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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의 거목, 김대중의 '평생 동지' 이희호 여사 영면

47년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지'로 함께 한 이희호 여사..마지막까지 재야 '정신적 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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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숙
기사입력 2019/06/11 [08:14]

문 대통령 “이희호 여사는 여성 위해 살아온 1세대 여성운동가 위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11일 밤 별세한 이희호 여사. SBS

 

마흔 살의 나이에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부부의 연을 맺고 47년 동안 고락을 함께한, 이희호 여사는 그 어떤 측근보다 가까운 정치적 동지였다. 이희호 여사 스스로 '동행'이라 했던 파란만장했던 50년 가까운 영욕의 삶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여성운동가·민주화운동가로 평생을 보낸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10일 오후 11시37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연세대세브란스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7세.

 

김대중평화센터 대변인은 이날 밤 “일부 언론에서 간암 투병을 한 것으로 보도했으나 암 진단을 받은 적이 없고 고령에 의한 노환으로 끝내 소천했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올해 들어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다. 감기 등으로 수차례 입원했다 퇴원하기를 반복했다. 지난 4월엔 ‘위중설’이 보도되기도 했고, 4월 20일엔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이 별세했을 때도 주변에선 이 이사장에게 아들의 임종 소식도 전하지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77년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보낸 옥중 편지에서 "우리는 사적으로는 가족 관계지만 정신적으로는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동행자 간"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또 1983년 미국 망명 시절 강연에서 "아내가 없었더라면 내가 오늘날 무엇이 됐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회고했다.

 

이희호 여사 곁에서 그의 인생역정을 지켜봐 온 사람들은 '김대중의 삶이 곧 이희호의 삶이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 여사는 스스로 주체적인 여성 운동가이자 민주화 운동가였으며, 김 전 대통령의 둘도 없는 '동지'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보다 두 살 많은 이 여사는 1922년 생으로 1950년대 초 서울대 사범대를 졸업하고 미국 스캐릿 대학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은 당대 엘리트 여성이었다. 이 여사는 마흔 살이었던 1962년 대한 YWCA 총무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도중 김 전 대통령과 혼인했다. 결혼한 지 불과 열흘 후 김 전 대통령이 반혁명을 죄목으로 중앙정보부에 연행됐으니 이 여사에게는 '고난'의 시작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듬해 서울 마포구 동교동으로 이사하면서 대문에 '김대중', '이희호'라고 적힌 명패 두 개를 나란히 내건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김 전 대통령은 감사와 존경의 뜻으로 당시로선 파격적인 '커플 명패'를 달았다고 밝힌 바 있다. 두 사람은 늘 높임말을 쓰는 등 서로를 존중했다.

 

1963년 6대 총선에서 '최대 격전지'인 목포에 출마해 극적으로 당선한 것을 시작으로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과의 투쟁 선봉에 선 정치인 김 전 대통령 뒤엔 언제나 이 여사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다.

 

선거 때마다 이 여사는 '남편이 1진이라면 나는 2진'이라면서 김 전 대통령이 일일이 챙기지 못하는 골목을 누비고 발품을 팔아 '부창부수'라는 칭송을 들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0년대 초 유신 반대 투쟁에 앞장섰을 때 '더 강력한 투쟁을 하시라'고 남편을 독려하는 등 강골의 운동가 기질을 발휘하기도 했다. 이 여사는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김 전 대통령과 함께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 재판 때 검정 테이프를 입에 붙이고 침묵시위를 하던 사진은 고된 옥바라지 속에서도 의연한 모습을 보이던 이 여사를 기억하는 역사의 기록으로 남았다.

 

1978년 연말 석방된 김 전 대통령은 수차례 반복된 가택 연금으로 '동교동 교도소'라고 불리던 자택에 발이 묶였다가 1980년 5월 17일 또다시 연행됐다. 신군부의 5·18 광주 학살과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의 서막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옥중의 김 전 대통령에게 600권이 넘는 책을 보내 공부를 돕는가 하면 청와대 안가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독대해 남편의 석방을 당당히 요구했다.

 

김 전 대통령 부부는 장기 연금과 도청, 감청에 시달리다가 1987년 전 전 대통령의 6·29 선언이 있고 난 뒤에야 마침내 활동의 자유를 얻게 됐다. 이어진 1987년과 1992년의 쓰라린 대선 패배, 김 전 대통령의 정계 은퇴 선언과 복귀, 1997년 대선 승리 등 고비마다 이 여사의 지극한 내조가 있었다.

 

이 여사는 미국 망명과 가택 연금 등 이어진 풍파에도 힘든 내색도 하지 않았다. 네 번의 도전 끝에 이뤄진 대통령 당선과 노벨평화상 수상까지, 이 여사의 조력은 절대적이었다.

 

이 여사는 정치인의 아내로서뿐 아니라 민주화 운동, 사회 운동에 동참했고, 김 전 대통령의 뜻을 이어받아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도 앞장서 왔다. 이 여사는 이제 질풍노도 같은 한국 현대사를 함께 걸어온 평생의 동지, 김 전 대통령 곁으로 떠났다.

 

문 대통령 "이희호 여사,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이자 민주주의자"

 

문재인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별세 소식에 애도의 뜻을 전했다. 핀란드를 국빈방문 중인 문 대통령은 10일 공식 페이스북에 이희호 여사의 별세 관련 장문의 글을 올렸다.


이날 문 대통령은 “이 여사님이 김대중 대통령님을 만나러 갔다. 조금만 더 미뤄도 좋았을 텐데, 그리움이 깊으셨나보다”라며 “평생 동지로 살아오신 두 분 사이의 그리움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 생각해봤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우리는 오늘 여성을 위해 평생을 살아오신 한명의 위인을 보내드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희호 여사가 문재인 대통령과 2017년 8월 18일 오전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8주기 추도식에 앞서 환담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여사님은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의 배우자, 영부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제 1세대 여성 운동가다.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원 등을 창설해 활동했고, YWCA 총무로 여성운동에 헌신했다”며 “민주화운동에 함께하셨을 뿐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여성부 설치에도 많은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여사님은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 하실 정도로 늘 시민 편이셨고, 정치인 김대중을 ‘행동하는 양심’으로 만들고 지켜주신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신앙인, 민주주의자였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평양 방문에 여사님의 건강이 여의치 않아 모시고 가지 못해 안타까웠다”며 “평화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는데 벌써 여사님의 빈자리가 느껴진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두 분 만나셔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겠다”며 “하늘 나라에서 우리의 평화를 위해 두 분께서 늘 응원해주시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민주당 "민주주의와 인권운동의 거목, 삶 자체로 현대사"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의 별세 소식에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큰 별을 잃었다"고 애도를 표했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11일 새벽 논평을 통해 "이 여사께서 소천하심으로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큰 별을 잃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의 삶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현대사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 여사는) 김 전 대통령의 동반자이자 가장 가까운 비판자로서, 독재세력과 싸우는 민주화 투쟁의 동지로서, 매섭고 엄혹한 격정의 세월을 함께 헤쳐 오셨다"며 "독재정권의 서슬 퍼런 탄압도, 죽음을 넘나드는 고난도 이 땅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향한 두 분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순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시대의 어둠을 헤쳐 나가는 혁명은 신뢰와 사랑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두 분의 삶이 증명해주었다"며 "여성운동가이자 사회운동가, 평화운동가였던 이 여사는 새 시대의 희망을 밝히는 거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에도 북한이 조문단을 보낼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0년 전인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북한은 곧바로 조문단을 서울에 보냈었다. 북·미, 남북관계가 막혀있는 이 시점에 북한의 조문단이 내려온다는 것은 또다른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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