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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시립대 日비판 한국 여교수 사기 누명 씌워서 몰아내

김미경 교수 “우경화된 일본의 민족·여성 차별주의에 맞서 명예 되찾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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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17/05/28 [23:03]

교수신문에 따르면 일본 히로시마시립대 평화연구소에서 정년보장교수로 지난 12여년 동안 재직한 김미경 교수는 2006년 제1기 아베정권이 시작됐을 때부터 최근까지 우경화돼가고 있는 일본에 대해 침묵할 수 없었다. 그래서 김 교수는 신안보법안, 평화헌법개정, 특히 한일위안부 합의에 관해 비판할 수밖에 없었다. 

 

김 교수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일본 우경화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결정적으로 부정적인 연쇄효과를 일으킬 것’이라고 기고활동을 벌였다. 그는 이게 ‘학자들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인식했다. 그런 그가 히로시마시립대학엔 눈엣가시처럼 비쳐졌을 것이다. 

 

대학 측은 연구주제나 신문기고문의 내용들 때문에 우익 인사인 히로시마 평화연구소장과의 불화 등을 빌미로 호시탐탐 김 교수를 쫓아내려고 골몰했다.

 

 김미경 교수 © 교수신문


발단은 의외의 곳에서 불거졌다. 김 교수가 2014년 대학 장기 연수프로그램으로 원래는 영국 케임브리지대로 가기로 했지만, 한국국제교류재단 방한 연구자로 한국학중앙연구원(3월~8월)에서 연구한 뒤, 서울대 아시아센터(9월~12월)에 초빙교수로 머무른 걸 문제 삼았던 것이다.

 

김 교수는 2014년 해외 연수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원래 케임브리지대로 가려고 했지만, 한국국제교류재단 펠로우십으로 한국(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대 아시아센터)에서 연구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김 교수가 소속기관장인 평화연구소장의 추천서 서명을 위조했다는 게 대학 측이 내놓은 해고 사유다.

 

김미경 교수가 학교로부터 일방적인 징계해고를 당한 건 지난 3월 17일이었다. 대학 측이 김 교수를 ‘사기죄’로 형사고소를 하면서 불어닥친 ‘狂風’이다. 3월 6일 그는 불시 가택수사를 당하고 체포됐지만, 17일 불기소, 석방 됐다. 그런데도 대학 측은 석방 몇 시간 후 서둘러 ‘징계해고’를 때렸다. 

 

징계해고와 함께 모든 것이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검찰의 불기소로 풀려났지만, 교수직 해제로 인해 ‘정년보장교수’로서 그가 가졌던 모든 것을 박탈당했다. 한화 약 5천만원 정도에 달하는 퇴직금도 지급하지 않았으며, 3월 기 지급된 월급에서 사흘 치 분과, 3월부터 7월까지 소액의 출퇴근 교통비 지원금까지도 반환하라고 명령했다. ‘한시라도 빨리’ 연구실을 비우고 살고 있던 학교 관사에서도 퇴거할 것을 강제했다. 그의 표현대로 그는 모든 사람 앞에서 발가벗겨졌다.

 

거의 빈손이나 다를 바 없는 상태로 서울로 거처를 옮긴 김 교수는 ‘현해탄’을 사이에 두고 지금 길고 고독한 싸움에 나섰다. 세계정치학회 인권분과 회장으로 활발하게 학술활동을 해온 그는 이달 말부터 히로시마시립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할 예정이다. 교원지위에 관한 행정소송도 계획 중이다. 

 

김 교수는 이 ‘징계 해고’에 대해, “임용 이후 주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했다. 오랜 편견이 작용한 것으로 본다. 학문적 열등감과 민족·인종차별주의가 깔려 있다. 더구나 나는 한국 국적의 독신 여교수였다. 우경화 이후 학내외의 그런 폭력적 시선들은 더욱 집요해졌다. 기회 있을 때마다 학교에서 몰아내려고 했지만, 그런 작전들이 실패하자 이번처럼 극단적인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년보장 교수를 해고하기 위해 고소, 체포, 구금이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했다. 이는 학문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 행위다. 역설적이게도, 히로시마가 지향하는 ‘세계평화문화도시’라는 상징성과도 명백히 배치되는 행위다”라고 대학 측을 비판하면서, 이달 말 소송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소송이 중요한 이유는, 차별주의에 대한 저항이란 점, 외적 압력으로부터 사상의 자유를 지켜내는 학문 본질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다. “이번 사건이 중요한 함의를 가지는 큰 이유는 히로시마시립대의 수법이 전례로 악용될 여지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즉, 마음에 들지 않는 정년보장 교수를 해고하기 위해 일단은 없는 죄를 만들고, 고소라는 수단을 통해 인간으로서 학자로서 매장시킨 뒤, 다시는 저항할 수 없게 짓밟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근래 일본 학계에 이런 전례가 없었다"며 "그래서 더욱 ‘길고 지루한’, 현해탄을 사이에 둔 이 싸움에 비장하게 임할 생각이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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