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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철 칼럼] "내 이름 밑에 ‘목사’ 직함 사양합니다“

오늘을 정의롭게 살지 않는 자, '내세의 천국을 탐하는 것은 어불성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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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14/03/10 [23:21]

김현철 칼럼니스트
(김영랑,항일저항시인3남)
현재 자유 기고가
저서-'아버지 그립고야'
인터넷 써핑으로 내 칼럼을 발견한 어느 출판사에서 ‘그간 써 온 칼럼을 책으로 낼 의향이 없느냐? 승낙만 한다면 우리 출판사가 비용 전액을 부담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책을 낼 수준의 칼럼이라 믿어 본적이 없기에‘칼럼집’은 생각하지도 안 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출판사 측의 요청이라는 점과 거기에 더해서 ‘출판비 면죄’라는 유혹에 승낙하고 말았다.
 
2백여 편의 칼럼 중 현 실정에 너무 날카롭다(?)는 내용 등 절반가량은 출판사 측 처지 때문에, 솎아내야 하는 아픔을 겪으며 원고를 정리하던 중 갑자기 발문을 써 줄 분이 머리에 떠올랐다. 지난 30여 년간 내가 아는 목회자들 중 드물게 세상의 불의와 아픔, 소수자의 눈물에 시선을 보내주는 분이었기에 나와는 가까이 지내 온 터라 발문 부탁과 함께 참고용으로 원고 전문을 보내 드렸다. 
 
다행히 얼마 후 발문이 도착했는데 글 마지막에 필자의 이름만 있을 뿐 직함이 없어서 실수라고 생각, '목사'라는 직함을 덧붙여 추인을 요청했더니 돌아 온 대답은 “이 시대에 인간이 된 것도 부끄러운데 그 호소력 없는 직함은 사양하니 자연인의 이름 그대로 했으면 합니다”였다. 어느 교역자들에게서도 들어 본적이 없는 반응이라 나는 또 다시 ‘직함을 사양하는 이유’를 물었고 그 분은 마지못해 “의식이 있는 독자들일수록 ‘기독교에 대한 혐오감, 절망감’으로 힘겨워하는 현실인데 뻔뻔하게 그런 호칭을 왜 굳이 써야 하죠?”였다.
 
신자 수가 많기로 유명해,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한국 기독교계의 황제(?) 조용기 목사의 ‘썩은 내’ 나는 온갖 비리에 따른 유죄 판결 등 그간 언론에 오르내린 그 많은 교역자들의 그늘진 면을 아파하는 뜻있는 분들이라면 ‘목사’라는 직함이 어찌 예처럼 떳떳하겠는가.
 
그런데도 요즈음 국내의 얼빠진 신학생들과 헛바람 든 교역자들의 대부분은 인생 최대 목표가 대형교회라는 왕국을 이룩하는 것이란다. 분에 넘치는 고급형 주택과 대기업체장 뺨치는 초호화 생활에 최고급 승용차를 몰고 여러 명의 비서들을 거느리며 제왕처럼 군림하던 허구적 인격의 추악한 몰락, 그런 대목사(?)의 종말적 모습이 부럽다면 이 분들의 미래 목회상에 무얼 기대하겠는가?
 
기독교가 수년전부터 ‘개독교, 종교산업, 기독교 망국론, 하나님 장사’라고 일반 사회에서 비아냥 당함은 분명히 기업형 대교회 목사들의 추한 업보에 따른 것일 터인데 결국 이들은 선배 대형 종교 사업가들처럼 물량주의의 늪에 이미 침몰해버린 건가? 그렇다면 그들의 성경은 < 하나님의 나라는 교인의 수와 교회 종탑의 높이에 있느니라 > 가 되지 않겠는가.
 
지금 국내나 해외이민사회는 진실만이 고독할 뿐 모든 잡된 것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판국이다. 그래서는 안 될 교회마저도 ‘없어져야할 교회’가 너무 많은 반면 진정 이 시대의 ‘빈들의 소리를 외치는 교회’는 지극히 소수인 안타까운 실정이 아닌가?
 
따라서 이제 교회들은 기본적인 품격수준에서도 밑도는 필요악이거나 사회적 공해수준으로 보는 시각이 늘어 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암덩어리 만큼이나 비정상적인 기현상은 해마다 국내에서만 3만 명 가까운 엄청난 수의 교역자들이 배출된다는 사실이다. 그로인해 국내는 물론 해외 동포사회의 경우마저 불과 만명 안팎의 동포가 사는 도시에 같은 교파의 교회가 여럿인 한인교회 수가 30여개나 되는 기형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오랫동안 한 고장에서 목회를 해 온 교역자의 분석대로라면 실제로 교회에 나가는 동포 수는 국내와 비슷한 전체 동포 중 약 4분의 1, 거기에 30여 개의 교회 중 가장 크다는 두 교회에만 약 천명의 신자들이 몰려 있으니 하루아침에 군소 교회가 섰다가 사라지는 기현상은 지속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교회마다 다양한 전도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유명 인사들을 초청해서 쎄미나, 전도축제, 간증 등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자 모아들이기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실정임에도 그 결과물인 새 신자라는 분들은 대부분이 수평이동, 즉 다른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온 기존신자들이고 개종한 신자는 거의 없단다. (물론 수평이동해 온 신자들 중에는 목사가 재정을 전담하는 해괴한 목회의 결과 엄청난 액수의 교회 공금 대부분이 목사 개인의 호주머니로 자취를 감춘 데에 격분, 뒤늦게 다른 교회로 도망친 경우도 있겠지만) 즉, 대부분의 경우는 다른 교회 신자들을 빼앗아 오는 것이지 부흥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신자를 하나라도 더 확보해야만 교회 건물 구입에 따르는 막대한 빚 청산이 가능할 예산이 확보된다니 결국 신자들에게는 교회당 건축 또는 이미 사들인 건물로 인한 빚 청산 문제가 가장 큰 짐덩어리가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오죽하면 재력으로 보나 영향력으로 보나 그 고장에서는 무시할 수 없는 어느 무종교 인사에게 교역자가 “우리 교회에 나오시면 책임지고 6개월 안에 장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하고 거듭 유혹했겠는가.
 
