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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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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석태 칼럼
기사입력 2016/08/01 [22:07]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유감스런 것은 반공성향이 강한 신종 극우적 편향이기 때문이 아니다. 눈물을 억지로 자아내려는 신파극이기 때문도 아니다.

 

이 영화가 보는 세계관, 역사관이 협량하며 이 영화를 보는 청소년들의 스펙트럼을 오히려 축소지향적으로 유도하기 십상이라 비교육적이고 반공동체적이다.

 

 

1950년 한국전쟁을 단순히 남북한과 미중소 냉전의 산물로 보면 안된다. 한국전쟁의 씨앗은 일찍이 1894년 동학혁명을 계기로 일본군국주의의 개입으로 부터 뿌려졌고 1975년 베트남 전쟁의 종료까지 열강 제국들의 아시아 경영 지배권을 둘러싼 백년 전쟁의 과정 중 하나의 사건으로 봐야 한다.

 

일본의 조선 식민지 지배가 없었다면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질 필요는 없었으며 한국전쟁은 발발하지 않았다. 진주만 침공을 계기로 일본의 아시아 지배권을 미국은 탈취했고 그 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통하여 미국의 아시아 영향력과 시장 확보를 공고히 하고자 했던 것이다.

 

북한의 남침은 소련과 중국의 영향권에 있는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미국의 시장확장의 좋은 기회로 여겼다. 통킹만 사건은 그 동안 프랑스 지배하에 있었던 베트남 조차 미국의 정치력과 시장확보의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고 개입한 것이다.

 

한국전쟁 과정 속에서 남북한이 번갈아 가며 전선을 지배하는 과정 속에서 민간인들의 희생은 어느 한 쪽만의 만행만의 결과는 아니었다. 광복 후 한국 전쟁 직전 시는 물론이고 인민군의 지배가 끝나고 국군이 점령했던 서울 수복 이후 백만 이상 학살된 보도연맹 사건의 잔혹상에 대하여 역대 대한민국 정부는 공식 사과한 바가 여러 번이다. 인천상륙 작전에 나온대로 우는 착했고 좌는 잔인했다는 설정은 한민족 전체의 역사에 대한 사실 곡해다. 좌도 우도 모두 한국전쟁 전후 정상이 아니었고 광기상태였다. 이념이 피보다 진한 미친 세상이었다. 민족 공동체는 보지 못하고 미중소일 열강들의 이익에 스스로 충실한 노예가 되기를 자초한 무지의 시대였다.

 

제국열강들의 자본 이익 확보의 탐욕 속에서 우리 민족은 희생양들이었다. 그것이 한국전쟁의 진상이다. 인천상륙 작전 후 연승을 거두며 압록강 전선까지 북진했지만 팽덕휘의 지휘를 받은 중국군의 개입으로 북부전선은 무너지고 다시 전선은 6.25 이전의 3.8선을 중심으로 고착되고 전쟁은 휴전한다. 또한 전쟁 후반에 인천상륙 작전 성공 이후 3.8선 이상을 넘지 말라는 미대통령 트르만의 훈령을 무시한 맥아더도 해임된다.

 

 하석태 전 경희대 교수

사드 배치결정은 다시 우리 민족을 한국전쟁 전후의 냉전과 미중소일 열강제국의 희생자로 몰아치고 있다. 그것을 추진하는 위정자들이야말로 무지와 탐욕의 좀비들이다. 왜 그들은 잘못된 역사만 배울까? 후금과 명나라를 현명하게 이용하고 국익을 추구했던 광해군의 영악한 외교는 알지 못하는가?

 

이런 역사사실 왜곡에도 불구하고 맥아더장군의 이 한 마디는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계속 귓전을 때린다. "세월이 사람의 얼굴을 주름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꿈과 희망을 상실한 것이 사람을 늙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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