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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봉을 월북하게 만든 '친일 고문경찰' 노덕술.. 이승만, '치안기술자'로 비호
문재인 대통령, 김원봉 언급 '광복군은 국군 뿌리' 발언에 자한당과  조선·중앙·동아 발칵
정현숙 2019.06.07 [11:52] 본문듣기

이승만 정권, 반민특위 습격사건 70년.. "친일 증거 모두 불태워" 해체

맹비난하는 보수세력.. "자신들의 뿌리가 친일파에 있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일 뿐"

 

친일 고문경찰 노덕술과  이승만.  JTBC

친일경찰 노덕술 체포당하자..이승만, 직접 석방 지시
 
친일 고문경찰로 악명 높았던 노덕술은 일제강점기에 고등계 형사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체포 고문했고,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수도경찰청 간부로 재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인 6일 노덕술을 위시한 친일세력의 심한 모욕과 핍박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월북했다는 약산 김원봉을 언급하면서 덩달아 온라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그러나 자한당과 조··동 보수언론들은 문재인 대통령의 약산 김원봉 언급을 빌미 삼아 친일 고문경찰 노덕술과 그를 비호한 이승만은 제쳐두고 약산 김원봉을 매도하며 문 대통령 비난하기에 급급했다.
 

노덕술은 27년 동안 사상범, 즉 독립운동사건만 취급하는 고등계에서 근무하면서 오늘날의 총경급인 경시까지 승진했던 극소수의 조선인 경찰 중의 한 명이었다. 특히 내노라하는 고문 기술자로 유명했는데, 어떤 강골이라도 그에게 한번 걸리면 거의 초주검이 되었고, 실제로 3명의 독립운동가가 목숨을 잃었다.

 

현충일이었던 6일은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을 위해 만들어졌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반민특위를 친일 경찰들이 습격해서 해체된 지 70년이 된 날이기도 했다. 친일 관련 증거들은 그래서 없어졌고, 친일파 단 1명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JTBC가 이날 보도했다.

 

반민특위 출범 당시에 반드시 단죄해야 할 친일파 1순위로, 많은 사람들은 친일 경찰 노덕술을 꼽았다. 반민족행위자로서 반민특위에 체포됐지만, 당시 대통령 이승만의 비호로 풀려난 뒤 승승장구해 국회의원까지 출마했던 악질 친일파이다. 

 

반민특위는 실제로 그를 붙잡았는데 노덕술의 체포는 되레 반민특위 습격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말았다. 이승만은 노덕술 체포 이후에 석방을 직접 지시했는데 이런 내용은 당시 국무회의 회의록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고문으로 악명 높았던 노덕술은 반민특위 주요 체포 대상이었다. 그는 1949년 1월 25일 붙잡혔는데 이승만이 직접 그의 석방을 챙긴다. 체포 3일 뒤 열린 국무회의에서 이승만은 "노덕술은 치안기술자로 정부가 보증해서라도 풀려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또 2월에는 노덕술을 반민특위 사무실에 가뒀다는 보고를 받은 이승만이 "불법 조사관과 지휘자를 체포해 법에 따라 처리하라"고 지시한다. 또 다른 기록에는 대통령이 직접 반민법 해당자를 비밀조사하고 선처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적혀있다.

 

이승만은 반민특위 시작부터 "민심을 흩어놓고, 손해만 생길 뿐"이라며 부정적이었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돕던 친일파를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반민특위 습격 사건 직후인 8일  AP와의 인터뷰에서 이승만은 "내가 특위 경찰대 해산을 요구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친일파와 이승만의 '6월 총공세'에 반민특위 활동은 급속하게 힘을 잃었다. 허종 충남대 국사학과 교수는 "응당한 처분을 받아야 되는 것이죠. 우리 사회는 오히려 친일파를 처벌하기 위해서 설치됐던 반민특위가 좌절되면서 면죄부를 주게 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나치 협력자를 처벌한 유럽 국가들과 대비된다. 프랑스는 사형 선고를 6000건 이상 내렸는데 이 중에서 700건 넘게 실제 집행했다. 강제노동과 징역형을 3만 5000건, 부역죄도 4만 6000건 선고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일제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법적 처벌받은 사람은 단 1명도 없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70년 전에 반민특위가 있었던 곳이 현재 서울 을지로의 한 공사장이다. 이곳에는 당시 전국에서 보낸 친일 인사들에 대한 고발장과 또 각종 증거가 최소 수만 건이 모였다. 반민특위는 이 증거들을 토대로 친일파를 체포해 나갔다.

 

그러나 70년 전 1949년 6월 6일, 친일 경찰 수십 명이 이곳을 습격했다. 오전 8시 당시 중부경찰서장 윤기병 등 경찰 50여 명이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이틀 전, 시경 사찰과장 최운하가 친일행위로 반민특위에 체포된 것에 반발하면서다.

 

김옥주 제헌의원의 아들인 김진원 씨는 "(반민특위 요원이) 질질 끌려 청사 뒤뜰에 가 보니 이미 많은 요원들이 두들겨 맞고, 무릎이 꿇리어 앉혀져 있었다"며 "특위 사무실 내 총무과에는 친일 행적이 담긴 문서들이 쌓여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증언했다.