이런 경우, 주어서는 안 될 것을 주는 자나 받아서는 안 될 것을 받는 자 모두 상식의 배반자들일 수 밖에 없을 터이다. 
 
물론 일부 교인들 얘기지만,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이고 예수는 따름의 대상인 것을 모르고 멀쩡했던 분이 교회에 나가더니 예수의 가르침과는 동떨어진 어용, 거수기, 골통보수, 바리사이적 자기율법주의, 독선과 편견, 타종교 차별과 무시, 지나친 의식수준의 퇴보, 인권이나 사회정의에의 무관심, 이기적 기복주의 등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은 일반 사회에 널리 인식된 교회의 모습이다.
 
그래도 서울에는 대형교회가 부패의 지름길임을 알아 신자 5백 명이 될 때마다 또 다른 교회로 독립(분가)해 나가는 ‘향린교회’ 같은 참다운 교회도 드물게나마 건재함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참다운 교회는 ‘빈들의 예수님이 걸어 온 길’을 따라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오히려 신자 수는 날로 늘고 있는 실정이라니 이 아니 좋은가!
 
혹시라도 이 세상에 ‘향린교회’ 같은 참다운 기독교회가 대부분이었다면 성자 마하트마 간디가 “나는 예수는 사랑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사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믿는다면서 예수를 전혀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일갈한 대신 자기 스스로가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지 않았을까?
 
미국의 예언가 루스 몽고메리Ruth Montgomery(1912–2001,기독교인) 등 90%이상의 적중률을 자랑하는 전 세계의 유명한 예언가들은 20세기를 지나면서 지구에 대변혁이 오고 인류는 5억에서 1억 정도로 대폭 감소할 것이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인류에 새로운 종교가 전파되어 기존 종교와 그 자리를 바꿀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렇다면 오늘 날 전 세계 기독교의 부패상은 이러한 예언들과 무슨 연관이라도 있다는 것일까?
 
6천 년 전 이집트의 태양신(오시리스-이시스-호루스)의 상징이오, 프리메이슨의 상징 중 하나라는 첨탑Obelisk 19개 중 15개를 현지에서 강탈, 바티칸 베드로 성당 앞 광장의 가장 중요한 위치 등 유럽 전 역에 세워 숭배(미국도 세계 최고의 워싱턴 기념탑을 세웠다)하는 등, 천주교의 최고위직 성직자들을 비롯해서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는 대부분의 개신교 거물급 교역자들은 예수를 믿는 척 신자들을 속이면서 실제로는 태양신을 숭배하고 있는 프리메이슨의 멤버 자격으로 해마다 그들만의 비공개 제사에 참여하고 있음은 오래 전부터 이 들이 예언가들의 말처럼 황도대의‘선생님(예수)의 시대’(물고기자리, BC 60~1960)는 가고 ‘새로운 자유의 시대’(물병자리, 1961~3960)가 도래함을 알고 있었다는 것일까? 
 
물론 일부 교인들에 해당하겠지만 이제 교회를 천당 가는 문턱이라며 드나들 것이 아니고, 또 자신의 무명성을 ‘교회의 직분’이라는 유명성으로 보상해 보려는 천박함에서도 과감히 탈피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교회 안에서 직분을 탐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인간됨, 그리스도적 삶을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아쉽다. 목회자들이 그분의 모습, 형상(Image of God)을 따라 인간다움을 회복하고 사람답게 현세를 실천적인 삶으로 장식하도록 격려해주는 모습 또한 그립다. 
 
하늘의 뜻을 따라 올바른 오늘을 살지 않는 자가 내세의 천국을 탐하는 것은 어불성설에서 더 나아가 ‘뻔뻔’의 극치일 뿐이다. 오늘이 있어 내일이 있고, 이승이 있어 저승이 있는 법, 악인이 의인의 죽음을 죽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어찌 이게 종교인에만 국한될 얘긴가!  정치, 관료, 기업, 언론, 일반인 등 죽음을 앞 둔 모든 인간이 귀담아 들을 진리다.
 
교회에 나가는 자 누구나 조금이라도 예수를 닮아 올바른 인간으로 변해서 ‘겸허한 모습의 신자가 대부분인 아름다운 세상’이 보고 싶다.

                                                                 김현철 칼럼니스트 kajhc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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