다 철저히 공판중심주의로 이루어진 1심의 결과에 반할만큼의 새로운 증언이나 증거가 전혀 제출된 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고 예정일 바로 하루 전인 8월 18일, 선고날짜를 갑자기 9월 16일로 한 달 연기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부터 한 전 총리 주변에서는 심각한 우려의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도대체 법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가.

나는 이 때 김기춘이란 존재를 주목했다. 

 

8월 5일 김기춘이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사실을 빼놓고는 이 희한한 사태- 방대한 1심 재판 과정의 내용을 검토하고 2심 재판을 더 이상 끌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또는 판단했을 것으로 보이는) 주심 재판관 정형식이 왜 갑자기 판결을 1개월이나 연기해야 했을까-를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때 나의 합리적 의심은, 최근 국정농단사건에서 드러난 청와대-검찰-법원의 유착실태, 대법원장 양승태 파동의 핵심 원인인 법원행정권 남용실태를 통해 확신 수준으로 강화된 것이다.

 

그런 김기춘이 ‘고령’을 이유로 법원의 선처를 애걸하는 모양이다. 

어제(28일)만 해도 끝내 자신의 범죄사실을 부인하면서도 “사약을 내리면 깨끗이 마시고 끝내고 싶다”고 정치범 코스프레를 하다가도 "제 소망은 언제가 됐든 옥사 안 하고 밖에 나가서 죽었으면 하는 것"이라고 악착같이 보석을 원했다고 한다. 

어림없는 소리다. 

 

그가 감옥에 가둬넣은 한명숙 총리 역시 그 보다 다섯 살이 적지만 그 또한 73세의 고령이며 더구나 여자다. 무고하게 감옥살이 해야 하는 이들의 심정을 알기나 하는가.

 

김기춘이 "우리 심장이 주먹만 한데 거기에 금속 그물망이 8개가 꽂혀 있어 상당히 위중하다"며 울먹였다는 대목에서는 분노가 아니라 깊은 혐오감까지 일었다. 

 

그는 야비하고 잔인할 뿐 아니라 당당하지도 못한 인간이다.

스탠스를 8개나 박아넣은 심장이 어찌 그리 잔혹할 수 있는가.

한 총리의 감옥생활 일부분을 소개하니 ‘희대의 악인’ 김기춘은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다. 

 

한 총리는 꿋꿋하게 2년 형기를 마치고 8월 24일 출감한다.

 

 

“(...) 늘 필요없는 살을 덕지덕지 붙이고 다니던 모습에서 7kg이나 체중이 빠져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도 좀 편안해 진 탓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늘 화장을 하고 다녔는데 이젠 점점 자연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민낯 얼굴에, 자연스럽게 나오는 희끗한 흰머리의 70대 노인의 모습, 자연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하는 게 처음에는 불안했는데 이제는 편안해졌습니다. 마음은 세상을 떠나 초연해지는데...”

 

“저는 여기서 요주의 인물로 저의 모든 말과 행동이 상부에 보고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역설적이게도 여기는 책을 읽고 쓰는 자유는 무한대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족합니다. 책 속에 나를 가두고 그 속에서 무한자유를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1.89평의 이 작은 방이 갇혀 있는 작은 방이 아니라 저의 서재나 창작실로 착각할 때도 있습니다. (...)

 

건강을 지키면서 하루하루를 꽉 채워 사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하루에 40분씩 조그만 운동장을 속보로 걷는 것, 하루 한 시간씩 요가, 절운동(108배)으로 건강을 지키고 있습니다. 최근 책에 눈을 파묻고 읽다가 눈에 이상이 생겨 외부 안과병원에 검진을 나갔었습니다. 수감 1년 전 백내장 수술을 했는데 이미 노안이어서 책을 심하게 읽으면 안 된다는 의사의 조언을 들었습니다. 평소 밖에서 일할 땐 노인이란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이젠 인정하고 살 수 밖에...“

 

자유언론실천재단  강기석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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