 

백재호 조사관은 목포에서 온 고발장 6000통이 경찰은 문서들을 모두 찢거나 불태웠다고 했다. 반민특위 위원장 김상덕의 아들인 김정륙 씨는 "이게(문서) 없으면 반민특위는 사실상 기능을 잃고 마는 건데… 그러니까 애들(친일경찰)이 들어와서 이 흔적부터 없애버린 거예요."라고 지적했다.

 

친일의 증거가 사라지면서 체포된 친일파들이 줄줄이 무죄로 풀려났다. 광복 후 이승만 정부에서 경찰 간부의 80%는 일제에 부역한 친일 경찰로 채워졌다. 경찰 조직을 장악한 친일 경찰들은 자신들을 향할지도 모를 칼날을 피하기 위해 반민특위 흔들기에 안간힘을 썼다.

 

서울에 이어 강원과 충북 등 지역 조사부가 잇달아 공격받았고, 그 사이 반민특위 위원들은 모두 자리에서 물러났다. 친일 경찰들의 기습사건이 일어난 지 4달 만에 반민특위는 완전히 해체됐다.

 

문 대통령 독립운동가 김원봉 언급에 보수세력 맹비난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현충일 추념사에서 일제 강점기 시절 '좌우 합작'을 통해 창설된 광복군이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라고 언급하자 자유한국당은 물론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신문도 7일 일제히 문 대통령을 거세게 비난하며 반발 했다. 광복군에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인 약산 김원봉 등이 참여한 것을 아래와 같은 딱 한 대목을 언급했다는 이유다. 

 
"1945년, 일본이 항복하기까지 마지막 5년 임시정부는 중국 충칭에서 좌우합작을 이뤘고 광복군을 창설했습니다. 지난 3월 충칭에서 우리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청사복원 기념식을 가졌습니다.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10일 광복군을 앞세워 일제와의 전면전을 선포했습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습니다.
 
그 힘으로 1943년, 영국군과 함께 인도-버마 전선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고 1945년에는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함께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하던 중 광복을 맞았습니다. 김구 선생은 광복군의 국내 진공 작전이 이뤄지기 전에 일제가 항복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 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독립운동가로서 김원봉이 헌신적으로 활동했다는 점은 이념 논쟁을 막론하고 공통된 평가가 나온다. 김원봉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건, 그가 독립운동 당시 임시정부와 대립했다거나 분단 이후에 월북했다는 행적, 사회주의 이념을 지향했다고 알려진 점들 때문이다.
 
약산이 1948년 월북한 이유에 대해선 동지로서 같이 좌우합작을 위해 힘썼던 여운형 선생이 암살당한 것과 친일 고문경찰 노덕술에게 심한 고문을 당하고 뺨을 맞은 치욕 때문이라는 말이 전해진다. 또 그 자신은 북한이 그리 가고 싶지 않았지만, 당시 남한 정세가 나쁘고 노덕술을 보호한 이승만 정권이 위협을 해 도저히 살아가기 어려워서였다는 것도 있다. 
 
월북한 후에도 김일성의 남침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다는 기록이 있고, 결국 숙청으로 인한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거로 전해져 온다.
 
1938년 10월 10일 중국 우한에서 열린 조선의용대 창립기념식 사진. 사진 왼쪽에서 11번째가 김원봉. 사진/독립기념관

그러나 조선일보는 7일 신문 사설과 지면을 통해 문 대통령이 현충일 추도사에서 약산을 언급한 것에 대해 "6·25영령 앞에서, 김원봉 띄우기" '6·25 남침 뒤집기'라며 맹비난했다. 자한당 등 야당도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까지 서훈하기 위한 분위기 조성이냐"며 즉각 반발했다.

 
세월호 망언으로 징계를 받았던 차명진 전 의원은 문 대통령의 김원봉 언급을 두고 "김원봉이 누구인가? 김일성 정권 권력 서열 3위, 6.25 남침 최선봉에 선 그 놈이다. 그런 놈을 국군 창설자라고? 이보다 反 국가적, 反 헌법적 망언이 어디 있는가? 그것도 현충일 추모사에서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자가"라며 막말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내가 더이상 이 나라에서 살아야 하나? 한국당 뭐하냐? 이게 탄핵 대상 아니고 뭐냐? 우선 입 달린 의원 한명이라도 이렇게 외쳐야 한다. '문재인은 빨갱이!'"라고 갈수록 태산이 따로 없었다.
 
민주당과 정의당의 종합 논평은 독립 운동가 '약산 김원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를 자한당이 비판하는 것과 관련,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일부 보수세력의 반발이 극심하다며 자신들의 뿌리가 친일파에 있다는 것을 자백하는 것일 뿐"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덧붙여 "일제 강점기 당시 항일무장 투쟁을 주도했던 약산의 활약은 익히 알려져 더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라며 "대한민국 군대의 정통성 역시 재론의 여지가 없다"면서 "대한민국 독립사에 이런 거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이 월북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공적을 모조리 폄훼 당하고 비하 받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올해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약산을 언급하고 "애국 앞에 진보와 보수는 없다"며 이념 논쟁 자제를 당부했지만, 자한당 등 야당과 조선·중앙·동아일보는 김원봉을 고문하고 괴롭힌 친일 고문경찰 노덕술과 반민특위를 해체한 이승만에 대한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이 한쪽만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해묵은 색깔론에 불을 지펴 소모전을 할 태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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